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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롱혼 Jan 17. 2023

아내와 나는 같은 꿈을 갖고 있었다

먼 길을 돌아와서 이제야 아내와 진정 통했다

교육하다의 진짜 의미는 라틴어의 '에두코'에서 유래한 말로 ‘짐재력을 끌어내다’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 교육은 오히려 잠재력을 죽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부모가 경험했던 것을 기준으로 삼아 아이들을 한쪽으로 내몰고 있으니 학교에서든 집에서든 자기의 잠재력을 찾아낼 수가 없다.


나도 어릴 적 시장에 가시는 어머니께서 집 잘 보고 있어라 하시면 툇마루에 앉아 꿈적도 않고 정말 집 잘 보고 있던 아이다. 아버지께서 길을 건널 때는 이렇게 해라, 어른들 만나면 저렇게 해라, 인사할 때는 이렇게 매번 사사건건 교육차원의 잔소리 말씀에도 고개만 끄덕이면 수긍하였다. 아이들이 몰려 개울 건너 놀러 갔을 때도 집에 붙어 있어 동네 아주머니들에게 칭찬? 을 듣곤 했다. 억울하다. 반기라도 들며 가출이라도 했어야 했는데 왜 그런 행동을 못했을까? 하긴 그런 기회도 있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도시로 유학을 떠나다 보니 행동의 자유가 찾아왔다. 하지만 듣고 배운 교육이 어디로 가겠는가 그저 묵묵히 잘 안 되는 비효율적인 공부에 성과도 없이 쓸데없는 시간만 낭비하고 지냈다. 그렇게 해야 한다니까 그렇게 한 것이다. 심지어 대학 전공을 선택할 때도 공대를 가야 취직이 잘 된다는 막연한 말씀에 문학소년 어쩌고 저쩌고는 저 멀리 내팽겨 치고 공대로 가서 취직을 하였다. 효자다, 착하다고 난리들이다. 하지만 가슴속에 묻어둔 숯불은 언젠가는 다시 솟아오르게 되어있다. 회사에서 업무차 말레시아, 중국, 브라질, 유럽 등 외국을 다니며 점점 깨우치고 나의 내면의 자유스러운 행동이 하나둘 나오다 보니 이것이 객기로 보이고 이상한 행동으로 보였을 것이다. 부족하나마 진정한 나를 찾아 헤매었던 시가가 아이러니하게도 외국생활에서였다. 결국 나의 꿈을 펼친다는 미명아래 퇴사를 하였고 가장의 무게를 짊어진 채 그래도 완벽하지는 않아도 전보다 나은 영혼을 유지하며 살아왔다.


지금은 작은 회사의 사장으로서 작은 꼰대가 되어가며 매번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직원들에게 이기적으로 살며 자신의 내실을, 포텐셜을 키우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들 역시 방향과 목표가 설정이 안 되어 있으니 무엇을 이기적으로 해야 할지를 모르는 것 같다. 결국 이들 역시 기초 교육(잠재력을 끌어내는)이 안 되어 있는 것이다. 깨우쳤다는 나도 뒤늦게 이제야 나의 잠재력에 대해 고민하고 방향을 설정하고 나가지만 당시에는  내가 누구든 그건 중요치 않았다. 다만 부모가 원하고 사회의 칭찬만이 진리였던 것이다. 지금 와서야 나의 길로 가려고 하니 그동안의 결박을 하나씩 풀어내는 힘든 수순이 필요했고 지금 그것을 다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내 덕분에 유튜브에서 '유랑쓰'라는 VLOG를 함께 보고 있는데 대단한 철없는(?) 젊은 부부들의 삶이다. 다니던 직장과 재산을 처분(주식에 맡겨 두었다고 함)하고 달랑 유일한 재산인 배낭만 메고 외국의 도시들을 다니며 한달살이를 비롯 이 집 저 집 유랑을 하며 그들의 말대로 계획이 없는 것이 계획 인양 살고 있다. 참 밝고 명랑한 솔직한 젊은 부부다. 아내가 집중적 빠져들어 보고 있기에 나도 덩달아 같이 보며 그들의 삶이 더욱 궁금해져 그녀의 블로그까지 찾아 들어가 보게 되었다. 그들의 생각이 엿 보였다. 만일 그녀가 책을 쓴다면 자신은 책 제목을 ‘미친년처럼 살자’라고 쓴다 했다. '천박한 문장이지만 남의 시선은 무시하고 오롯이 내 감정에만 집중한 채로 살고 싶은 마음'이라고 부연 설명까지 붙여서 말이다. 심쿵하다.


그들은 이런 자신들의 삶의 실천을 진짜로 vlog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철없어 보이는 면도 있지만 꼰대가 아닌 척 무시하고 보면 대단하다. 이런 사람들이 교육을 제대로 받은 사람이다. 지금의 그 행동이 다 옳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런 정신이 좋다는 것이다. 갑자기 나도 철없이 그녀의 말 ‘계획이 없는 것이 계획이다’에 꽂혔다.


아내가 조용히 말한다.

저 젊은이들처럼 저렇게는 하지 못해도 비슷하게 우리 나이에 맞게 저렇게 살아보자고 한다. 나도 바로 응답했다. 그럽시다. 


통했다. 


그것이 오래 간직하고 있던 나의 인생의 꿈이기도 하니까, 그래서 지금 부지런히 글을 쓰며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아내와 우리 둘은 같은 꿈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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