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을 견디는 일
학문을 한다는 것은 끝없이 부끄러움을 마주하고 넘어서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1박 2일의 연구실 자체 학술 세미나를 다녀왔다. 본의 아니게 연구실의 집행부가 되어, 서른 명 가까운 석‧박사 과정생과 선배 박사님들을 가평의 한 펜션에 모으고, 식사를 준비하고, 발표를 편성하고 자료집을 만들어 가져갔다.
이런 눈에 보이는 준비는 차라리 수월한 것이었는데, 이전 글에서 몇 번 언급한 학위논문 계획을 이곳에서 공개했기 때문이다. 경추성 두통을 데리고 썼으나 여전히 헤매고 있어 스스로도 영 자신이 붙지 않은 그 원고를 학식이 뛰어난 이들의 앞에서 읽어 나가야 했다.
숨이 막히고 아찔해 시야가 흐려짐에도 발표를 마쳤다. 이어지는 토론 시간에는 고개를 숙이고, 얼굴을 가리고,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을 견뎌야 했다. 태연한 척하려 안간힘을 썼지만 내가 연기에 그리 능숙하지 않은 것을 안다.
과연 손을 든 선배들의 말은 매웠다. 뜨거웠다. 짜고 자극적이었다. 그도 당연할 것이 그 영역에서 10년은 족히 읽고 쓰고 생각하던 이들이며, 어떤 분은 교장이고, 교감이고, 수석교사고, 장학사고, 교수였다. 공부하겠다며 들어온 지 이제 2년을 바라보는 나의 발표가 어떻게 보였을지는 너무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지도교수님은 그곳에 말을 보태지 않았다.
발표와 토론이 모두 끝난 후에는 “나도 석사과정 때는 그랬다”며 위로 아닌 위로를 받았다. 내심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거나, “처음 치고는 잘했다”는 말을 기대하기도 했으나, 실제로 그렇지 않았기에 “그토록 못한 것이 자연스럽다”는 덕담이 뭐랄까, 씁쓸했다.
사실 큰 애정과 열정을 가지고 시작했기에 남들보다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정말이지 단 한 개의 근거도 없는 생각이 없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선배들은 그런 자만심을 꿰뚫어 본 것처럼 날 것의 강한 조언을 퍼부었다. 이 분야에서 필요한 것은 자만심이 아니라 겸손과 노력뿐이라는 것을 알려주고자 했던 것일까. 혹여 그런 의도가 없었을지라도 나는 그렇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유익했다. 열 시간을 앉아서 고민했던 것보다 10분의 토론 시간에 얻은 연구의 방향성과 방법들, 가지치기할 요소들에 대한 조언 들이 가치 있었다. 학문이란 것은 이토록 적나라하게 공유되고 날카롭게 비판되기에 발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번개가 치듯 번쩍 드는 기발한 생각보다, 공유와 비판에서 오는 부끄러움을 견디는 것이 학문의 길을 걷는 정도가 아닐까 싶다. 사실, 학문을 넘어 인생의 조금 더 큰 영역에서도 통용될 원칙으로도 유익할 것이다.
그러니 ‘잘’ 쓰려는 애송이 마음가짐보다, 일단 쓰고 보여주고 개선하는, 그 부끄러움을 견디는 연습을 지속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