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주해 볼까
"아, OOO님 맞으시죠?"
"네, 맞습니다. 11시 예약했습니다."
"네, 잠시만 앉아서 기다리실게요"
카운터에서 접수를 하고, 앉아 있으려 뒤를 본 순간 흠칫한다.
이미 방문해 기다리고 있는 다른 사람들. 정신병자 1, 정신병자 2 그리고 추가될 나. 정신병자 3.
사실 원래 이렇게 과격(?)한 표현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곳에 방문하기 전부터 잠깐 마음이 힘든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가벼운 감기 같은 것 말이다.
다만, 내 일이 될 것 같은 상황에 있으니 한번 자조적으로 생각해보고 싶던 기분이었다.
자리에 앉아 휴대폰으로 간단히 검색을 해본다. 성인 ADHD. 쏟아지는 무수한 정보들. ADHD로 의심되는 증상
1. 집중과 집중 유지의 어려움
2. 과도한 집중
3. 비조직화와 건망증
4. 불안정함 혹은 끊임없는 활동
5. 충동성
6. 감정 조절의 어려움
7. 사회생활의 어려움
8. 학업의 어려움 등등등
물론 이 모든 증상들이 있는가?라는 물음에 나는 지금도 아니라고 대답한다. 사실 나는 직장 생활, 학우 관계 모두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학창 시절 때는 반 모두와 골고루 원만한 교우관계를 가졌으며, 오히려 다른 아이들보다도 차분한 편이었다. 또한, 현재 직장생활도 일을 곧잘 해내 오히려 내부에서 인정받는 편이다.
너만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니냐는 태클에는 나를 누구보다 잘 아는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들은 평가니 비교적 정확한 이야기 일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곳을 방문해 정신병자 3이 되는 과정을 밟아보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는 데는 의심되는 증상들이 있었다. 기면증, 과도한 집중, 끊임없는 활동, 충동성
그중 요즘 제일 심각한 건 기면증이었다. 사실 이 부분은 학창 시절부터 있었다. 물론 갑자기 걷다가 자버린다거나 운전 중 자버린다거나 이런 건 아니다.
다만, 내가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도저히 잠을 참을 수 없는 것이다.
특히 학생 때 수업을 들을 때에는 유독 심했다. 잠들지 않으려고 샤프로 손을 쿡쿡 찔러보면서 버텨보려고도 했지만 그냥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던 일이 부지기수
였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네가 참으려는 의지가 없는 거 아니야?'라고 말하지만 정말 그런 느낌이 아니다. 그냥 내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그런 것이다. 억울했지만 나는 사회생활을 잘하기 때문에.
'아, 어차피 내가 자도 너보다 성적 높음' 하고 웃어넘겼다. 살아가는데 적당히 문제가 되지만 또 적당히 문제없는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 문제 되는 것은 지금 직장이 앉아서 하는 일이다 보니 업무 중 졸고 있다는 것. 입사초기에는 이런 일이 없었는데 업무가 루틴화되고 익숙되다 보니까 나 자신에게서 많이 루즈해져 생긴 일 같았다. 3년 차 대리의 일탈 같은 거 랄까.
그 와중에 성인 ADHD 증상에 대한 글을 보고, 이어서 증상 중 도파민에 관한 이야기를 보았다.
현재 업무 중에도 새로 배울 일이 있거나, 재밌는 일에는 미친 듯이 집중해서 진행했던 나 자신을 떠올렸기에 이곳에 방문하게 되었다.
앉아서 성인 ADHD를 검색하며 시간을 보내던 중, 마음의 감기 1, 2 환우분들의 진료가 끝나고, 정신병자 3 차례가 되었다.
먼저 간호사분이 간단히 태블릿을 주고 체크하는 항목을 진행하였다.
우리가 흔히 아는 자기 채점식 설문 조사 같은 내용이다.
1. 최근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나요?
2. 삶이 무기력하다고 느낀 적이 있나요?
등의 우울증에 관한 내용으로 보이는 자가 진단 내용과
1. 일을 순서 대로 진행하기 어려운 적이 있다.
2. 책을 읽는 도중 쉽게 주의가 분산된다.
등의 ADHD 관련 내용으로 보이는 자가 진단 내용이 있었다.
사실 이런 자가진단을 할 때 언제나 느끼지만 나는 지금 ADHD야 라는 마음을 먹고 온다면 얼마든지 나를 ADHD로 보이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ADHD로 방문한 사람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나를 조금 더 의심하고 평소에 생각했던 것보다는 한 단계 위의 단계로 대답한다.
그렇게 실컷 응답하는 도중에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 나는 ADHD일까? 를 불안해하는 것이 아닌, ADHD가 아니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감이 더 크다는 것을.
지금 내 증상이 ADHD가 아니면,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인가? 그냥 이 부분에서는 다른 사람보다 못한 능력을 갖고 있는 걸까?라는 불안감이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다른 사람과 미묘하게 다르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확실하게 구분해 줄 기준 같은 게 필요했다. 내가 ADHD라는 것으로 구분화되고, 그것에 대해 또 분석하고 찾아낼 생각만 해도 도파민이 분출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나는 공정하지(?) 않은 자가 진단을 마쳤다.
많은 환우분들의 손이 거쳐갔을 그리고 이제 내 손길이 추가된 태블릿을 간호사분에게 제출한다.
다시 기다림의 시간. 짧았던가 길었던가. ADHD인가 ADHD가 아닌가. 어떤 것에 불안해하는지 알쏭달쏭 하는 시간 속. 내 이름이 호출된다.
"OOO님, 의사 선생님 만나러 가실게요."
간호사분 안내에 따라 복도를 걷는다. 이 길이 레드카펫인가 가시밭길인가. 이 문 너머에는 메시아가 있는 걸까 적그리스도가 있는 걸까. 불과 5M 남짓되는 복도를 걷고 문고리를 잡는다.
문고리가 꽤 묵직하다. 자세히 쳐다보니 매우 튼튼한 방호문. 간호사분도 꽤 덩치가 있으셨는데. 거길 뚫고 이 방호문까지 뚫으려는 것은 쉽지 않은 일로 보인다. 아무래도 이 방호문 너머에 있는 존재는 나와 같은 인간임이 틀림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편해진 마음을 위안 삼아 힘겹게 방호문을 돌려 내부로 들어간다. 바깥에서 들어오는 햇살이 기분이 좋다. 그 햇살 옆으로는 큰 책상이 있고, 거기에 인자하신 느낌의 선생님이 계셨다. 햇살이 책상을 향해 달려오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그분의 얼굴을 화사하게 덮는다.
아. 메시아가 맞을지도?
"안녕하세요" 최대한 정상인(?) 인척 인사한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달라. 나는 마음이 안 아픈데 그냥 확인차 온 거야. 하는 작은 바람을 담은 인사다.
"네. 안녕하세요." 밝게 대답해 주신다. 순간 선생님은 이런 나 같은 사람의 생각까지도 읽지 않고 있을까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심리학도 엄청 공부하셨을 텐데. 발가벗겨진 느낌이 든다. 나 혼자만의 수치심을 가지고 내가 앉게 될 의자를 쳐다본다.
살짝 실망스럽다. 내가 상상하던 정신병원에서 앉을 의자는 안마의자가 같은 느낌의 의자고, 내 손과 발을 구속해 줄 무언가 있을까 했는데. 그냥 등받이가 없는 푹신해 보이는 조금은 기다란 의자였다.
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나는 그곳에 앉았고, 공정하지 못했던 자가진단을 토대로 상담이 시작되었다.
"어떠한 이유로 오셨나요?"
아마 수백 번도 더 하셨을 질문. 순간 남들과는 다르게 재치 있는 대답을 해볼까?라고 생각도 했지만 그것마저 정신병자 3의 이력에 추가될 것 같아 얌전히 대답하기로 한다.
"인터넷을 보는데 제가 ADHD로 의심되는 증상들이 조금 있는 것 같아서요." 하고 애써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말하면서 내 눈동자가 이리저리 굴러간다. 이러면 ADHD로 보일 것 같은데.
애써 내 눈동자를 선생님의 눈에 맞추려 노력해 보다가 인터넷에서 봤던 후기가 떠오른다. 추가적인 검사를 안 했는데 바로 ADHD 판정을 받았다는.
상담 내내 제대로 앉아있지 못하고 들썩들썩했다는데 나도 그러는 거 아니야?
불현듯 등받이 없는 의자라는 존재의 이유를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