툇마루는 너무 높아서 기둥을 붙잡고 오르는 게 아직 작은 나에겐 불편하지만 그 외에는 장점이 많다.
봄, 가을에는 마루에 앉아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밥을 먹으면 참 맛있다.
비가 오는 날에는 동생들과 공기놀이, 술래잡기를 하는 놀이터이다.
놀다 지치면 방바닥에 엎드려 열어놓은 방문과 마루 너머로 비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거나 빗소리를 듣다 보면
그 풍경에 점점 빠져든다.
처마 밑으로 떨어지는 빗물을 만지고자 손을 쭈욱 내밀었다 마루 밑으로 떨어질뻔한 적도 있다.
겨울이면 처마 밑 고드름을 따기 위해 또다시 툇마루 끝에 서서 손을 쭈욱 내민다.
하지만 꽁꽁 얼은 마루에 발을 디디자 그 차가움이 금세 머리끝까지 전해졌다.
얼음장 같은 마루에 발을 온전히 펴지를 못하고 최소한의 면적만 딛기 위해 굽은 발로 재빠르고 신속하게 발을 바꿔 걷다 보면 마치 덩실덩실 춤을 추는 듯하다.
커다란 정개(부엌) 문을 양쪽으로 열어젖히면 살강(찬장)이 한쪽에 자리 잡고 있으며 그 안에는 그릇들이 빼곡히 쌓여 있다. 정개 한가운데는 가마솥이 있고 그 한쪽 옆으로는 불쏘시개로 쓰는 지푸라기와 가을에 깨 털고 말린 들깨 나무, 뒷산에서 주운 작은 가지 등이 쌓여 있다.
습한 날에는 불이 잘 붙지 않아 정개에 연기가 가득 찬다. 매운 연기에 놀라 불이고 나발이고 나 살자고 바깥으로 뛰쳐나와 찬바람을 쐬야 나의 눈은 조금 진정이 된다.
정개 옆에 위치한 장독대는 시골 살림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곳으로 끼니때마다 내가 들락거리게 되는 곳이다."지선아 가서 된장 한 숟가락 떠와라" 곧이곧대로 한 숟가락을 떠가면 엄마에게 "지선이 손이 참 크다"라는 반어법의 말을 들었다.
장독대 앞에 있는 도구통(절구통)은 엄마가 참깨, 들깨, 청국장 등을 찧을 때 사용했다.
김치 담글 때는 밥풀과 고춧가루도 도구통에 넣고 도구대(절구공이)를 실컷 내려 찧었는데 아빠와 싸웠던 날에는 도구대를 더 세게 내려 찧으며 "염병!! 천불이 나네!! 써글인간아!!" 라는 욕을 하기도 했다.
구경하기 제일 재밌는 것은 떡을 할 때인데 찰밥을 도구통에 넣고 아빠가 도구대로 찧으면 엄마는 얼른 도구통 안의 밥을 이리저리 뒤섞는다. 자칫 잘못해서 박자가 안 맞으면 엄마의 손을 찍을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옆에서 조용히 숨죽여야 한다.
도구대를 움켜쥔 아빠 손을 따라 눈이 올라갔다 떡을 뒤섞는 엄마 손을 따라 눈이 내려갔다가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눈이 핑핑 돌아 어지럽다. 그러면 우린 구경도 마다하고 한쪽에서 놀다 떡이 완성될 즈음 퍼지는 고소한 콩고물 냄새에 이끌려서야 제자리로 돌아와 한입 가득 맛본다.
수돗가에서는 갓 뜯은 상추와 고추, 솔(부추)을 씻고 다듬으며 더운 여름날에는 엄마가 아빠 등목을 해주기도 한다. 수돗가 옆으로는 작은 앵두나무가 있는데 앵두가 열리는 6월쯤이면 우리는 서로 내가 많이 따겠다고 난리법석이다. 발꼼치를 들고 목을 최대한 뒤로 젖히고 가지를 끌어당겨 앵두를 따기 시작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목이 아프고 종아리가 아파 더는 못하겠다고 나자빠진다.
앵두나무 옆으로는 큰 감나무가 있다.
가을이면 감이 주렁주렁 열리는데 대나무 장대로 잔가지채 꺾어 딴다.
그렇게 수확된 감은 홍시가 되어 겨울철 고구마와 함께 우리의 최애 간식이다.
감나무는 감만 주는 게 아니다. 동생들은 매일 미끄럼 타듯 감나무를 올라 큰 가지에 서서 뛰어내리고 다시 올라가고를 매일 반복하니 우리 집 감나무도 고생이 많다.
감나무에서 떨어져 바보가 되었다는 사람이 많은데 동생들은 그렇게 떨어지고도 멀쩡하니 참으로 다행이다.
집 뒤의 대나무 숲 또한 우리들의 놀이터이다.
개구쟁이 동생은 얼마 전 전쟁놀이를 위해 칼과 활을 만들겠다고 설치더니 입안을 찢어와 엄마를 혼비백산하게 만들었다. 칼과 활은 손으로 만드는 건데 어찌하면 입안이 찢어져 오는걸까?
감나무 옆의 작은 텃밭은 장독대와 마찬가지로 엄마가 밥할 때마다 내가 가게 되는 곳이다.
"지선아 솔(부추) 한주먹만 뜯어와라" 또 곧이곧대로 한주먹을 뜯어가니
"아이고 지선아 이것 갖다 누구 코에 부친다냐" 라는 말을 여지없이 듣는다.
텃밭 옆의 변소는 우리 집에서 제일 싫은 곳이다.
변소 주변을 지날 때마다 똥냄새가 났고 밤에는 귀신이 나올 것 같아 혼자 가기 무섭다.
동생을 얼래고 달래 같이 갔는데 혹시라도 변소에 있는 나를 두고 도망갈까 봐 노래를 시켰다.
갑자기 노랫소리가 안 들리면 "야 노래 왜 안 해? 너 나가면 죽는다!!" 라며 절박한 목소리로 다그친다.
그래서 웬만하면 피하고 싶은 곳인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학교 화장실보다는 훨씬 덜 무섭다.
변소 앞에는 돼지 축사와 외양간이 있다. 70여 마리 정도의 돼지에게는 사료를 두 마리의 소에게는 여물을 주기 위해 엄마 아빠는 항상 바쁘다.
얼마 전에는 소가 새끼를 낳는데 한참이 지나도 낳지 못하자 엄마 아빠는 수의사를 불렀다.
수의사는 아주 기다란 장갑을 끼고는 어깨까지 소 몸속으로 집어넣고 한참을 만지작 거리더니 새끼를 끌어냈다. 하지만 이미 죽었다며 수의사도 엄마 아빠도 속상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