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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롱혼 Jun 12. 2023

아프면 소리가 난다

냉장고가 조용하니 일단 나도 조용해졌다

냉장고에서 소음이 크게 나기 시작한다. 들을수록 답답한 막힘의 소리에 불편하지만 그래도 본연의 냉동, 냉장의 역할을 하고는 있으니 괜찮겠지 하며 버티어 본다.


아침 출근길 아무래도 냉장고가 소음으로 힘들어하는 것 같기에 흔들어도 보고 퉁퉁 처 보기도 하다 출근을 하고는 바로 잊어버렸다. 저녁때 퇴근을 하는데 엘리베이터가 9층에 올라가 있다. 우리 집이다. 방금 누군가 올라간 것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아내가 냉장고에 물건들을 꺼내 놓고 있었고 그 옆에는 A/S 기사님이 와서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갑자기 냉장고가 동작을 안 해서 깜짝 놀랐어'

'얼른 김치냉장고로 옮기며 급하다고 애원하듯 전화했더니 가사 아저씨께서 옆동에 계셨던 거야'

'너무 다행이지 뭐야'


씩 웃으시는 기사 아저씨의 얼굴에는 산전수전 다 겪어본 여유로 별것도 아닌 것 가지고 소란이냐는 듯 편안하기만 하다. 이리저리 비틀어 뜯어보시더니 나를 부른다.


'모터고장이 아니라 다행입니다'


하면서 여러 증상의 현상과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길게 설명해 주셨다. 그리고 보여주신 뜯어낸 커버 속 흰 성애가 잔뜩 얼어붙어 가득 차 있는 것이다.


'이것 때문입니다. 이것이 얼어붙어서 모터 팬이 돌기 힘들어서 그르렁 거리다 멈춘 것입니다'


간단한 진단과 함께 쉭쉭 얼음을 녹여내며 모두 뜯어내자 가뿐하게 동작이 되며 잘 돌아간다. 새근새근 숨이 틔였다. 



세상 모든 막힘과 불편에는 징조가 있다.

평상시와 다른 표현과 소리로 문제를 미리 나타내는 것이고 빨리 조치를 취해 달라고 하는 것이다.


강아지가 끙끙거린다든가. 기계에서 소음이 난다든가. 아기가 운다든가. 갑자기 목소리가 커진다든가. 표정이 변한다든가. 싸한 느낌을 받는다든가 이 모든 것이 주관적으로 느끼는 이상 증조들이다.

자신이 알던 평상시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럼 자신이 알던 평상시란 무엇인가, 보통 일상의 기준이다. 각자가 가지고 느끼고 있는 일상의 기준은 서로들 약간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을 아주 민감하게 느끼는 사람이 있고 둔하게 모르는 사람도 있지만 이것이 중요한 것이다.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감지하는 능력을 말한다. 

그리고 이것에 민감하게 칼을 세워 놓아야 한다. 그래야 모든 사소한 위험이나 걱정에 미리 대처가 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제일 잘 안다는 자신의 일상 기준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 주변의 변화는 바로 감지를 하여 그에 따라 대응도 달리 잘하면서 정작 본인의 평소의 기준을 잘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자신을 너무 잘 알고 있다고 지레 판단하여 집안의 냉장고처럼 익숙하여 막 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냉장고의 잔뜩 낀 성애를 제거하자 새근거리는 편함을 보듯이 나의 사소한 막힘도 바로바로 풀어 주어야 한다. 내가 편하고 평정해야 남을 귀하게 여기며 주변도 챙기는 것이다.


남들보다 자신을 잘 알자 그리고 자신의 변화에 제일 예민하게 반응하자.

너무 성급한 건지, 화가 나있는지, 기뻐서 경망스러운지 바로바로 느껴야 다시 평정심으로 돌아 올 수가 있다. 내 소리를 제일 크게 듣는 그 예민함을 나의 내부에 넣어 다른 소리를 내고 있는지 모든 면에서 잘 지켜보자


우리 집 냉장고가 조용해지니 나도 조용해져서 나를 돌아보며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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