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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롱혼 Oct 06. 2023

강아지는 눈치가 빨랐다

거기에 내가 끌려 다니고 있다

'오월아~ 오월아~'

한밤중에 집안이 떠들썩하게 외쳐대는 아내의 소리다. 딸과 통화를 하며 옆에 보이는 강아지가 귀여워 애타게 부르짖고 있다. 핸드폰 속의 영상이 강아지 눈에 들어오리 만무하건만 저렇게 부르는 것을 보니 무척 사랑스러워하는 것 같다.


아내는 강아지를 싫어했었다. 거리를 거닐다 강아지가 다가올라치면 놀라서 피하거나 궁시렁거리며 심지어 욕까지 해대기도 했다. 그러던 아내가 미국에 살면서 딸이 입양해 온 강아지에 흠뻑 빠져 버렸다. 오월이란 이름도 아내가 지었다고 하니 정이 푹 들은 모양이다. 국내에 들어와서도 거리를 걷다가 강아지 옷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오월이 생각에 한두 벌씩 사 모을 정도다.


심지어 미국에 다시 갔을 때 공항에 마중온 오월이가 머리끝까지 타고 올라가며 요란하게 반가워하는 통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모았다는 영웅담을 늘 자랑스러워하며 지내기도 했다.


사실  나도 개들을 키워 본적도 없고 좋아하지 않는다. 어릴 때 시골에서 달려드는 큰 개에 물려 두 번이나 팔이 부러진 경험을 가진 덕에 그런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옆에서 하도 오월이를 외쳐대니 한 번도 못 본 오월이의 생김새며 크기며 그 특성까지 마치 옆에서 본 듯 착각을 하게 되었다.



미국에 도착한 날 아내는 딸과 통화를 하더니 세관검사를 통과한 후 공항 밖을 바로 나가지 말고 여기서 기다리자고 한다. 오월이가 반겨 달려드는 경험을 또 해보고 싶은 모양이다.


아니, 언제 올 줄 모르는 오월이를 공항 안에서 나가지 않고 어정쩡하게 기다린단 말인가 한참을 못마땅하여 구시렁거리다 그냥 나와 버렸다. 뒤따라 나오며 계속 핀잔하는 아내의 잔소리를 흘리며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자 나오길 잘했는지 잠잠해졌다.


갑자기 어디선가 낑낑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눈물의 상봉 현장을 목격하게 되었다. 어안이 벙벙하다. 어정쩡하게 서있다 함께 차에 오르니 이번에는 이놈이 본능적으로 짖어대며 나를 경계한다. 나도 너를 경계하거든 흥칫뿡이다.


집안에 들어서자 또 요 조그마한 놈이 왜 들어왔냐고 계속 짖어대며 나를 경계한다. 딸에게 한차례 혼이 나고서야 조용해지더니 슬슬 눈치를 살피는 것 같다. 이제 상황이 파악이 되는 모양이다.


한두 시간 지나자 금세 꼬리를 치기도 옆에 붙어 앉기도 한다. 눈치 한번 빠르다. 하지만 나는 자꾸 손으로 떠밀고 있다. 귀엽기는 한데 아직 핥아 대는 것이 적응 안 되기 때문이다.



저녁때 드디어 처음으로 오월이 산책길에 동행을 하며 끈을 잡아 이끌어 보았다. 같이 걸으며 전해오는 힘이 느껴지는 것이 신기했다 하지만 더 힘든 것은 강아지를 데리고 아무 상점이나 불쑥불쑥 들어가는 딸이다. 적응이 안 된다. 이곳은 프랜들리라서 괜찮다고 하는데 어떤 옷가게에서는 강아지 간식까지 준다고도 했다. 심지어 강아지와 함께 스타벅스에 들어가니 퍼푸치노라는 강아지 음료를 무료로 나누어 주었다. 컵에 코를 박고 정신없이 먹는 모습이 한두 번 먹어본 솜씨는 아닌 듯하다. 신기한 광경이다.


하루 이틀 지나며 오월이는 나를 만만한 사람으로 인식한 것 같다. 시도 때도 없이 간식을 잘 주는 사람, 자기가 이끄는 대로 가는 사람, 자기편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 나에게만 붙어온다. 눈치가 빠르다. 그래서인지 잘 먹던 밥을 안 먹는다고 딸은 오월이를 나무라고 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또 나에게 달려들어 하도 낑낑거리니 딸이 한번 데리고 나가보라 하기에 용기를 내었다. 나가자마자 이놈이 능숙하게 나를 이끌더니 어느 곳에 머물러서는 똥을 싼다. 큰일이다. 어쩌나 두리번 거리니 다행히 바로 앞에 강아지 대변 수거함이 있어 눈치껏 처리를 해봤다. 여기가 자기 화장실인 모양이다. 신기하다.


어쩌다 오월이와 나는 이런 사이가 되었다.

눈치 빠른 강아지가 먼저 다가와 나를 이끌고 있기에 가능했다.


이게 무슨 일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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