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던스의 도움과 운동을 통한 적응. 하기 나름이었다
처음 학교에 간 딸이 돌아와서 즐거워한다. 내심 걱정을 많이 한터라 궁금했었는데 오늘 학교에서 자신을 가이던스 해줄 학생을 선정하는데 여러 명이 하겠다고 나서서 부끄러웠다고 한다. 원래 가디언 혹은 커스터디안 이라고 일컫는 만 17세 이하 자녀가 미국 유학을 할 경우 부모를 대신해서 미성년자 법적 보호 대리인역할을 하는 유학의 필수조건이다. 우리처럼 엄마와 함께 유학을 온 경우에는 이런 의무는 없다. 그런데 여기 이 학교에서는 자발적으로 학생들 중 신입 외국인을 가이던스를 하여 학교 적응을 도와주는 것이 있었다. 참 다행스러웠다. 우리에게 참 좋은 학교였다. 미리 말하지만 이때 가이던스를 해주던 학생을 나중에 성인이 된 후 다시 만나 우정을 나누었다고 했다.
이 학교를 선택하게 된 배경에는 엄마가 아이들을 이끌고 달라스에 도착하여 그곳 학군을 먼저 살펴보고는 가능한 한국학생이 별로 없는 곳으로 알아봤다고 했다. 대부분 한국학생들이 많은 곳은 학군이 좋다. 아마 한국의 교육열에 의해 좋은 학군을 우선 경쟁적으로 찾아가기에 그런 것 같다. 하지만 부작용도 많다 한국학생들끼리 쓸데없는 경쟁부터 그리고 한국말을 써도 불편이 없는 환경이다 보니 언어도 느리게 배워진다. 우리는 아예 처음부터 일부러 한국학생이 없는 곳을 찾다 보니 자연스레 학군은 좀 떨어지지만 이처럼 자체 가이던스를 받는 호사로 오히려 학교 적응이 편해지는 경우가 생겼다.
가이던스를 해주는 학생이 시간표 작성부터 교실 옮기는 것도 같이 해주고 특히 딸아이가 가장 두려워했던 혼자 밥 먹는 것도 무난히 해결되어 즐겁게 학교생활을 이어 나갔다. 거기에다 학교 오케스트라에도 가이던스의 추천으로 함께 가입하여 특별반 활동을 하는데 이곳 오케스트라 선생님께서는 조금 부족해도 엄청난 칭찬과 교내외 콘테스트 참가를 유도하여 자신감을 북돋아 주니 엄청난 실력을 가진 것으로 착각까지 하게 만들어 주었다. 자칭 첼리스트라며 자신감이 뿜뿜 했다. 나중에 한국에서 그런 아이들이 너무 많다는 것에 충격을 먹기는 했지만. 자연스러운 미국학교 생활의 시작은 한국학생들이 없는 곳을 택한 선택의 반전이었다.
반대로 9학년 말로 들어간 아들은 성격 탓에 바로 잘 적응하는 듯했다. 하지만 사춘기 시절의 억눌린 가슴과 언어의 벽에서 혼자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말은 없었지만 고민의 흔적을 여기저기 남겨 있어 마음이 아팠다. 제대로 안정을 찾게 된 것은 운동부에 들어가면서 이다. 한국에서도 축구를 좋아했던 아들은 주로 멕시칸들이 많이 들어있던 축구부에 들어가 그들과 부딪히며 운동으로 땀을 흘리며 동화가 되기 시작했다 물론 엄마는 걱정을 많이 했다. 어울리는 부류에 맘에 안 들었던 탓이기도 했다. 학교 생활에 안정이 되자 이번에는 골프부로 옮겨 매주 공짜로 필드를 나가는 특혜를 누리며 운동을 하다 보니 언어도 빨리 늘고 주변을 의식하는 비굴함도 없어지고 매사 당당해져 갔다. 특별활동을 음악보다는 운동 쪽으로 택한 것이 아들에게는 다행이었다. 그리고 학군이 비교적 낮은 학교다 보니 상대적으로 나중 대학 갈 때는 다른 학교 보다 내신의 혜택을 받아 조금 수월하게 진학도 하였다.
지금 아들의 영어는 미국에서 태어났냐는 말을 자주 들을 정도로 유창하다 반면 딸은 한국영어가 녹아 있다. 이것은 틀릴까 봐 염려하는 소심한 마음의 발로였다 심지어 엄마의 부탁으로 통화를 해도 다른 방에 가서 숨어서 하던 조심성의 딸과 무작정 대들어 말을 하는 아들의 상대를 대하는 자세가 컸던 것 같다. 언어는 자신감인 것이 확실하였다.
이렇게 3년을 학교에 적응하며 도중에 또 학교를 한번 옮기면서 훌륭히 중, 고등학교를 마쳤는데 이제부터 또 다른 변화가 생겼다. 한국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아들은 현지에서 바로 대학을 입학해서 혼자 독립해 생활하게 되었고 미성년자인 딸은 엄마를 따라 한국으로 들어와 한국 고등학교에 편입을 하게 되어 생각하지도 못한 우리 교육에 대한 혼란을 경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