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자의 눈_#3
제트기가 떨어지는 이유
미 공군에 제트기가 도입된 후 사고가 폭증했다. 아무리 조사해도 기체결함도 조종사 실수도 아니었다. 이때 한 사람이 '조종석'에 주목했다. 그 당시 조종석은 '평균적 사이즈'에 맞춘 붙박이식이었는데 이게 원인이 아닐까 싶어 당시 파일럿 4000여 명의 신체 사이즈를 10개 항목으로 다시 측정했다. 모든 항목의 평균값에 30% 오차 범위로 맞는 '평균 사이즈' 조종사가 대다수 일거라 예측하면서. 결괏값은 0이었다. '평균적 대다수'라는 건 환상에 불과했다. 키가 큰데 어깨가 좁기도, 다리가 긴데 팔이 짧기도, 손이 큰데 발이 작기도... 체형은 그야말로 제각각이었다. 그래서 이때 세계 최초로 도입된 것이 '조절 가능한 시트'였다. 지금은 자동차에서도 보편적으로 볼 수 있는 장치가 이때 처음으로 도입되었고. 그 이후 미군의 전투기 사고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평균의 종말'에 나오는 에피소드 요약)
실패 보장 사업
무엇을 시작하던 '평균적 집단이 있다'라는 가정 위에서 하면 반드시 실패한다. 물론 '100미터 달리기 속도' 같은 단 한 가지 기준만 특정한다면 가능하다. 하지만 축구선수의 기량을 측정하는 기준조차 수백 가지 (FIFA 공식 기록 방식)인 것만 보아도 몇 개의 기준만 가지고 그것의 평균값을 내고 이것을 '소비자 대다수'라고 가정하는 방식은 눈먼 마케팅을 불러오고 결국 이 불통(시장을 과도하게 단순화해서 보는 방식)이 사업을 망하게 한다. 반대로 무엇을 기획하던 '평균은 없고 개별적 케이스는 천차만별'이라는 전제에서 시작하면 품질과 가격이라는 기본이 갖춰있다는 전제하에서는 거의 모두 성공한다. 그런데 이게 만만치 않은 것은 '비용'의 문제가 대두하기 때문이다.
지독한 '에너지 절약 본능'
사실 뇌가 가진 최고의 기능적 목적은 '에너지 절약'이라고 신경과학자들이 그런다. 무엇을 하던 '최단거리'를 뇌는 저절로 찾고 있다. 시쳇말로 하면 '날로 먹는 것'을 위해 뇌는 지금도 열일 중이다. 바로 이 본능이 '평균의 허상'을 쫒게 하는 모순을 만들어 낸다. '대다수라는 평균'이 있다고 가정하면 우리는 굉장한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 가운데 사이즈만 만들어 내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발로 말하자면 발에는 길이만 있는 것이 아니고 넓이도 중요하고 발바닥 아치의 경사도도 사람마다 각각 다르다. 발등의 높이는 어떻고 발가락의 길이는 또 어떤가. 이 모든 것이 다 고려된 다양성을 확보한다면 신발의 만족도는 최고조에 이를 것인데 이는 결국 개발과 생산의 비효율성으로 귀결된다. 그래서 못한다고 생각하던 세월이 수백 년인데 그게 가능해지는 시대가 왔다. 바로 AI의 등장이다.
모든 기술은 이곳을 향하고 있다
첨단 기술의 기사가 하루도 빠짐없이 뉴스를 장식하고 있지만 정작 우리는 불편하다. 그 기술들이 가져 올 편리는 알겠지만 그들이 겨누고 있는 표적이 흐릿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비자 편익을 분리시켜 생각해 보면 기술의 이름이 무엇이든 그것은 모두 한 곳을 향하고 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바로 '개인화(개별화)'이다. Customization으로 모든 것이 향하는 것은 그곳이 바로 사람들이 소비를 집중시키는 곳이기 때문이다. 2만 원 하는 대량생산 신발을 위의 '내 발 모양'에 완벽한 맞춤으로 바꿀 수 있다면 가치 10배 이상 상승한다. '나의 모든 조건'을 만족시키는 차가 있다면 우리는 어려움 없이 몇 배 이상의 지출을 각오할 것이다. '천생연분'인 그녀에게 당신이 모든 것을 걸듯이.
평균의 종말
'평균적 대다수'가 존재한다는 느낌은 무식한 직관이다. 성장기에 '표준체중'이라는 말에 분노하던 기억(내 키가 180에 난 90킬로가 늘 넘었는데 표준체중은 68kg이었나…)의 기준으로 보면 이건 폭력에 가깝다. 멋진 구호나 이데올로기가 아닌 사실 기반으로 볼 때 일반화의 껍질을 벗겨낸 개인은 모두 '완전히' 다르다. 그걸 인정하는 순간 어떤 신 기술도 우릴 불안하게 하지 못한다. 우린 이미 미래에 도착해 있기 때문이다.
글: 문단열
그림: 챗G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