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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든 Aug 15. 2021

비 오는 날의 소풍

그날은 참 이상한 날이었다. 비가 올 듯 말 듯 겁주는 하늘에게 보란 듯이 양화공원을 향했다. 여름의 한강변은 오늘이 지나면 없을 것 같아서였다.


  직접 만든 도시락과 피크닉 세트를 들고 다리를 건넜다. 강이 잘 보이는 한적한 곳에 자리를 펴고 시간을 보냈다. 햇빛이 구름에 가려 선선다. 사진을 부탁한 행인도 열정적인 것이 우리 마음에 쏙 들어 에그타르트를 하나 전했다.


  도시락을 다 먹으면 비가 올 것 같다고 말했는데, 우습게도 정말 그대로 되었다. 팔에 한 방울, 볼에 한 방울을 맞으니 실감이 나서 서둘러 자리를 정리했다. 아쉬움보다는 시트콤 같은 상황에 웃음이 났다.


  소나기를 맞으며 돌아간 피크닉 가게에서는 젖었다며 따뜻한 차를 내어주셨다. 절대 사서는 마실 일 없다고 생각했던 페퍼민트차가 처음으로 맛있었던 날이었다. 비는 곧 그쳤고, 재미있는 추억이 하나 생겼다며 즐거워했다.


  이상한 일이다. 소나기에 허둥대며 망친 소풍이 즐겁게 기억될 수 있다는 것이. 그전에 비가 올 것을 알면서도 돗자리를 편 것도 말이다.


  비가 와도 즐거울 수가 있구나. 비가 올 것을 알면서도 소풍을 갈 수 있구나. 우리 삶도 그렇게, 웃으며 빗속을 걸어보자. 예전엔 못했어도, 지금은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왠지 모르겠지만 오늘은 그냥 그런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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