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짧은 에세이 # 매월 발행 # 제주 열두 달 # 꼭 할 게 있지
#4월의 제주 #고사리 꺾기
4월이 되면 제주도에서만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도민들의 고유 레저가 있다. 이 행위는 재미뿐만 아니라 그날 저녁 밥상이 풍성해질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큰 선물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은 바로 바로 4월 한 시즌에만 등장하는 '고사리 꺾기'가 되시겠다. 나는 이게 노동이라 하기엔 즐거움의 크기가 더 커서 레저라고 칭하겠다. 제주도는 4월만 되면 뭔가 비밀 축제가 열리는 것 마냥 도민들이 조용히 분주해진다. 그 수상한 분위기는 중산간의 아무 도로에서나 아무렇게나 새벽부터 주차되어 있는 차들이 많아질 때 드디어 시즌이 왔구나 하고 감지하게 된다. 차는 세워놓고 사람들은 안 보이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다들 새벽부터 고사리를 꺾는 사람들이란다. '고사리?' 사실 나는 고사리는 땅에서 집단 재배되는 갈색 식물이라고 상상했던 육지 촌놈이었다. '고사리가 저런 풀 사이에서 초록색으로 하나씩 자란다고? 고사리가 도대체 어떻게 생긴 거지?' 처음 들었을 때 궁금증이 일었다.
'고사리를 어디서 꺾을 수 있나요?'라고 도민들에게 물어봤더니 백이면 백 아무 곳이나 많다고 에둘러서 말하지, 정확한 포인트를 짚어주는 걸 난감해한다. 왜냐하면 대부분 풀숲 깊숙이 들어가는 여정이 험난해서 그 포인트를 정확하게 설명해 주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보자는 절대로 혼자 가서도 안되고 혼자 가봤자 찾기 힘들다. 이럴 때 필요한 건 '아는' 도민이다. 오늘 문득 ' 제주도민 따라가는 고사리 꺾기 체험 클래스 번개'를 만들면 어떨까 공상을 해봤다. 그만큼 나도 처음에는 그 포인트를 몰라서 엄청 궁금했다. 하지만 어느덧 제주살이 8년 차가 되다 보니 내가 아는 나만의 안전한 장소도 알게 되고, 오며 가며 풀들 사이로 고사리가 슬며시 숨어 있는 것도 이제 매직아이처럼 바로 보인다. 그렇게 이 놈들이 내 눈에 보인 이상 이건 도무지 꺾지 않을 수가 없다. 심지어 엊그제 분명히 꺾었는데 하루 이틀만 지나도 다시 쑥쑥 올라와서 다시 똑같은 크기로 간절히 쳐다보고 있는 걸 보면 마치 나를 놀리는 것 같은 놀라운 성장 속도가 신기할 따름이다.
고사리 줄기 아랫부분을 톡톡 하나씩 꺾어 모으다 보면 어느새 꽃다발처럼 큰 다발이 모아진다. 채집한 고사리는 집에 가져온 후 씻고 물에 담가둔다. 그리고는 끓는 물에 한솥 데친 다음에 바람 잘 드는 곳에 며칠 바짝 말린다. 여기까지가 고사리 손질의 기본 코스다. 하지만, 도민들에게 배운 생고사리 요리법을 나는 더 좋아한다. 한솥 데친 고사리를 말리지 않고 바로 냉동실에 넣던지, 아니면 그날 저녁상으로 요리해 먹는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요리는 삼겹살과 함께 구운 고사리다. 삼겹살 기름에 구워진 초록빛 고사리를 고기랑 먹으면 고기의 느끼함도 없어지고 고사리는 고소해지면서 그동안 내가 이런 찰떡 궁합을 몰랐던게 원통하다. 두 번째로 좋아하는 요리는 무와 고사리를 바닥에 얹고 만든 매콤한 고등어 조림인데, 잘 조려진 고사리와 고등어를 함께 먹으면 이건 정말 밥도둑이 따로 없다. 처음에는 건조한 고사리에 비해 약간 미끄덩한 생고사리의 느낌이 어색했는데, 요즘에는 바로 먹는 게 고사리철 제철 밥상의 묘미여서, 생고사리로 냉동실이 가득해질 때도 있다.
잘 말려서 포장한 고사리를 타인에게 선물하면 얼마나 좋아들 하시는지 모른다. 제주도에서 직접 꺾은 고사리를 말려서 줬다고 너무나 고마워하는 양가 부모님이나 지인들의 큰 기쁨을 보면, 그 주는 재미가 들려서 나는 또 4월을 기다렸다가 숨은 고사리 찾기 레저인 모드로 살게 된다. 고사리를 하나씩 매의 눈으로 발견해 가며 똑똑 꺾어가며 느끼는 그 수확의 희열이 참으로 강렬해서, 그 누구라도 한번 해보면 분명히 4월마다 눈 앞에 그 푸릇한 녀석이 어른거릴 것이라 생각된다. 아마 뼈속 도시인이라도 분명 어디엔가 잠재된 채집 DNA를 발견할 것이다. 해마다 고사리 선물을 제대로 차려주는 4월의 제주도 땅은, 조용하지만 한결같이 풍요롭고 정직한 어른의 너른 품 같아서 참 든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