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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롱혼 Feb 20. 2023

미래를 아는 사람

그래서 오늘에만 충실하려고 한다

몇 해 전 아내가 미국에서 잠시 들어와 친구들을 만나러 다니더니 어느 날 싱글벙글 들어오며 슬며시 옆에 앉는다. 엄청 용한 데가 있다 하길래 친구들과 같이 점을 보러 다녀왔다고 한다. 물론 이런 것은 안 믿는데 요즘 점 보는 게 유행이라 해서 같이 다녀왔다는 사족까지 붙이면서 말이다. 나는 그것 보다 싱글벙글의 의미를 알고 싶을 뿐이다.


그 점쟁이가 얼굴을 보더니 다짜고짜 아들이 잘되고 딸이 잘되어 덕을 본다는 등의 말을 했다 한다.

나는? 없어? 안 물어봤어?

솔직히 궁금하였다. 별 말이 없는 것을 보니 내 이야기는 별로 안 한 모양이다.


누구나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하다 보면 본인이 품고 있는 문제와 답을 스스로 이야기한다. 아마 본인은 그러는 줄 모를 것이다. 하물며 그 무렵 아줌마들의 관심사를 콕 집어 답해주는 중용(中庸)의 실천가인 점쟁이의 눈치에서 나오는 말이 용한가, 나도 그런 말은 할 수 있겠다며 대꾸를 하려다 참았다. 그것도 좋은 말에 훼방을 놓는다고 핀잔을 받을까 봐서이다.


미래를 알아본다는 것은 시간 여행자가 아닌 이상 무슨 확신과 의미가 있을까 그도, 나도 지금 여기에 서 있는데 말이다. 다만 긍정의 기운을 얻어 삶의 원동력으로 더 열심히 살아보려는 마음가짐이다 말은 한다지만, 좀 더 원초적으로 말한다면 기적이나 행운을 기대하는 마음의 욕심이 더 큰 게 아니겠는가.


사람은 살아가는 것 인가? 살아지는 것 인가?

브런치에서 내가 구독하는 지담 작가의 '1000일의 새벽독서로 배운 삶의 관점'이라는 어느 글을 읽고 한참을 멍하게 생각에 잠겼다. 지담 작가께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우주가 장엄한 질서를 위해 나를 움직이는 것'이라 결론 형식으로 말했다. 천일 간 새벽독서를 통해 얻은 깨달음 이라는데 저주파의 낮은 울림이 왔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선택하는 주체가 아니라 선택되는 객체다'라는 삶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시작되었다는 작가의 말까지 그리고 얼마 전 만났던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친구 김명호의 말 ' 인생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는 것이다'라고 느닷없이 던졌던 그의 화두와도 결이 통했다.


다윈의 진화론을 들먹이다 캥거루의 새끼가 태어나자마자 자력으로 육아낭을 찾아가는 것을 보라며 그것을 말하는 친구는 가르쳐 주지 않아도 그렇게 살아진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듯했다. 거시적 시간으로 보면 지담 작가의 비유가 더 적절할지 모르겠다. 우주가 장엄한 질서를 위해 나를 움직 인다는 것. 그것이 자연 질서라고 인정을 하고 나면 먼 미래의 확고 부동의 정확한 정답을 알고 있기에 마음이 편하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적극적인 삶으로 좀 더 뜻깊게 살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무작정 살아진다고 손을 놓고 자연의 처분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바보는 없기 때문이다. 인생이란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라 했던가. 그 과정에서의 도전과 성취의 기쁨을 즐기며 거대한 우주의 장엄한 질서 속의 움직임의 처분에 맡기는 것이다.


점쟁이의 운도, 우주의 질서도 지금의 선택은 내가 한다. 먼 미래의 결과는 우리가, 내가 정확히 이미 알고 있기에 마음 편히 나는 오늘에만 충실하려 한다. 그것이 인생고 우리의 삶이다.


'지금, 한 가지 행동을 시작하라'

Do one thing now - 존 크럼볼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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