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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서율 May 25. 2023

약속이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일까

정신을 차려보니 5월이 막바지이다. 내일은 심지어 내 음력 생일이라고 엄마가 5만 원을 부쳐주셨다. 모처럼 소고기를 사고 국수를 말아서 먹었다. 퇴근을 해서 저녁을 하는 동안에도, 업무용 전화기가 울렸다. 그리고 받은 한 통의 전화로, 지난 6개월 간 나를 좀먹고 있던 일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슬그머니 카펫 아래 숨어있던 문제들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주변을 완전히 뒤집어엎고, 그 먼지 속을 더듬어 길을 찾아서는 다시 주변 정리를 해온 것이 나의 일이었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만 같았던 그 시간 동안, 난 돈 앞에서 변하는 인간 군상과, 인성을 버리고 결국은 들통이 나 버릴 거짓말들을 해 온 사람과, 그런 일들 앞에서 멀리 숲을 보지 못하고 가까이에 쓰러져 버릴 것 같은 나무만을 바라본 내가 있었다. 


그 나무에 쓰러져 깔려버릴까 두려워, 나는 다가오는 일들을 애써 보지 않고 눈앞의 문제만 해결하는데 급급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조금만 더 용기를 내어 숲을 볼 수 있는 지혜가 있었더라면, 이런 답답한 원통에 갇힌 시간들 속에서 조금 더 일찍 빠져나올 수 있었을 텐데 하는 후회감이 든다. 지난 일들은 되돌릴 수 없겠지만, 거기에서 배운 교훈은 있다. 그 감정을 기록하고 싶어서 겨우 노트북을 열은 것도 있다. 글을 쓰고 싶다면서, 감정을 잘 풀어내고 싶다면서, 글을 마주하는 내 태도는 얼마나 정직했을까. 올해 들어서 글쓰기 모임에도 가입하고, 상담 공부 과정에도 등록하면서 나름 야심 찬 출발을 했으나, 기실 나의 생활은 매일 퇴근하고 나무늘보처럼 있다가, 주말이면 몇 명의 친구를 만나 위안을 받는 일 외에는 할 수 없었다. 


아니, 어떻게 보면 일하고 주말에는 친구를 만나는 일들이 가장 평범한 솔로 직장인의 삶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마음과 이상은 그저 그렇게 사는 것에 안주하기 싫어서, 체력과 멘털을 무시하고 여러 가지 계획들을 세웠을 것이다. 잠들지 못하고 두 시간마다 깼던 밤이나, 결국은 주말에 잠시 여행을 가서 겨우 코를 골며 쉴 수 있었던 밤들이 지나고, 혹은 최근에 직장 동료들과 한 회식 자리에서 서너 시간을 이야기하다가 내 삶에 지금 결여되어 있는 것을 겨우 깨달은 나. 저녁 먹기 전의 한 통의 업무 전화를 받고 나서, 설거지를 끝내고 오랜만에 요가 매트를 폈다. 여러 동작들을 반복하며 나의 꿈이 담긴 계획들을, 내 몸을 돌보지 않고 일에 매달려 있었던 시간들을 후회했다. 일을 열심히 집중해서 하는 건 부끄러울 일이 아니지만, 쉬어야 하는 시간에 조차, 자기 계발을 위해 써야 하는 소중한 시간 속에서 조차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건, 나 자신에게 부끄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곧, 타인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될 수도 있다. 이제껏 엄마도, 전남편도, 한때는 정다웠을 그 누군가들도 나에게 지켜지지 않을 약속들을 했었다. 결국은 부질없어진 그 말들에 속았던 나를 벌하듯, 나는 어느새인가 마음속으로 그 누구도 믿지 않고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이렇게 살아있는 기분이 느껴질 때는, 내가 내 마음을 속이지 않고 표현할 때이다. 혼자서 나 자신만 믿고 살아가기에는 난 아직 어리석고, 무르다. 사람들 속에서 감정을 표현하며 부대껴 가며 살고 싶다. 일터에서는 가능한 일이 개인 생활에서는 불가하다면, 나는 너무 많은 인생의 시간들을 일에 소모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들이 몰려올 때는 글을 쓰고 싶다. 찬찬히 앉아서 마음이 서서히 녹아내리는 그런 글을 진득하게 쓰고 싶다. 내가 서 있는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이 시공간에서, 내가 나임을 증명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끈을 놓지 말기로 하자. 사실 이것이야 말로 내가 숨을 쉴 수 있는 수단 아니었을까. 


다시 한번 나 자신과, 약속해 본다. 감정을 표현하고 살겠다고. 그것이 글이든, 말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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