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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으른들의 방학

by 아이쿠



아빠는 요즘 군불 땐 아랫목에 앉아 좋아하는 책을 실컷 본다. 아빠의 책을 보는 자세는 정해져 있다.

한쪽 다리를 접고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방바닥에 놓인 책을 읽거나 옆으로 돌아 누운 자세로 읽는다.

엄마는 옆에서 한가롭게 뜨개질을 하거나 바느질을 한다.


우리는 꽁꽁 언 냇가에서 썰매를 타거나 눈이 오면 비료포대 썰매를 끌고 온 동네를 돌아다니는데 엄마 아빠는 집에서 나오질 않는다.

며칠째 집에만 있던 엄마도 심심한지 영지 언니네나 도인 오빠네 놀러 가 국수를 뽑아 칼국수를 끓이거나 수제비를 뜨기도 한다.

후식으로는 커피 두 스푼, 프림 두 스푼, 설탕 두 스푼을 넣어 커피를 마시고 간식으로는 찐 고구마를 싱건지와 함께 먹는다.


오늘은 아줌마들이 우리 집에 모이기로 했나 보다.

엄마들은 모여 점심을 먹더니 어느새 술상까지 차렸다.

기분이 좋은 건지 술기운 탓인지 계속해서 손뼉 치고 웃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은 작은방에 모여 이불로 손을 가리고 전기 놀이를 한다. 양쪽에서 내 손을 자꾸 찌릿지릿 잡으면 난 어떡하지?


"화장실에서 물이 뚝.... 뚝...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거야.."

종훈 오빠의 화장실 귀신 이야기에 침을 꼴깍 삼켰다.

내 머리 위로 뚝 뚝 물이 떨어지는듯한 느낌이다.

왜 꼭 귀신 이야기할 때 불을 끄는 거야 무섭게.

살며시 천장을 쳐다보며 귀신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했다.

"문을 슬그머니 열었는데!!" "쿵쿵쿵"

"꺄아악!!!!" 방안의 모두가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이게 뭔 소리야??"


안방 쪽에서 들려오는 쿵쿵 소리에 간이 떨어질 뻔했다.

우리는 얼른 안방 문을 열어 방안을 훑어보았다.

분명 아까까지 화투를 치고 놀던 엄마들이 지금은 전축에

동그란 판을 끼어 음악을 틀고 박수를 치며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다.

우리 아빠는 책을 좋아하지만 음주가무도 절대 빠지지 않는다.

아빠가 어깨를 들썩거리며 일어서자 다른 사람들도 못 이기는 척 박수를 치며 따라 일어섰다.


평소 음주가무라면 질색을 하던 엄마도 웬일인지 허리를 흔들며 춤을 추니 그 모습이 낯설고 부끄러워 내 얼굴이 빨개진다. 엄마 허리를 붙잡고

"엄마. 춤추지 말고 그냥 얌전히 앉아놀아"라며 말렸으나

"지선아 작은방 가서 친구들이랑 놀아라"라며 내 두 팔을 떼어내는 엄마다.



분위기를 띄웠던 아빠는 아저씨들과 비닐하우스의 멍석 위에 둘러앉아 윷놀이를 시작했다.

아주 작게 만든 윷을 간장종지에 넣어 섞고는 공중으로 휙 던져 땅에 떨어지는 윷을 따라 아빠의 고개도 같이 떨어진다.

모두가 멍석 한가운데를 응시하여 윷가락의 누운 자태를 확인하고는 누군가는 무릎을 탁 치며 "그렇지!! 윷이다" 하며 반색하고 누군가는 "허허이. 어째 그것이 지금 나온다냐?"라며 한숨을 쉬었다.


"아야 길섭아!! 말이 지금 거기로 가면 안 되제"

딴지를 거는 호식이 아빠와

"아 놔두시오. 말 모는 사람 마음이제" 제멋대로인 아빠다.

어른들도 우리처럼 놀다 싸울 때가 있다.

하지만 또 금세 우리처럼 화해한다.



비닐하우스 안은 멍석의 지푸라기 냄새가 가득하고 아빠의 얼굴은 웃음으로 가득하다.

"아야. 느들은 밖에 나가서 놀제 어째 여기서 그러고 있냐?"

방해하는 우릴 쫓아내면서도

"지선아 가서 엄마한테 술상 차려 오라고 해라"라는 당부는 잊지 않는다. 아빠의 심부름에 나도 엄마도 바빠진다.

"또 뭔 술이다냐?"라는 핀잔 없이 상을 차리는 걸로 보아 오늘은 엄마도 아빠도 신나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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