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아이들의 '생각이 글이 되는 훈련법'
'AI가 글을 써주는 시대에도, 실리콘밸리 교실에는 여전히 작문 노트가 있다.'
이전 글에서 나는,
전통적인 방식이 단순히 시대에 뒤처진 교육이 아니라, 오히려 아이들의 '생각하는 힘'을 지켜내기 위한 깊은 교육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궁금해진다.
그 철학은 실제 교실에서 어떻게 구현될까?
생각이 말로 정리되고, 말이 글로 이어지는 과정은 단순한 글쓰기 수업일까, 아니면 본질적인 훈련일까?
미국 아이들의 글쓰기 수업은 생각보다 구조가 잘 짜여 있다.
글을 종이에 쓰는 시간이라기보다, '생각을 정리하고 말로 표현하는 훈련시간'에 더 가깝다.
에이든의 글쓰기 수업을 관찰하니, 이 훈련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수업은 매번 몇 가지 루틴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그래서 이번엔, 수업이 어떻게 시작되고 마무리되어가는지를 자세히 들여다보려고 한다.
첫째, 미니 레슨과 주제 탐색
수업은 시작 후 5~15분 동안 그날의 수업 목표와 전략을 간단히 소개하는 미니 레슨(Mini Lesson)으로 시작된다.
이 시간에는 매번 명확한 주제와 글쓰기 전략이 제시된다.
예를 들면:
감정을 표현하는 형용사 사용하기
글의 구조 잡는 방법 (도입-전개-결론의 흐름)
접속사 또는 전환어 다양하게 활용하기
특히 전환 어는 아이들이 글을 더 논리적이고 매끄럽게 이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중요한 도구이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표현들이 있다.
However (그러나)
Because (왜냐하면)
for example (예를 들면)
in addition (게다가)
as a result (그 결과로)
선생님은 이 전환어들을 사용할 때의 상황과 문장 흐름을 예시로 보여주거나, 글을 읽어주고 글의 문단이나 문장 간의 연결을 자연스럽게 만들어주는 역할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짧지만 핵심이 담긴 이 미니 레슨 덕분에, 아이들은 오늘 어떤 방향으로 글을 써야 할지 자연스럽게 감을 잡게 된다.
하지만 미니 레슨이 끝났다고 해서 곧바로 글을 쓰는 건 아니다.
둘째, 소그룹으로 말하기 - 생각 꺼내기
아이들은 소그룹으로 나뉘어 서로의 생각을 나누며 질문을 주고받는 시간을 먼저 갖는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 "온라인 게임 캐릭터 중 어떤 캐릭터를 가장 좋아해?"
| "이 캐릭터 선택에 대해 너는 어떻게 생각해?"
각자에게 주어진 30초 남짓한 시간 동안 자신의 생각을 말로 정리해 본다.
짧은 시간이지만, 이 시간은 '생각을 말로 전환하는 시작'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셋째, 독립 글쓰기 시간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글쓰기 시간이다.
아이들은 방금 소그룹에서 나눈 이야기를 바탕으로 주제를 정하고, 자신의 생각을 글로 옮기기 시작한다.
이 시간은 겉보기엔 조용하고 집중된 '혼자 쓰는 시간'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수업 중 가장 역동적인 시간이다.
왜냐하면 '말이 글이 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이때 아이의 글을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보며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 "이 문장은 핵심 내용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더 써볼까?"
| "이 부분은 독자가 궁금할 것 같지 않니?"
| "이 장면에서 너는 어떤 감정을 느꼈어? 그걸 조금 더 표현해 볼래?"
이런 질문들은 단순한 첨삭이 아니다.
아이 스스로 글의 방향을 더 깊이 고민하게 만드는 '생각 자극 장치'라고 나는 생각한다.
학생들은 질문을 받은 뒤, 다시 문장을 고쳐보거나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며 글을 더욱 구체화한다.
필요한 경우, 비숫한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을 소그룹으로 모아 글의 문제점을 토론하고 구체적인 해결 방법을 제시하는 지도도 이루어진다.
넷째, 다시 소그룹 토론 - 주제에 대한 생각 확장
글의 초안이 완성되면, 아이들은 다시 소그룹으로 모여 본격적인 토론을 시작한다.
이때는 처음처럼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아니라, 각자 정해진 주제에 대한 조언이나 반박 또는 추가 의견 등을 말하는, ‘말 그대로 정말 토론 시간’이다.
즉, 처음 활동이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주고받는 '브레인스토밍'에 가까웠다면, 이번에는 구체적인 주제를 바탕으로 생각을 더 깊이 있게 다듬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들은 자신이 쓴 글의 내용을 요약해서 소개하고, 친구의 주제에 대한 궁금한 점을 질문한다.
"너는 왜 이 주제를 선택했어?"
"이 인물의 행동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
"비슷한 경험이 있다면 얘기해 줄래?"
"다른 아이디어도 있니?"
이처럼 질문과 대답이 오가며, 아이들의 사고는 점점 더 정제되고 구체화되는 과정을 겪는다.
같은 주제라도 다양한 시각과 관점을 접하다 보면, 새로운 생각을 덧붙이고 자신의 글을 더 깊이 있게 발전시킬 수 있는 단서를 얻게 된다.
이때 선생님의 역할은 최대한 개입하지 않고, 아이들이 스스로 질문과 응답을 이어가며 생각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유도한다.
또한 토론의 주제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조율하거나, 논의가 필요한 부분에만 간단한 질문을 던지는 정도다.
나는 에이든이 처음보다 훨씬 구체화된 주장을 말하고,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나 사례를 스스로 덧붙이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
왜냐하면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까지 설명하는 과정에서 에이든의 글쓰기는 더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글로 다듬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섯째, 발표와 피드백 - 타인의 시선으로 보기
소그룹 토론을 통해 생각을 확장하고, 필요한 부분을 보완한 후에는 각자의 글을 마무리한다.
그리고 자신이 완성한 글을 친구들 앞에서 발표하는 스피치 시간을 갖는다.
발표는 글을 그냥 읽는 시간이 아니다.
내가 쓴 글을 타인의 시선으로 점검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두의 발표가 끝나면, 친구들 간에 피드백이 이어진다.
예를 들면:
'좋았던 점 한 가지 + 궁금한 점 한 가지'를 친구에게 말해주기.
"특히 초반 인트로 부분의 표현이 인상 깊었어. 마치 영화처럼 생생하더라"
"이 인물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조금 더 설명해 주면 좋을 것 같아."
"상황 전개가 너무 빠른 것 같은데,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자세한 내용을 추가하는 건 어때?"
서로의 글을 존중하며 나누는 피드백은 칭찬이나 비판을 넘어, 다른 시선으로 글을 점검하고 사고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피드백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완성된 글을 검토하는 시간'이자, '더 좋은 글을 위한 마지막 다듬기 단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에이든은 피드백을 받은 후 글의 양이 많이 늘었고, 표현도 훨씬 구체화되는 변화를 보였다.
이 수업 구조를 지켜보며, 머릿속에 하나의 흐름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 "생각하는 법 -> 글로 옮기는 법 -> 타인과 생각 나누는 법"
이 세 가지 과정을 한 수업 안에서 순환적으로 반복하는 방식.
그래서 미국 아이들의 글쓰기 수업은 기술 습득이 아니라,
'생각 -> 말하기 -> 쓰기 -> 다시 말하기'의 구조 안에서,
표현력을 더욱 깊어지게 만드는 순환식 훈련이라고 느껴졌다.
말로 생각을 꺼내고, 글로 정리하며, 발표로 표현하는 이 흐름 속에서 아이들에게 글쓰기는 '공부'가 아닌 '자신을 표현하고 세상과 연결되는 도구'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미국 글쓰기 교육의 핵심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글쓰기가 막막한 이유는 글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하는 훈련의 부족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아이가 글을 쓰기 힘들어할 때 우리는 먼저 이렇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
| ‘우리 아이는 생각을 말로 꺼내본 적이 있었던가?’
글보다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은,
'말로 생각을 표현해 보는 경험’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모든 표현의 시작은 '말'이라는 확신이 점점 굳어진다.
이렇게 반복되는 루틴 속에서, 아이들의 글은 더 '자기 다운 글'로 완성되어 가고, 또 이것은 에세이를 쓸 때 자기 안에 있는 ‘나 다움’을 자연스럽게 풀어낼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다.
그러니 아이가 ‘나 다움'을 드러내는 일에 주저하지 않고 마음껏 표현할 수 있도록 부모인 우리는 올바른 방법으로 도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