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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은 하나지만, 해석은 아이마다 다르다.

미국 교육에서 '사고 중심 질문'을 많이 하는 이유

by 에이든엄마

에이든이 선생님이나 친구 부모에게 받는 질문을 곁에서 듣다 보면 늘 흥미롭다.

그들의 질문은 사실 확인에 비중을 두기 보다, 그 순간 아이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또 그 이후 어떻게 행동할지에 대한 생각을 묻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이런 질문들이다.


"그래서 너는 어떻게 느꼈어?

"그 일은 너에게 어떤 의미였니?"

"다시 그 상황이 온다면 뭐라고 말하고 싶어?"



이런 질문은 사실을 확인하려는 게 아니다.

아이가 그 경험을 어떻게 해석하고 자신만의 관점으로 다시 풀어낼 수 있는지를 묻는 것이다.


내가 어릴 때 자주 들었던 질문과 비교하면 그 차이는 더 뚜렷하다.


"시험 점수 몇 점 받았어?"

"친구랑 왜 싸웠어? 그래서 너는 뭐라고 했어?"

"그거 사실이야? 거짓말 아니지?"


이처럼 사실 확인에 초점이 맞춰진 질문들이 대부분이었고, 질문 뒤 나의 감정과 의견을 묻는 경우는 거의 없던 것 같다.

나 역시 지금도 에이든에게 비슷한 질문을 가끔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곳에서 내가 느낀 질문의 방향은 완전히 다르다.


첫째, 아이가 그 일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둘째, 어떤 생각을 했는지,

셋째, 다시 그런 상황이 온다면 어떤 선택을 할지를 묻는다.


이 말은, 질문의 초점이 사건을 보고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 속에서 자기만의 시선으로 해석하도록 돕는 데 있다.


똑같은 사건을 겪었어도

어떤 아이는 분노를 말하고,

어떤 아이는 성장을 말하고,

또 다른 아이는 유머로 풀어낸다.


결국 다양하게 표현하는 아이들을 보면,


"일어났던 사건은 하나지만, 해석은 아이마다 다르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학교에서 하루 동안 '그리스인'이 되어 그리스 문화를 체험하는 행사가 있었다.

아침부터 에이든은 너무나 들떠서 그리스 음식과 놀이, 올림픽 역사까지 찾아본 후 신나서 학교에 갔다.

그런데 학교에 간지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오피스에서 전화가 왔다.


내용인 즉,


에이든이 친구와 싸워서 그 벌로 지금 당장 집으로 돌아가야 하니 픽업을 오라는 전화였다.


너무나 당황한 나는 허둥지둥 학교로 갔고, 우울해 있는 에이든을 만났다.

잠시뒤, 교감 선생님으로부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사실 에이든은 친구를 때리거나 밀치지 않았어요. 오히려 친구가 에이든의 목을 조르고 넘어트렸어요. 하지만 처음 시작은 락커룸에서 하지 말아야 할 장난으로 서로 시작했고, 그러다 점점 흥분한 친구가 에이든에게 싸우자며 공격을 한 상황입니다.
에이든이 그 친구와 같은 레벨의 잘못을 한 것은 아니지만 몸으로 시비가 붙은 이상 아무리 에이든이 자기 방어를 했다고 해도 규칙상 한 명만 처벌할 수 없기 때문에 에이든도 그 친구와 함께 지금 당장 집으로 가야 합니다."


교감선생님의 말을 다 듣고, 나는 에이든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주차장에 세워둔 차 앞에 도착하자 에이든은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며 말했다.


"엄마, 나는 너무 억울해. 그리고 나는 싸운 게 아니야. 내가 장난친 건 잘못이지만 그 이후에 친구가 날 밀친 건 내 의지가 아니라 그 친구 잘못이잖아. 내가 왜 똑같은 벌을 받아야 해?"
"그리고 나는 오랫동안 그릭 페스티벌을 기다렸어. 내가 싸우려고 한 것도 아닌데 왜 이 일로 집에 가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너무 슬퍼"


에이든은 닭똥 같은 눈물을 한참 흘렸고, 나는 에이든이 진정되길 기다렸다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온 뒤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서야 부글거리던 감정이 가라앉은 듯 다시 말을 이어갔다.


"엄마, 학교에 데리러 오게 해서 미안해. 그리고 선생님이 오늘 아침에 페스티벌 때문에 다들 흥분해서 다칠 수 있으니 절대로 락커룸에서 장난치지 말라고 하셨었어. 그런데 나랑 Jonny가 가방 돌리기 장난을 치는 바람에 이런 일이 생겼어. 생각해 보니까 내 잘못이 큰 것 같아. 나도 그릭 음식 주문 한 거 못 먹어서 너무 속상한데 Jonny도 지금 많이 후회하고 있을 것 같아."


그리고 조금 뒤 친구에게 편지를 썼다.


"Jonny. 오늘 일에 대해 미안해. 우리가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하려던 건 아니었어. 우리 둘 다 올림픽 활동에 참여하지 못해 속상하다.
그래도 좋은 점은, 오늘 학교를 쉬게 됐다는 거야! 다시 한번 미안해."



나는 에이든이 이번 사건을 친구에게 사과 편지로 마무리하는 것을 보고 정말 고맙고 대견했다.


왜냐하면,


에이든이 이 일을 단지 '억울했다'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친구의 감정까지 살피며 원인과 결과를 분석하는 모습은, 한 아이의 내면에서 얼마나 다양한 생각과 감정이 오갔는지를 생생히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리고 에이든이 느낀 억울함, 분노, 슬픔, 절망, 깨달음, 걱정 등의 수많은 감정들을 나름에 방식으로 처리하는 능숙함이 생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단순한 행동의 기록이 아니라, 자기 경험을 해석하고, 이해하고, 정리하는 과정이었다.


나에게는 이 에피소드가 가장 잘 쓴 에세이 같은 느낌이다.


어쩌면 ‘에세이‘라는 글도 이런 과정과 닮지 않았을까.


어떤 사건이 있었는가 보다, 그 사건을 나는 어떻게 받아들였고, 그 경험이 나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이야기하는 글!

그리고 그 스토리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에세이가 아닐까 생각한다.




결국, 같은 사건도 해석이 다르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그 아이만의 해석이 담긴 글이야말로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는 진짜 '자기다운 글'이 될 수 있다.


나는 에이든이 살아가는 매일의 사건들이,

에이든만의 시선으로 이해되고 해석될 수 있도록 계속 질문하고, 기다려주고, 또 들어주어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렇게 쌓인 말과 생각이 언젠가는 에이든만의 문장으로 이어지고, 그 문장이 모여 하나의 에세이로 천천히 완성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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