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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겨울엔 썰매지~~!! (너 왜 그러니?)

by 아이쿠

"나 좀 살려줘!! 빨리 꺼내 줘!!"

진규가 화를 내며 다급하게 소리쳤다.

하지만 그 누구도 나서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방금 전까지 썰매를 타던 진규는 갑자기 깨진 얼음 탓에 가슴까지 빠져 허우적거렸다.

우리는 도와주고 싶었지만 같이 빠질까 두려워 선뜻 다가가지 못하고 목에 두른 목도리를 풀어 길게 늘어뜨려 진규가 잡도록 하였다.


다행히 얼음을 딛고 물밖으로 나온 진규는 원망의 말들을 쏟아냈다.

"니네 진짜 다 가만 안 둬!! 아무도 안 도와줬지?!!"

성큼성큼 걷는 진규의 발걸음에 모두가 긴장이 되었다.

"누나!! 니가 제일 나뻐!! 어어어 어푸어푸"

나에게로 다가오던 진규는 또 어딜 잘못 디딘 것인지 얼음이 깨지며 그대로 물속으로 들어갔다.


추운 날씨 탓에 얼어 죽을까 봐 걱정이 되고 얼음 속에 빠져 죽을까 걱정되었지만 다행히 냇가는 깊지 않다.

이번에도 금방 박차고 나온 진규는 더 이상 따질 힘도 없는지 온몸을 바들바들 떨며 냇가 옆에 피워놓은 장작불 앞에 주저앉았다.

나는 입고 있던 잠바를 벗어 진규를 덮어주고 종국이와 혜진이는 목도리와 장갑을 벗어주었다.


요즘 눈이 많이 오고 얼음까지 얼어 우리는 하루 종일 밖에서 썰매를 탄다.

며칠 전에는 비료포대로 썰매를 만들어 사방을 끌고 다녔다.

포대 양끝을 가위로 자르고 끈을 집어넣어 연결하고는 포대 안에 지푸라기를 수북이 넣어 엉덩이를 보호한다.


썰매 위에 양반다리로 앉고 끈을 잡으면 언니, 오빠들이

허리에 끈을 두르고 전속력으로 신작로부터 근처 논밭까지 눈 쌓인 곳은 어디라도 달리고 또 달렸다.

논밭을 달릴 때 논두렁이를 점프하면 나도 썰매와 같이 점프하고 내 심장도 나와 함께 점프했다가 논바닥 위로 쿵 내려앉았다.



나도 진용이를 골려주려 논두렁에서 점프하니 뒤에서 "캬아아"하며 놀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섭지?? 오금이 저리지? 진용이를 골탕 먹인 게 재미있어서 논두렁을 달리며 점프하기를 반복했다. 그런데

"누나!! 다시 또!! 아까 거기 다시 점프해!!"

몇 번이고 다시를 외치는 진용이를 보니 아무래도 내가 잘못 생각한 것 같다. 골탕 먹는 사람은 진용이가 아닌 것 같다.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 더는 못 간다고 소리쳤다.


"우리 이번엔 언덕 가서 누가 빨리 내려오나 시합하자"

지칠 대로 지쳤지만 더 놀고 싶은 마음에 종목을 바꾸었다.

우리는 봄, 가을 전쟁놀이를 했던 무덤가로 향했다.

누구의 무덤인지 모를 여러 무덤이 있는 그곳은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진규는 무덤 위까지 올라가 꼭대기에 비료포대를 놓고 앉고는 양손을 땅에 짚은채 출발 준비를 한다.

다른 아이들도 덩달아 무덤마다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출발 준비를 한다.

"준비! 땅"

땅소리와 함께 두 팔로 힘껏 밀자 비료포대와 한 몸이 된 아이들이 하늘 높이 점프한 후 착지했다.

아니 정확히는 눈밭에 처박혔다.

눈이 많다고 저절로 미끄러지는 건 아니더라.



오늘은 꽁꽁 언 냇가에서 아빠가 철사를 끼어 만들어준 나무 썰매를 타고 있다.

오전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네 아이들이 모두 냇가 얼음판 위에 모였다.

"우리 썰매 타고 저기 큰 바위까지 먼저 갔다 온 사람이 이기는 시합 하자."

썰매 위에 무릎 꿇고 앉은 아이, 양반 다리를 하고 앉은 아이 모두가 일렬로 섰다.



"땅" 소리와 함께 얼음판을 찍어대느라 여기저기로 얼음 파편이 튄다.

지는 걸 싫어하는 진규는 역시나 먼저 앞서가고 그 뒤를 여러 명이 쫓아간다.

바위를 돌면서 어떤 아이는 중심을 못 잡고 그대로 넘어져 얼음 위로 떨어지고 썰매는 저 멀리 미끄러진다.

앞서는 진규는 뒤를 돌아보며 경계하고 쫒는 아이들은 앞서려 눈에 불을 켜고 손에 불이 나도록 얼음판을 찍어댔다.


"진규 1등"

그제야 웃는 진규와 "다시 한번 더"를 외치는 아이들이다.

불꽃 아니 얼음 튀는 썰매 시합은 오전을 지나 오후까지 계속되었다.

해가 중천에 뜨니 날씨가 점점 따뜻해졌다.

얼음이 조금씩 물기를 머금는 걸로 보아 이제 그만 타야 할 때가 되었다 생각할 때 얼음이 깨지며 진규가 물에 빠진 것이다.


며칠 전에는 눈 속에 처박히더니 오늘은 얼음물에 빠졌구나.

여름에는 새 자전거를 저수지에 빠뜨리고 가을엔 니가 탄 경운기가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넌 참 처박히고 빠지는 걸 좋아하는구나.

"진규야. 감기 걸리겠다. 얼른 집으로 가자"

입술까지 시퍼래져 덜덜 떨던 진규가 힘없이 따라나섰다.

"악"

헛디딘 진규의 발이 돌 사이에 끼었다. 참 가지가지한다.

"야 너 진짜 왜 ~~~ 그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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