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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롱혼 Mar 13. 2023

꾸준히 할 수는 없을까

내가 글을 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비가 내리는 휴일. 이 비 그치면 잠깐 추워진다고 한다. 하지만 걱정 없다. 봄의 문은 이미 열려 계절이 밀려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겨울을 견디기 위해 바싹 말라있던 나무도 자연의 순리에 따라 뿌리에서는 이미 활기차게 물을 빨아올리고 있을 테니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는 것’이라는 말이 있듯 우주의 메커니즘 속에 순응하는 삶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나무들이 물을 빨아 올림에도 차이가 있듯 그런 똑같은 기회의 순간을 맞닥트려도 능동적으로 철저한 삶의 태도를 가진 특별한 자연의 피조물들은 더 성장하고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삶을 대하는 태도


삶의 이런 태도를 지향한다. 나에게 주어진 허락된 시간 속에서 부여된 사명에 따라 진지한 삶에 몰입하는 것이 나의 최고의 삶이다라고 이미 선언했으니까 


매번 반성과 계획을 하지만 그 반복의 과정이 결코 싫지가 않다. 가만히 있는 것보다 도전을 하며 나아갈 방향을 잃지 않는 노력이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보장해 줄 것이기에 단지 왜 진작 이런 생각을 행동을 하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는 있다. 하지만 이 또한 기대의 가치가 변했다는 증거이기에 그냥 넘어간다.


지금 내가 생각하고 나아가려는 이 방향에서는 내딛는 발걸음이 중요할 뿐이다. 열심히 큼직큼직 걸어 나가는 집중과 몰입을 말한다. 그러나 망각의 습성을 따르고 있는 사람인 지라 어쩔 수 없이 유치하더라도 후회와 반성을 습관처럼 하고 있다. 그래야 다시 또다시 각인을 시켜 삶의 올바른 방향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매사 삶을 진지하게 대하면서 그를 향한 꾸준함을 잃지 말자


진지함을 보편화하자


지금 책상에 앉아 조용히 음악을 들으며 나와의 대화를 할 때 참으로 진지하다. 그 간 하지 못했던,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쏟아부으면서 또 잘 공감해주면서 막힘이 없다.  저 깊이 웅크리고 있는 나의 본심이 이때만 꿈틀거리며 잠시 올라오는 것 같다. 그때 나와 차분한 대화를 한다. 이런 진지함이 너무 좋다.


하지만 일상에서는 그렇지 못한다. 외면의 내가 포장된 기술로 앞서서 떠들고 있기 때문이다. 남보다 앞서고 싶은 욕망, 잘난 체하고픈 욕구, 대접받고 싶은 욕심들이 내면과의 대화를 차단하고 나를 대신한다. 

‘본심은 아닌데 어쩔 수 없어서 그때 그랬어’

우리가 편하게 회피하는 말투에 가끔 등장하는 말이다. 이해해 달라는 것이다. 나의 본심, 즉 내면의 나는 안 그러는데 외면의 내가 그랬으니까 봐 달라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그의 희망일 뿐 어느 누구도 외부, 내부의 심리영역까지 구분하여 이해를 하려는 사람은 아마 정신과 의사 이외에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최소한의 진지함을 보편화시키려는 노력을 해야겠다. 적어도 내면의 나와 외면의 내가 합의할 수 있는 시간을 침묵으로서 텀을 주어야 할 것이다. 그 대화하는 짧은 시간이 진지함으로 표현이 되는 것이고 차분함으로 나타난다. 조금이라도 돋보이려고 남의 말을 중간에 끊어 가면서 까지 외부의 자신에게 지배당하는 것은 나중 내부의 자신과 대화를 할 때 후회가 밀려들 것이다.


잘 듣고 순간의 침묵으로 정돈된 말을 천천히 전달하자. 


꾸준함을 잃지 말자


지금처럼 내면과의 대화할 때면 좋은 긍정적인 생각들이 막 올라온다. 그리고는 그렇게 행동을 하리라 다짐을 하게 되고 잊힐까 글로 써서 덕지덕지 붙여 두기까지 한다. 언제 어떤 이유로 붙여진지도 모르는 각오의 글 위에 또 덧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망각의 시간은 그리 멀지 않다. 책상을 벗어나 소파에 앉는 순간 벌써 외면의 내가 아까와의 선을 그으면서 새로운 유혹을 내밀며 방금 가졌던 생각들을 망각시키기 시작한다.


이렇게 결심한 것을 잊지 않기 위해 최면이니 자기계발이니 명상이니 각각의 방편으로 계속 유지를 시키려고 노력들을 한다. 그것도 아주 일부의 사람들이 말이다. 그들은 힘들게 자신을 컨트롤하면서 이어 나가는 대단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보다도 진지하게 꾸준함을 이어나갈 더 좋은 방법은 글을 쓰는 것이라고 본다. 일기를 쓰던 에세이를 쓰던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과의 대화를 기본으로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그 횟수가 늘어날수록 심지어 글쓰기가 일상이 될수록 망각은 들어올 틈이 없다.


글을 자주 쓰면 진지한 삶을 지향하면서 그 행동의 꾸준함을 유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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