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빵언니' 김연경 선수가 지난 12일 국가대표에서 은퇴했다. 최근 한국 여자배구팀의 성취와 인기는 김연경 선수의 '하드 캐리'라는 데에 이견이 없을 것이다. 남녀 배구를 통틀어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연봉을 받던 김연경 선수는 이제 'Do you know 연아 킴?', 'Do you know 지성 팍?'을 잇는 '두 유 노 클럽'의 멤버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김연경이라는 스타 선수의 국가대표 은퇴 이후에도, 배구에 대한 이러한 환호가 이어질 수 있을 지에는 의문이 든다. 배구협회라는 근본적인 시스템이 불안하기 때문이다. 김치찌개 회식부터 파벌 논란, 샐러리캡 논란, 선수 혹사론, 유망주 홀대론 등 공론화된 문제만 해도 셀 수 없다. 김연경 선수는 오히려 예외적인 인물에 가까우며, 본인도 협회를 수차례 작심하고 비판했다.
비범한 한 사람에 힘입은 눈부신 성취가 오히려 한국 배구의 발목을 잡을까 걱정된다. 감나무에서 감이 떨어지길 기다리듯, 곪은 시스템은 방치한 채 또 한 명의 스타 선수를 기다리기만 할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2014년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여자배구팀의 기념회식
2020년 초, K-방역은 정은경이라는 스타 공무원으로 대표되었다. 정은경은 이전 정부에서 경질되었다가 현 정부에서 자리를 되찾은 의사 출신 공무원으로, 상징적인 서사를 가진 인물이었다. 정부는 K-방역의 얼굴로 정은경을 내세웠고, 국민들 또한 그의 말을 신뢰하며 협조하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현재, 정은경의 위상은 '코로나 전사'에서 '확진자 수 알리미' 정도로 추락했다. 그는 없는 시간을 쪼개가며 방역에 관한 논문까지 작성하는 등 초인적인 노력을 기울였으나, 그동안 한국의 방역 시스템은 거의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작년의 국민들은 그의 수면시간과 하얗게 샌 머리를 걱정했으나, 올해는 하는 게 무엇이냐며 비난을 보낸다.
또한,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키는 모범적인 국민'이라는 자부심을 활용하는 홍보전략도 함께 활용되었었다. 이 전략도 크게 보면 개개인의 선한 행동으로 사회를 지키자는, 영웅주의 패러다임의 일환이다. 이 또한 이제는 효력이 다하여 비웃음을 사고 있다.
브리핑하는 정은경 질병관리청장
영웅적인 개인의 활약에 기댄 나머지, 근본적인 시스템의 정비가 없었기 때문이다.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여전히 마스크 속의 국민들은 친구와 가족을 만나지 못하고, 의료진은 과로에 시달리며, 소상공인은 빚을 갚지 못했다. 수칙을 준수한 이들에 대한 합당한 보상, 수칙을 어긴 이들에 대한 처벌도 사실상 부재하여 '방역 모범 국민'이라는 자부심도 결국 땅에 떨어졌다.
그러니 결국 지속 가능한 것은 비일상적인 영웅의 찬양보다 상식적인 시스템이다. 의료진이 자부심을 가지고 활동할 수 있는 환경, 방역수칙 준수에 대한 상과 위반에 대한 벌, 지금의 손실이 머지않아 보상되리라는 믿음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그 자체로 건강하게 작동하여 구성원을 보호하고 신뢰를 주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내내 영웅주의를 비판했지만, 이 글의 부제에서는 영웅주의의 '졸업'이란 표현을 썼다. 영웅주의가 필요한 시점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연경이라는 영웅이 있었기에 배구라는 종목에 관심이 끌리고 협회의 문제도 수면 위로 드러났다. 정은경과 협조적인 국민이 있었기에 초창기 확진자 수를 제어하며 시간을 벌 수 있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영웅의 퇴장 이후다. 개인의 활약으로 시동이 걸렸다면 동력을 유지하는 일은 조직의 몫이다. 스스로 페달을 밟지 못하고 영웅을 다시 기다리는 것은 유아기적 사고에 다름 아니다.
한국 양궁은 건강한 선순환 시스템으로 88 올림픽 이후로 매번 새로운 선수를 발굴하며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히어로 김연경도 좋지만 더 많은 곳에서 안산과 김제덕의 경우를 보고 싶다. 이젠 상징보다는 상식과 신뢰의 시스템이 작동하는 국가와 공동체에 머무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