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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

응급수술

by 말자까

그 날 나는 온전한 몰입 상태의 요지경이었다. 휴일 저녁 불려나올 때만 해도 이런 날이 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그 말은 예측과 달리 한 두군데가 문제가 아니었다. 도무지 엉킨 장기는 풀리지 않았고 가스를 빼고 내용물을 빼고 꼬인 부분을 돌려 보아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모든 것이 다른 케이스와 달랐다. 그래도 일단 가보기는 해야 하니 이 길도 시도해 보고, 안되면 다시 되돌아가서 마음을 가다듬고 저쪽 길로 다시 가기를 수 차례, 아니 수십 차례 시도했다.


시간이 얼마가 지났는지 모르겠고, 너무 땀이 많이 나서 정신이 혼미할 때는 마스크 사이로 물을 몇 번이나 받아먹으며 정신을 차려가며 또 다시 몰두했다. 저녁은 어느새 밤이 되고 그러다 새벽이 와버렸다. 하면서도 시간이 흐르면서 사실 이론적으로 알았다. 회복이 어렵겠다는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날은 끝이 보이지 않는 그 어딘가에 빛이 실날같이 보일 것 같고, 그 생의 가닥이 그래도 나를 기다려줄 것이라 하는 묘한 기대로, 모든 생체시계는 자연스럽게 사로 흐르고 있었으나 나 혼자 생으로의 방향키 쪽로 말도 안되는 억지 힘으로 끌고 갔다.


어쩌면 그 전에 참 아쉽게 죽은 말이 생각나서 더 그랬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뱃 속의 망아지와 말, 사실상 2마리라는 생각에 더 그랬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번에는 어떻게든 살리고 싶었다. 살 수 있는 길이 있는데 내가 아직 못 찾는 것이기를 바랬다. 하지만 아무리 시도를 해봐도 해결은 안되고 시간은 무색하게 흘러가고 분위기는 점점 무거워지고 새벽은 다가왔다. 수치는 점점 나빠지고 거의 풀어낸 장의 색깔은 좋지 않았다. 자르고 연결을 한다 하더라도 회복실에 가서 일어날 수 있을 가능성이 극히 희박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장의 상태도 점점 안좋아지고 혈압도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긴 시간을 끌었음에도 결국 되지 않았다. 밖에 내내 서계시던 마주분에게 상황을 통보드렸고 말은 하늘로 보내주었다.


내내 변호사로 혈투를 벌이다가 판사 망치 두드리는게 다른 날보다 많이 어려웠다. 긴 시간 동안 뱃속에 들어가다시피 몸을 숙여서 장을 휘저으며 허우적거리던 나는 갑자기 그 세계에서 벗어났다. 뻣뻣한 다리는 잘 움직이지 않았고, 내 손은 허옇게 퉁퉁 불어 있었다. 사실 호출 당하기 전에 하루종일 걸어서 다리가 피곤하기도 한 상태였어서 그날 내 다리는 아침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쉬지 않고 호되게 굴른 탓에 며칠을 삐그덕 거렸다. 껌껌한 새벽길 집까지 운전을 하려니 도저히 엄두가 안나서 그냥 한참을 그냥 책상에 각성된 채로 멍하니 앉아있다가, 퍼뜩 정신을 번쩍 차리고 집에 들어가서 바로 누웠다.


잠을 자려고 침대에 누웠는데도 눈을 감아도 떠도 그 뻘겋고 퍼런 장들이 눈 앞에 떠다니고 아직도 그 문제의 꼬인 부위가 내 손아귀에 그대로 잡혀있는 것 같았다. 잠을 잤는지 그게 꿈인지 그냥 생각인지도 모른 채의 상태로 나는 그렇게 하루를 앓았다. 정신만 몰두했지 내 체력에 감당이 되지 않을 엄청난 일을 밤새 벌였으니 끙끙댈만 했다. 어지러운 와중에 다음날의 말 뒷처리도 못내 미안했고, 주인의 뒷반응도 못내 서운했다. 적당히 선을 긋지 않고 오롯이 몰입을 하며 시간을 하염없이 보내다 보니, 밥도 못먹고 하루를 같이 넘기며 피곤해진 팀원에게도 미안했다. 그렇게 몰입을 했으면 그 노력의 결과로 동화처럼 극적으로 답을 찾고 생명을 구했어야 하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고 그 누구도 행복하지 않았다.


그냥 그런 날이었다. 하지만, 먼 훗날 내가 과거를 되돌아본다면 분명히 기억날 그런 날이었다. 말을 처리하고 정신을 차리니 수술복은 물론 속옷까지 모두 젖어있던 그 날의 몰입 상태가, 훗날 언젠가 길을 더 빨리 가던지 후퇴하는 법을 알던지 하는 일말의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어렵다. 어떤 판단이 옳았을지 늘 고민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말과 태아의 마지막 길을 끝까지 이 악물고 온 힘으로 붙잡으려 그 밤을 같이 보낸 이 생 속의 연결체는 바로 우리였다는 것이다. 혹여나 내가 죽어서 만나더라도 눈을 쳐다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날 밤 말도 안되었던 내던지기를 가능하게 해준 모든 상황과 멤버들에게 정말 너무나 너무나 고맙고, 내 힘과 능력의 부족에 답답했던 날이었다. 한 번은 그 밤의 진지하고 긴 사투를 언젠가는 기록하고 싶었는데 그게 오늘임에, 오늘이라도 꺼낼 수 있음에 다행이다. 미안하다 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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