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고충 반사

by 말자까

정지우 작가님의 포스팅을 보고 글을 끄적거려 본다. 저 무수한 제각기의 낙엽 중 하나가 수많은 사람 중 하나의 나일 것이고, 그 낙엽을 못났다 하기보다 예쁘다 하고 알아봐 줄 사람을 만난다는 게 그저 고마운 일이 아닐까 하는 작가님의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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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고 살았다 싶었는데, 나에게 싸늘한 눈빛을 쏘는 군중을 저 멀리 서라도 만나게 되니, 나는 다시금 온몸을 웅크리다 못해 머리를 땅에 처박으려 피하려고 애쓰며 무조건 반사작용을 보이는 나의 이면을 발견했다. 그래.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 나는 아직도 나를 못났다고 하는 시선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나 못났는데 어쩌라고.' 하며 당당하게 나서는 것은 내 머릿속에서 그리는 나의 이상향일 뿐이다. 실제로 직면했을 때에는 겉으로는 웃고 인사하지만 속으로는 안절부절못하며 눈앞이 어지럽기도 하고 과거의 고통이 떠오르며 며칠간 끊임없이 나 혼자 단절되고 고립된 사람인 것만 같은 그 무서움이 또다시 몸서리쳐지게 나를 괴롭힌다. 시간이 모든 것을 희석해 준다지만 온전히 희석하기 위한 노력과 시간이 여전히 필요함을 깨달았던 그날이었다.


나는 사실 나를 예쁘다 하는 사람보다 나를 못났다 하는 사람들한테 레이다가 발달이 되어있는 듯하다. 나를 예쁘다 하는 것을 당연시 여기고, 나를 못났다 하는 것에는 발끈하는 나 자신이 얼마나 편협한 것인가. 그것이야 말로 편협 그 자체 아닌가? 라며 나를 또 다그쳐 보았다. 하지만 남는 건 상처뿐.


그러다 어제 작가님의 글을 보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낙엽 중 하나일 뿐인 나를 못났다고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주눅 들거나 화를 낼 필요가 없다. 내 모양새가 노란색이든 빨간색이든 누렁색이든 갈색이든 연두색이든 섞여있든 벌레를 먹었든 생생하든 그냥 일개 하나의 낙엽일 뿐이다. 그것을 예쁘다 못났다 평가하는 것은 타인의 몫이다. 나도 그렇게 남을 평가하니깐 말이다. 나를 못났다 하는 충고충의 말이 왔을 때, 인정할만하면 인정하면 되지, 무조건 나 자신을 그 기준에 맞추어서 반성할 의무는 없다. 타인의 평가가 그들의 몫이라면, 그것을 받아들일 것인지 반사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내 의지이다. 대신, 우리는 살면서 충고충의 말에 내면이 상처입지 않도록 스스로를 필사적으로 보호해줄 의무가 있다.


나는 정중히 충고충을 반사한다.

나는 충고충이 나를 부수고 망치고 눈치 보게 하는 일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겠다.

나는 그저 나를 알아봐 주는 나만의 여우에게 길들여지는데 눈길을 줄 것이다. 또한 누군가의 색깔이 어떻게 예쁘게 빛나는지,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아봐 주는데 힘을 쏟을 것이다. 그냥 나는 그렇게 생긴 낙엽일 뿐이지 그게 죄는 아니니깐. 더 잘 보이려 예쁘게 치장할 필요도 없고, 그저 나를 예쁘게 봐주면 정말 감사하고 고마워하는데 아낌없이 노력을 해야 함을 다시금 느낀다. 이 짧은 생의 시간 동안 그저 나의 빛이 바래가지 않도록 보호하는데나 신경 쓰며 삶을 살아가면 그걸로 족하다. 인생은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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