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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든 Oct 13. 2022

개소리에 대하여(On Bullshit)

친일 국방 논란의 예

개-소리 [개:소리]
[명사] 아무렇게나 지껄이는 조리 없고 당치 않은 말을 비속하게 이르는 말(표준국어대사전)


   먼저 자극적인 단어 선정에 양해를 구한다. 도덕철학자 프랭크퍼트(H. G. Frankfurt)가 발간한 ‘On Bullshit’의 번역서, ‘개소리에 대하여’의 의미를 살리고자 부득이 비속어를 활용했다. 그리고 작금의 사태를 지칭하기에 ‘개소리’보다 적절한 말을 찾기 어려웠다.


   프랭크퍼트는 철학자답게 위의 저서 수십 페이지에 걸친 논증으로 ‘개소리’의 위상을 밝혔다. 요약하자면, 개소리는 참말도 아닌 것이 ‘거짓말’이라고 하기에는 좀 부족하고, ‘헛소리’와는 또 달리 분명하고 교묘한 의도를 가진 말 정도로 볼 수 있겠다. 참과 거짓의 경계를 흐리며 목적을 가지고 진실을 무시하는 발화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제시된 트럼프의 예는 흥미롭다. 그는 ‘수천 명의 무슬림 미국인이 9/11 테러를 지지했다’든가, ‘살해된 백인의 81%가 흑인에게 당했다’든가 하는 개소리를 일삼았다. 그리고 누군가 진실을 제시했을 땐 이미 온 미국이 분노에 휩싸여 ‘수천 명’, ‘81%’와 같은 수치는 중요하지 않은 상황이었고, 공고한 지지율과 함께 멕시코 국경에 장벽이 세워지고 있었다.


   개소리는 의도적인 거짓말보다 나쁘고 위험하다. 거짓말은 최소한 진실을 인지하고 왜곡을 위한 정성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적어도 진실을 존중하는 셈이다. 프랭크퍼트는 이를 같은 게임의 반대편에 있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개소리는 게임의 룰을 무시한다. 진리를 존중하지도, 정면으로 맞서지도 않으며 오히려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다. 더욱이 진실이 드러났을 때도 거짓말은 서둘러 달아나지만, 이미 목적을 달성한 개소리는 뻔뻔함을 유지한다. 진실을 들이대는 이를 ‘사소한 부분에 집착하는 사람’으로 만든다. 그래서 개소리는 거짓말보다 훨씬 큰 진리의 적이다.

   



   야당의 대표가 한미일 연합훈련을 두고 ‘극단적 친일 국방’으로 지칭하며 비난했다. 이 비난에 동원된 단어는 '독도 근처', '한반도에 욱일기', '구한말 일제의 조선 침략' 등이다. 물론 역할이 확대되고 있는 일 자위대에 대한 우려, 한일 군사협력에 대한 고민은 필요하다. 그러나 이 발화의 목적은 다른 데 있는 듯하다.

   

   그에게 훈련장소가 오히려 '일본 근처'라는 것과, '한미일 군사동맹과 연합훈련은 별개'라는 것, 조선과 한국의 국제정세 차이는 중요하지 않다. 핵 위협 대응이라는 연합훈련의 목적, 그리고 현 야당의 집권기인 2018년 6월에도 한미일 연합훈련이 있었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자극적인 언어로 지지층에게 반일 감정을 일으켰다면 그걸로 이미 목적은 달성된 것이다. 누군가 사실을 지적하면 ‘당신 매국노냐’로 받아치면 된다.




   이에 대한 여당의 개소리는 더욱 심각하다. 여당의 비대비대위원장은 “조선은 일본군의 침략이 아니라 안에서 썩어 문드러져 망했다”, “일본은 조선왕조와 전쟁을 한 적이 없다”는 어이없는 주장을 하고 말았다. 식민사관에 “그럼 인공기는 걸려도 괜찮다는 말이냐”는 색깔론은 덤이다.


   사실관계를 바로잡고 정정하려 하는 목소리에는 “역사 공부 좀 하시라”, “그래서 경기지사 경선서 탈락한 것” 따위의 더욱 큰 개소리로 대응했다. 어디부터 반박해야 할지 막막할 지경이다. 진실에 대한 태도가 개탄스럽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친북 프레임’을 통한 지지층 결집뿐이다. 야당의 그것보다 훨씬 어설프고, 노골적이지만 말이다.


   전쟁으로 세계정세가 요동치고, 경제와 기후 등 집중해서 풀 문제가 산적한 상황에, 본질만 비껴가는 거대 양당의 무책임에 머리가 아프다.

   



   프랭크퍼트는 개소리가 생산되기 쉬운 상황을 한 가지 제시했다. 자신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데도 말하기를 요구받는 경우다. 말할 기회가 지식을 넘어서는 지점에서 개소리의 생산은 활발해진다. 그런 면에서 매체가 발달할수록 개소리가 만연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대로 두어도 좋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적절한 대응이 필요하다.

   

   개소리는 거짓말보다 대응하기 어렵다. 쉽게 내뱉은 개소리를 반박하려면 상당한 노력이 필요한 데다가, 개소리쟁이는 처음부터 진리 값에 관심이 없어 대응 앞에서도 뻔뻔하기 때문이다. 치밀한 반박으로는 여간해선 타격이 없다.

   

   개소리의 총량을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개소리쟁이에게서 마이크를 뺏는 것이다. 개소리를 일삼는 이들을 공적인 공간에서 끌어내리고 진실성을 갖춘 이들이 말하도록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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