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의 신뢰성과 해석 가능성 위기
오랜만입니다. 이 뉴스를 쓰는 건
아루매도 요사이 일이 많다보니까 이렇게 적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모두 화이팅!!
인공지능 시대, 인간은 더 이상 단순한 명령자가 아니다. 인간은 이제 AI와 사고를 나누고, 판단을 유도하며, 그 결과의 의미를 해석해야 하는 존재로 재정의되고 있다. 이와 같은 지점에서, 구글이 발표한 '제미나이 2.5 프로(Gemini 2.5 Pro)'의 CoT(Chain-of-Thought, 사고 사슬) 기능 비활성화는 단순한 기능 축소가 아닌, 철학적·구조적 전환을 의미한다.
사고 사슬 기능은 AI가 복잡한 문제에 대해 결론을 내리기까지의 중간 사고 단계를 사용자에게 투명하게 보여주는 일종의 ‘사유의 흔적’이다. 이는 단순한 출력을 넘어, 왜 그 결과가 나왔는지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해석 가능성’을 제공한다.
구글은 해당 기능을 비활성화하며, 대신 압축된 요약 형태의 사고 경로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겉으로 보기엔 사용 편의를 위한 조치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사용자의 해석 능력을 저하시키고, 동시에 AI의 ‘의사결정 근거’를 불투명하게 만들 수 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이는 개발자들의 격렬한 반발로 이어졌다. “왜 모델이 실패했는지를 이제는 추측할 수밖에 없다”는 외침은, 단순한 불만이 아니라 시스템 구조 전체에 대한 위기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이는 결국, AI가 더 이상 설명하지 않는 존재가 되었음을 시사한다.
AI는 결국 '계산 가능한 의도'다. 그것은 인간의 지능을 모사하지만, 그 본질은 확률적 추론과 벡터 간 연산의 연속이다. 문제는 인간이 이를 신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도달했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데 있다. 그리고 CoT는 바로 그 간극을 메우는 가교 역할을 해왔다.
그렇다면 CoT의 비활성화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첫째, 해석 가능성의 축소다. 사용자는 AI가 어떤 근거로 결론을 도출했는지 판단할 수 없게 된다. 둘째, 디버깅의 난이도 상승이다. 개발자들은 에이전트형 시스템이나 정교한 프롬프트 설계 과정에서, AI의 중간 사유 단계를 기반으로 개선해왔다. 이 기반이 사라지면 문제 해결을 위한 반복 작업은 무의미한 추측의 영역으로 밀려난다.
셋째, 신뢰의 구조가 바뀐다. 특히 기업 영역에서는 AI가 어떤 판단을 어떤 경로로 내리는지를 내부 이해관계자에게 설득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CoT는 일종의 ‘설명 책임(explainability)’을 가능하게 했고, 이는 곧 신뢰의 기반이었다. 이 기반이 사라지면, 사용자는 결과에 의문을 갖게 된다.
더욱이 오픈AI나 구글이 CoT를 감추는 이유가 ‘지식 증류(distillation)’를 피하기 위한 전략적 조치라는 사실은, 기술의 폐쇄성과 정보 독점의 문제가 결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경쟁사의 모델 모방을 막기 위한 비공개 정책이 해석 가능성과 투명성이라는 공공적 가치를 희생시키는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이제 AI 기술은 단지 기능의 문제가 아니라, 철학의 문제로 전환되고 있다. AI가 결과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 결과인가’를 말하지 않을 때, 사용자는 그 판단을 그대로 수용해야 하는가? 아니면 판단의 과정을 요구할 권리를 갖는가?
여기서 중요한 개념이 바로 ‘능력’과 ‘투명성’이다. 능력은 단지 수행의 가능성이 아니라, 그 수행이 특정한 방향성을 가질 때 의미를 가진다. 이는 물리학에서의 ‘력(力)’이 방향을 갖고 운동을 생성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마찬가지로 AI의 판단이 방향성을 갖는다면, 그것은 설명될 수 있어야 하며, 해석 가능해야 한다.
이 지점에서 CoT는 단지 하나의 기술적 선택이 아닌, 철학적 선언이다. ‘AI는 인간에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선언은 곧 ‘AI의 결과를 맹신하라’는 구조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는 인간 중심 기술이라는 AI의 본래 방향성과 충돌한다. 인간은 AI를 사용하지만, 동시에 AI의 판단에 영향을 미쳐야 하는 존재다. CoT는 바로 이 상호작용의 접점이었다.
결국, 이번 사태는 ‘투명성의 비용’을 누가 감당할 것인가의 문제다. 기업은 경쟁 우위를 위해 일부 정보를 감출 수 있지만, 사회는 그 정보를 통해 AI를 해석하고 규제해야 한다. 기술과 사회의 균형 속에서, 우리는 AI에게 ‘생각의 흔적’을 요구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