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은 사라지지 않았다.

매일 아침 만나는 과거

by 말자까

연말 다이어리가 쏟아지는 시절이 왔다. 어린 시절에는 연예인 사진으로 장식 가득한 나만의 다이어리 만드는게 유행이었다. 나만의 무언가를 꾸미는 재미에 매년 다이어리를 사고 꾸미는 것에 누구보다 열을 올리며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어쩌면 다이어리를 꾸미는 다양한 펜과 예쁜 스티커 사는 재미에 그렇게 열심히 적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직도 친정집에는 내 다이어리 보물이 사진첩과 편지 꾸러미 옆에 모셔져 있다. 그러다 대학 시절 휴대폰과 인터넷 플래폼이 생기는 홍수 속에서 사람들은 슬슬 싸이월드나 네이버 블로그 같은 곳에 일상을 적고 공유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 둘 다 이용을 하다가 결국 살아남은 네이버 블로그에 꾸준히 글을 적고 사진을 올리고 하던게 벌써 20년이 다되간다.


청년기의 시절동안 나의 블로그 주제 역시 내 삶대로 변했다. 대학 시절에는 여행 일기가 주를 이뤘다. 나의 로망이었던 아프리카 게시판도 만들어 놓았는데 아직도 빈칸이다. 입사 하면 돈버니깐 드디어 여행 많이 하겠거니 싶었으나 나는 결혼을 했고, 국내 여행 일기가 차츰 줄다가 바로 육아 일기 공간이 되었다. 첫 아이를 낳고 키우던 휴직 시절 매일같이 찍던 아이 사진을 참 일자별로 부지런히 올렸더랬다. 그렇게 둘째까지 아이들 사진의 저장공간으로 한동안 쓰였다. 그 곳에는 둘째의 눈물겨운 아토피 치료 과정도 있고 시시 콜콜한 동영상부터 어린이집에서 받은 사진들까지 모든 희로애락이 녹아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에 되며 자신만의 휴대폰이 생기고 우리가족 단톡이 만들어지면서 또 큰 변화가 일어났다. 이제 가족 사진 공유는 네이버 밴드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각자 찍은 사진들을 밴드에 올리고 서로 댓글을 단다. 어쩔때는 각자의 방에서 시시콜콜한 라이브도 한다. 이 공간은 이제 내가 운영하는 공간이 아니고 다 같이 사용하는 공간이 되었다. 우리 넷의 공간을 나는 이렇게 지금처럼만 시시껄렁하고 유치한 이 분위기 그대로 유지하고 싶다.


말 관련 일을 하면서 진료 관련 부서에서 있던 기간에는 하나하나의 진료 행위 자체가 나에게 참 소중했다. 남들보다 더 열심히 찍던 다양한 말 사진, 말 관련 자료 등이 블로그에 케이스별로 누적되었고, 해외 연수시절 이나 해외 출장, 학회 등을 갈 때는 역시 하루하루 블로그에 사진과 일기를 기록했다. 덕분에 지금도 검색기능으로 너무나 잘 찾아보는 공간이 되었다. 작년부터 나는 글쓰기 용도는 브런치로 플랫폼을 바꿨고, 네이버 블로그는 비공개로 말 관련 사진과 영상을 저장하는 클라우드 같은 용도로만 쓰고 있다. 귀찮지만 한번씩 휴대폰 자료를 옮겨 놓으면, 언제나 케이스 사진을 검색해서 꺼내기가 쉬워서 앞으로도 내 블로그는 이렇게 활용되며 숨쉴 예정이다.


언젠가부터 네이버 블로그에 **년전 오늘을 메인으로 띄우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나처럼 오랜 기간 글이 많은 사람에겐 큰 선물이다.


덕분에 습관처럼 블로그를 열면 나는 항상 과거를 맞이한다.


16년전 오늘 : 대학시절의 내모습과 글

10년전 오늘 : 아이의 꼬꼬미 사진들

6년전 오늘 : 말사진, 미국 말사진, 진료사진

4년전 오늘 : 갈대밭같은 날 것의 감정들.


이렇게 매일 아침 나는 과거를 맞이한다. 그리고 현재의 변화를 더 크게 느낀다.

과거에 사는 건 좋은게 아니라 하지만, 나는 과거를 보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냥 재미도 있고, 잊었던 기억장치가 되살아나서 아련하면서도 기쁘다. 과거의 내가 부끄럽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하다. 그 모습과 현재를 비교하며 나는 현재를 안도하고 감사하기도 하며 자극을 받기도 한다.


어렸을 적 아팠던 둘째의 사진을 보는 날은, 둘째를 더 꼭 안아주기도 하고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이 우러난다. 과거의 내 감정을 보는 날은, 도대체 그시절의 내가 누구인지 낯설기도 하고 내가 그때 그랬었구나..하며 미성숙을 반성하기도, 또는 그 당시의 아픈 감정을 어루만져주기도 한다. 그렇게 나의 기록은, 친정집에 가서 내 다이어리를 뒤져서 찾아내지 않고도 아침에 눈뜬 후에 앱만 열면 내 과거가 나에게 코앞까지 찾아와 까꿍 인사를 해준다. 생각지도 못한 플랫폼의 기능 덕분에 나 자신과 나의 삶과 더 친해지는 기분이 든다.


매일같이 내 글을 마주하며 나는 글쓰기와 기록에 관해 조금 더 관대해지고 친하게 두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브런치에서 나를 브랜딩하는 한 주제의 완성도 높은 글을 써 내려가는 목적이 있는 공간이 되는 것도 좋겠다만, 사실 나는 그저 시시콜콜하게 일상과 상념을 적어내려가는 그 자체만으로도 후련하고 시간이 잘 가는 그런 공간인게 더 마음이 편한 것 같다. 목적보다는 과정이 더 끌리는 일이 세상에 몇 개나 있으랴. 그 중 하나가 나에게는 글쓰기다. 목적을 위해서 행하는 업무의 숨막힌 스케줄 속에서, 여전히 이 곳만은 나에게 힘 빼고 쉬어가는 순수한 공간이 되고 싶다. 지금처럼 삶을 살고 기록하며 나의 변화에 조금 더 솔직하고 친해지는 것 자체로 이미 이 공간은 나에게 큰 선물이다. 그냥 썼을 뿐인데 기록은 매일같이 나에게 꾸준히 찾아와 주니, 이 친구가 더 소중해져서 나는 그냥 글쓰기랑 평생 친구 할란다. 어쩌면 이 자체가 견고해지며 나의 브랜딩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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