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니 ADHD더라 (3)

2. 블루(BLUE) 카펫

by AIDNHF DJ

"네, 다만 최근 ADHD가 복용하는 약에 대해 공부 잘하는 약으로 전파되는 케이스들이 많아서 전부 ADHD로 판단해서 약을 처방해 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상세 검사를 하셔야 하는데요. 일단 기본적으로 CAT 검사 진행하실 거고요. 추가로 뇌파검사(QEEG)도 있는데 어떻게 하고 싶으신가요?"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긴 하다. 커뮤니티를 찾아보고 오면서 최근 학생들 사이에서 공부 잘하게 되는 약으로 소문이 나있더라.


또한, 고지능 ADHD인 경우에는 단순한 검사로 판별하기 힘들다는 내용도 보고 왔기에 최대한 자세하게 검사를 받고 싶었다. 다만, 미리 알고 있는 티를 내지 않는 것이 좋다 생각했다. 나 또한 약을 오남용 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아, 일단 다 해볼게요."


"네, 그럼 검사 진행하겠습니다. 혹시 뒤에 일정이 있으신가요? 뇌파 검사 경우에는 머리에 젤을 바르기에 머리가 망가지실 거예요"


검사 후 회사로 출근해야 했지만, 오늘 미루면 또 여기 오기까지 계획을 해야 하는 부분이 싫었기에 나는 바로 YES로 대답했다. 최대한 조급해 보이지 않게.


그 뒤로 다시 방호문을 지나 간호사분의 안내에 따라 검사실로 향했다. 자그마한 독방. 벽을 바라보고 있는 책상에 덩그러니 태블릿 하나.

뒤에는 창문이 있었지만 이쪽은 북향인지 햇빛이 들지 않는다. 묘하게 안정감이 든다. 드디어 내가 정신병동에 온 느낌이랄까?

드래곤볼에 나온 정신과 시간의 방. 그곳이 사실 여기 일지도.

여기도 나한테 그 정도의 수련 치를 주는 곳이면 좋겠군.


책상에 앉자 간호사분이 화면에 따라 진행되는 문제풀이를 진행하면 된다고 간단히 설명을 해주신다. 무언가 문제가 있으면 책상 옆에 있는 벨을 누르면 된다고 하신다.

벨? 보통 문제 풀이하는데 벨이 필요하나? 그런데 벨에 묘하게 사용감이 있다. 단순 문제 풀이 방만이 아닐지도.


간호사분이 나가시고 앞에 있는 태블릿을 바라본다. 시대가 많이 변했다고 생각한다. 아직 개인적으로 텍스트를 좋아하는 입장에서는 아쉽지만, 시간 내에 문제를 풀고 집중력을 확인해야 하는 검사들에서는 이게 맞다고 생각한다.


한번 심호흡을 해주고, 조심스레 시작


첫 문제, 이전의 도형을 보고 다음에 나올 도형을 맞추는 문제이다.


음 UI가 직관적이지는 않군. 직업병이 살짝 도진다. 그러다 이상한 걸 눌러버렸다. ADHD에 한걸음 다가가는 순간. 보통 첫 문제가 제일 쉬울 텐데 처음부터 이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어렸을 때부터 IQ검사 같은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묘하게 자존심이 일어난다. 나는 남들을 이기려고 하지는 않지만 남들보다 못하는 것은 극도로 싫어한다.


만약 여기서 내 지능이 원하는 기준만큼 안 나오면 올해의 자존감은 끝이다라는 생각에 집중 시작.


그 뒤로 문제들은 다양한 형식으로 전환되면서 나왔다. 주의력결핍을 측정하려는 듯이 한 번에 2가지 이상의 복합적인 요소를 측정하는 문제들이 나왔고, 뒤로 갈수록 고난도 문제도 나와서 재미도 있었다.


따뜻한 공기에 살짝 졸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재미있었기에 나름 집중해서 푼 것 같다. 처음 잡생각에 문제 몇 개 놓친 게 아쉬울 뿐.


지금 당장 점수를 알려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검사를 마치고, 다시 로비로 향한다.


다음은, 뇌파검사.


사실 나는 여기서 내가 ADHD 여부가 판단될지 기대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문제 푸는 것에 대해 집중을 못한다거나 하지는 않았고 성적도 곧잘 받았기 때문이다.

또한, 보통의 ADHD가 어려워하는 국어 영역은 내가 제일 좋아하고 잘하는 영역이기도 했다. 그래서 내가 정말 ADHD라면 이런 부분으로는 판별이 불가능하고 뇌파 영역을 제일 기대한 것이다.


이번엔 다른 방으로 안내받았다. 보통 치과에서 치아 엑스레이를 찍을 때 들어가는 방과 비슷하게 생긴 방이었다.


자리에 앉으니 머리에 이상한 그물망을 씌우신다. 그물망을 쓰고 의자에 앉아있으니, 대형 마트에 진열되어 있는 과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고객들이 지나가면서 괜찮은 상태인가 쿡쿡 찔러보겠지?


그 역할은 다행히 손가락이 아닌 전극이 대신할 것 같다. 그물망 사이로 젤을 넣고 전극을 연결하니 앞에 있는 모니터에 뇌파가 측정된다. TV에서 거짓말 탐지기 할 때 많이 보던 건데.


마음속으로 슬며시 거짓말을 해본다. 사실 나는 통장에 100억이 있다.

아무런 반응이 없다. 거짓말에는 반응하지 않나 보군.


전극을 모두 꼽으니 간호사분이 움직이지 말고 시선을 마구 움직이면 안 된다고 한다. 쉽게 말해 멍 때리란 소리. 내 전문. 실제로 멍은 안 때리고 머릿속에서 엄청나게 생각은 돌아가고 있지만.


간호사분이 퇴장하시고 고요한 나만의 공간이 된다. 뇌파 가지고 장난치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속에서 치솟는다. 불현듯 머리 엉망인 상태로 어떻게 회사가지 하는 생각이 든다. 차에 모자를 내가 두었던가?


이럴 때 제일 좋은 것은 양 세는 거다. 가끔 상상하는 양이 두 발로 걷기도 하고, 탭댄스를 추며 울타리를 넘기도 하지만, 1마리 2마리 세다 보면 조금은 잡생각이 줄어든다.


불량한 양 약 20마리, 정상적인 양이 약 700마리쯤 되었을 때 간호사분이 방안에 들어오신다. 뇌파 검사가 종료되었다는 소식을 들고. 불량한 양을 더 상상하지 않아도 되는 것에 반가운 느낌이 든다.

이제 마트의 진열장에서도 벗어날 때. 과연 나는 팔렸을까? 아니면 유통기한이 지나버렸을까.


그물망을 벗고, 방을 나온다. 다행히 아무도 없다. 젤이 생각보다 꾸덕해서 머리를 보지 않아도 어떤 상태인지 가늠이 가기 때문.


다시 로비 의자에 앉아 핸드폰 셀카모드로 머리를 보니, 조치가 필요할 것 같다.

제발 차에 모자 있어라.


차에 있는 모자 유무가 궁금해 미칠 지경에 다다를 때쯤, 내 이름이 호출된다.

'예비 정신병자 3호 OOO님'

은 사실 이렇게 말하지 않았고,

"OOO 님"


호출에 앞으로 가니 결과가 나올 때까지 시간이 걸리다는 말을 듣는다. 역시 바로 확인할 수는 없나 보다. 너무 궁금했기 때문에 다음 일정은 최대한 빠르게 예약한다. 1주 후.

주차증을 받고 검사 비용을 결제한다. 검사 비용은 병원마다 상이한데 보통 20~60 정도로 내가 어떤 검사를 하는가에 따라 다른 것 같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진 듯하다. 밑장 빼기 없는 결과가 정해진 도박. 걸린 판돈은 ADHD 타이틀.

내가 걷는 길이 블루(BLUE) 카펫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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