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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든 Oct 06. 2022

인생철학의 무용함, 불쾌함, 해로움

늦은 퇴근길, 지하철에 앉아있으면 어김없이 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장년의 무리가 눈에 띈다. 대화를 자제하고 마스크를 착용해달라는 안내방송이 나왔으나, 그들은 자신을 향한 방송이라고는 짐작조차 하지 못한 채 만담을 이어간다. 달갑지 않게 들리는 목소리에는 내가 살아보니 사람은 어때야 한다, 어떤 사람이 성공하더라, 세상은 이렇더라 하는, 취한 어른들이 으레 떠들곤 하는 ‘인생철학’이 담겨있다.




   사람은 누구나 내가 만든 법칙이 통용되는 자기만의 세계에 산다.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가 ‘아비투스(Habitus)’라고 부른 이 세계는 수십 년간의 경험이 퇴적되어 단단하게 굳어진 사고 체계를 뜻한다.


   아비투스는 모두가 보편적으로 지닌, 나와 타인을 구별하는 특성이라 그 자체로 좋고 나쁨이 없다. 그러나 아비투스가 다양하다는 것을 모르거나 무시하는 것, 그리고 타인에게 주입하는 것은 종종 문제가 된다. ‘인생철학’이라는 그럴듯한 포장지를 씌운 ‘내가 겪어보니 ~는 ~다’ 단정적 형태의 명제 모음이 이에 해당한다.


   인생철학이라 부르는 것들은 언뜻 귀납적 추론의 형태를 띠지만, 협소한 경험을 제외하면 어떤 타당한 근거도, 사유도 담보하지 않기에 무용하다. 그럼에도 이를 논하는 이들은 그것이 보편적 진리인 양 듣게 하니 불쾌하다. 신념의 탈을 쓴 아집으로 뭉친 지도자의 해로움 또한 이미 경험한 바 있다.


   이젠 이 무용하고, 불쾌하며, 때론 해로운 인생철학 류의 언어가 오프라인을 넘어 SNS에서도 흔히 보인다. 성공하고 싶으신가요? 이것만 하면 됩니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으신가요? 연애 잘하고 싶으신가요? 이게 정답입니다. 세련된 이미지로 꾸며졌으나 지하철과 국밥집, 편의점 앞에서 들리는 ‘인생 선배’의 음주 만담과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인생철학의 ‘철학’, Philosophy의 어원은 ‘지혜에 대한 사랑’이다. 정말 인생철학이 ‘철학’이 되려면 말로 떠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온 길이 옳은지, 앞으로 갈 길이 옳은지, 다른 길은 없는지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A는 B다’ 같은 닫힌 명제가 아닌 ‘A는 왜 B일까, 정말 B일까’하는 질문의 형태로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A는 C일 수도 있다는 타자와 기꺼이 대화해야 한다.


   질문이 없는 인생철학은 철학이라 부를 수 없으며, 사실 대다수가 그렇다. 질문하고, 경청하고, 사유하는 것만이 인생의 철학을 찾아내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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