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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당산제와 지신밟기

by 아이쿠 Jan 11. 2022

"오늘내일은 차 못 들어와요. 번거로워도 다른 길로 돌아가시오"

내일이면 당산제를 지내는 정월대보름이다.

마을의 가장 큰 행사 중 하나인 당산제를 준비하는 어른들은 진지함을 넘어 성스럽기까지 하다.

혹시라도 보름을 앞두고 마을에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면 2주를 더 미뤄 당산제를 지내니 말이다.

보름 며칠 전부터 모두가 목욕재계를 하고 외부차량이 마을을 지날 수 없게 창호지를 접어 중간중간 끼운 새끼줄로 동네 입구를 막아두었다.

그 새끼줄은 당산나무 허리춤에도 당산나무 근처의 큰 나무들 허리춤에도 묶어둔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대보름 전날에는 산에 올라 굵직한 참나무를 여럿 베어와 당산나무 밑 널찍한 터에 나무끼리 기대어 세운다.

초저녁이 되면 불을 붙여 활활 타게 하니 큰 나무들이 통째로 타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도 하나의 구경거리다.

불붙은 참나무는 다음날 오전까지 계속 탈것이다.

저녁이 되자 동네 어른들이 하나둘씩 불 뿜는 참나무 근처로 모여들었다.

술상을 차려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지나가는 해의 아쉬움을 이야기하다 밤 12시 대보름이 시작되면 제를 올린다.


당산나무 주변의 할아버지, 할머니 나무를 시작으로 며느리 나무에 먼저 제를 올리고 마지막으로 주인공 당산나무에 제사를 올리며 농사 풍년과 마을의 안녕을 기원한다.

제사가 끝나면 동네 어르신 나이 순서대로 창호지를 불태워 하늘로 날린다.

근심, 걱정과 지병이 창호지와 함께 불타 날아가 무병장수하라는 의미다.


참나무를 태우는 저녁은 아이들도 축제다.

분유통 같은 빈 깡통에 송곳으로 구멍을 송송 뚫어 참숯과 지푸라기, 나뭇가지를 넣어 바람이 통하도록 온 팔힘을 다해 동그랗게 동그랗게 돌린다.

누구의 불이 제일 크고 화려한지 뽐내며 저녁 내내 숯이 되도록 돌린다.

돌리다가 어느 순간 툭 던져 누구의 것이 더 멀리 가는지 내기도 하니 신작로와 가까운 논에서 시작된 쥐불놀이는 점점 더 어두운 곳으로 향한다.

컴컴한 밤하늘에 원을 그리며 도는 빨간 불꽃이 화려해 불꽃놀이를 보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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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 아침이 되면 올해 당산제를 주관했던 집을 시작으로 집집마다 마당, 부엌, 장독대, 집 뒤까지 돌아가면서 꽹과리와 징 북 등을 시끄럽게 치며 귀신을 쫓는다.

집주인은 장독대며 마당 부엌에 소액의 돈을 올려놔 쫓겨나는 귀신을 달래주었다.

혹시라도 돈을 보고 집어 드는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는 오늘 등짝이 남아나질 않을 것이다.

그렇게 걷어진 돈은 때마다 마을 공동경비로 쓰였다.

올해도 마을 사람들은 정성으로 당산제를 지내고 귀신을 쫓으며 마을의 안녕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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