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 조용히 일어나 채비를 갖춘다. 사실 알람이 울기전에 몸이 알아서 움직였다. 잠이 깬다는 아내의 투정에도 언제나 처럼 가그린 한 모금 물고 이어폰을 끼고 까치발로 거실을 나서 공원으로 향한다.
간밤의 비로 무거워진 공기가 어깨를 짓누르지만 이내 익숙해지며 어둠 속 신선한 공기가 잔뜩 모여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파고든다. 아직 어둠이 자리 잡고 있어 한쪽 가로등이 겸연쩍게 웃고 있지만 곧 쉬러 간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흔들리는 빛을 보았다.
몇 바퀴 돌다 보면 익숙한 그림자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 그래도 아직 어둠의 꼬리가 공원을 가로지르며 같이 돌고 있는데 성질 급한 여명은 벌써 농구대며 배드민턴장을 돌아 반짝거리며 장난을 치는 지금. 이 순간. 갑자기 어둠과 여명이 혼재되었다. 나도 하늘도 깜짝 놀라 빨갛게 물이 들었다.
어제가 오늘이 그리고 내일이 잠시 혼재되어 새 출발을 기다리는 장관. 교대의식이 펼쳐지고 있다. 나는 이 순간을 매일 바라보고 있다.
새벽에서 여명과 아침은 분명한 선을 긋다 순식간에 혼재되어 다가온다. 시간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때이며 과거와 현재, 미래가 동시에 만나는 내면의 장관이다.
하지만 이 순간을 매일 접하면서도 삶의 깨닫음은 한계적으로 들어왔다.
스미노 요루는 '또다시 같은 꿈을 꾸었어'에서
"사각사각 사라지는 과거를 되짚어 올바른 방향으로 수정하고, 그것을 통해 선택이 가능한 현재의 가늠자를 만든다. 하나하나의 선택이 쌓이면서 미래는 현재가 되어간다. 바로 지금 '나는 행복했어' 말할 수 있는 현재로"라고 말했다.
그도 아침형 인간으로 마치 새벽에서 아침으로 넘어오는 이 순간을 함께 보듯 미처 깨닫지 못한 나를 대변해주어 다행이다.
하지만 성급할 것은 없다. 새벽부터 지켜보는 밝아오는 이 아침의 순간이 나의 과거를 수정하여 선택된 현재의 미래가 나는 행복했어라고 말해주는 기회를 매일 준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