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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롱혼 Dec 22. 2023

배짱이 정답 이었다

느낌을 낯설게 표현하는 방법

'시를 쓸 때 느낌을 낯설게 표현하라'


글공부를 하면서 여기저기에서 듣는 말이다. 신선하게, 새롭게, 안 쓰던 것을 찾아 표현하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보통은 만져보고 뒤집어보고 깨물어보고 던져봐도 딱딱한 고정관념에서 잘 빠져나오질 못한다.

 

'어쩌라고 그것밖에 안 보이는데'

'그래? 그럼 없애봐 아예 없으면 되잖아'




80년대 사회 격변기에 군대에 있었다. 당시 군대는 상명하복의 아부가 극치를 내달리고 있었다. 그래도 우리 부대는 아량을 많이 베풀어 주는 좋은 상사들이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반복된 세뇌교육 때문인 것이다. 늘 그들이 그렇게 대해 주고 있다고 해서 그런지 덕분에 별로 힘든 줄 모르고 매일 구르고 뺑뺑이 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게 반복되다 보니 요령이 생긴다.


어차피 모두 보여주기식 이니까 우선 내 지르는 사람이 최고다.

'네 잘 알고 있습니다'

'네 그것은 세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 몰라도 아무 생각 없이 일단 내 지르고 난 뒤 거꾸로 질문이 뭐 더라를 생각해 답을 꿰맞히면 된다. 그것도 자주 하다 보니 실력이 늘어 편해진다. 모든 것이 거기서 거기라 생각 따로 입따로 잘도 놀아났다. 무슨 이런 이상한 곳이 있나 싶지만 그래 있었다.


당시 취침점호를 하기 전에 모두 둘러앉아 수양록이라는 일기 같은 것을 쓰는 시간이 있었다. 진실되게 쓰기도 힘들다. 매일 검사한답시고 읽어대는 통에 말이 수양록이지 난처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도 나중 추억을 위해 취지대로 수양록의 글을 열심히 쓰기 시작했다. 간혹 내용이 뭐냐고 물으면 다른 해석을 해주면 되니까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글 쓰는 실력이 늘었다. 눈에 띈 모양이다. 선임들이 연애편지 대필을 부탁하여 상황에 맞게 꾸며대며 여럿 써줬다.


한 번은 포대장 정신교육 시간에 편지를 배포해 주는데 선임 중에 한 명이 주소를 거꾸로 써서 편지가 되돌아왔다. 포대장님이 신기하다며 전체 앞에 낭독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구구절절 재미있다는 연애편지에 깔깔대고 대리 작성자를 찾다가 나를 알게 된 것이다. 그 뒤 당시 유행했던 제대할 때 가지고 나가는 추억록의 서시와 앞장의 글은 모두 내가 도맡아 쓰기 시작했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확실하지 않으면 검증되지 않으면 잘 쓰질 못한다. 기자가 된 것 같다. 그렇게 늘 쓰던 말과 글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그동안 사회생활에서 습득된 고정관념에 사로 잡힌 것이다. 그러다 보니 지금에 와서 그 당시의 그런 감각을 되살리려 학교로, 문예창작 모임으로 그것을 배우러 다닌다 신기하다.


돌이켜 보면 그때는 아무 생각 없었다. 배짱 하나로 텅 비워놓고 순발력으로 새로운 느낌으로 꿰맞춰 온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 감각을 시간과 돈을 투자하며 찾고 있다. 30년 전 원래 그런 선수가 아니었던가 가만히 보니


에라이, 배짱이 정답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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