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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든 Mar 29. 2022

두 세계의 만남에 대하여

사랑과 자아의 확장

동계 올림픽이 끝나던 날, 우리 사이엔 이런 대화가 탄생했다.

- 오빠!! 나 하고 싶은 게 생겼어!!

- 쇼트트랙 하고 싶다고?

- 아니....

- 쇼트트랙 하는 남자가 만나고 싶니 혹시?

- 아니...... 아이스링크장.... 가고 싶다고...

- 그래? 그래, (생각보다 평범해서) 다행이다.


   J는 늘 하고 싶은 것이 선명하다 못해 살아 움직이는 사람이다. 먹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일이 무섭도록 분명하고 확실하다. 인스타그램에서 찾아낸 핫플레이스는 더 유명해지기 전에 꼭 가야 하고, 종종 어떤 장소가 미처 유명해지기도 전에 찾아내기도 한다. 떡볶이를 먹고 싶은 저녁에 파스타나 짬뽕, 카레를 들이댔다가는 큰 사단이 난다.


   해외여행을 좋아해서 방학만 되면 학기 중보다 만나기가 어려웠다. 나보다 3년쯤 덜 살았지만, 한국에서 보낸 시간은 비슷할 것이다. 휴대폰 메모장의 버킷리스트는 엄지를 다섯 번 이상 크게 끌어올려도 끝나지 않았다. 건축물이면 건축물, 인테리어면 인테리어, 맛이면 맛, 피어나는 꽃이면 꽃 각양각색의 이유로 휴일 일정이 채워져 있고, 먹고 싶었던 음식이 등장하면 형태를 기록하기 힘든 춤을 춘다.


   반면에 나는 내 욕구에 무관심하다. 내게 끼니는 끼니일 뿐, 탄단지만 맞추면 요리의 종류는 딱히 개의치 않는다. 만 가지 음식도 혀의 미뢰를 몇 초간 자극한 후에 위장에서 다 똑같은 영양소가 될 유기 합성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해외의 도시들은 그저 낯설어서 낯선 곳이며, 낯선 느낌을 위해서는 옆 동네로 향하는 전철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번 여름휴가에 하고 싶은 것이 있냐는 말에는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으나, 묻는 이의 머쓱함을 배려해 구태여 카페에서 책 읽고 밀린 영화를 보겠다는 뻔한 대답을 한다. 이런 두 사람이 어떻게 관계를 이어가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제 자동응답기에 녹음해 두어야 할까 싶을 정도로 자주 들었다.


   다른 세계관 속에 사는 두 사람이 만나는 것은 보통 충돌로 이어지기 쉽다. 디즈니의 발랄한 공주들과 어울리는 고담시의 조커를 상상할 수 없듯이 말이다. 그러나 한 가지 원칙만 지켜진다면,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과 같이 최고의 흥행을 내는 이야기가 쓰일 수도 있다. 다른 세계에서 쓰인 이야기 위에 내 세계의 이야기를 덮어 씌우려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물론 어려운 일이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이질적인 세계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두려움은 타인으로 하여금 내게 익숙한 방식으로 행동해달라고 소리친다. 당신이 어떤 세계에서 살아왔건, 그쪽 세계의 방식은 내가 잘 모르겠고, 나는 이렇게 살아서 편하고 이게 옳다고 믿으니 이렇게 행동해달라고 말이다.


   이러한 생떼는 가까운 사이일수록 쉽게 부려지며, 사랑한다고 부르는 관계에서는 극단적으로 많아진다. 가족이건, 연인이건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생떼가 발현된 순간, 받아들임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관계에 속한 이들에게 상처를 남긴다.


   자아를 세계 속에서 형성된 인식체계라고 한다면, 사랑은 자아의 확장이다. 내 손과 눈이 닿는 곳에서 형성된 자아의 경계를 허물고, 두 사람의 손과 눈이 닿은 곳까지 넓히는 것이다. 함께 하기로 결심한 이의 세계를 내 것으로 덮지 않고 단지 나란히 두어 영역을 넓히는 것이다.


   여기에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익숙한 나의 방식 외에도 다른 삶의 방식이 있으며, 그 방식 또한 그에게 최선의 방식이었음을 신뢰하는 용기이다. 이 용기는 그가 나를 잘 받아줄 것이라 믿고 옥상에서 몸을 던지는 것보다 작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일단 자아를 확장하게 되면, 그러니까, 그 용기를 내어 사랑이란 것을 하게 되면, 두 개의 세계를 나란히 둘 수 있게 되면, 만들 수 있는 이야기가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많아진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내가 일본식 돈카츠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카카오 맵에 가야 할 맛집 표시가 하나둘 늘어나고 있고, 단골 카페 사장님과 잡담을 나눌 수 있게 되었고, 나의 문장이 썩 좋다는 것을 알아 글쓰기에 도전해보았다.


   나는 여전히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늘 헤매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다섯 해 동안 J를 만나며 나도 알지 못했던 내 생각과 마음들을 발견해나가니, 글을 완성하는 것이 갈수록 수월해짐을 느낀다. 언젠가 내가 하루에 한 편의 글을 쓸 수 있게 된다면, 감사를 돌릴 사람은 그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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