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서율 Jan 09. 2021

그 밤의 그 밤

사랑은 하고 싶고

그날 집에 돌아와서 샤워를 하고 나온 시간은 밤 11시 반.

아직 자기에는 조금 이른 금요일 밤이다. 원래 계획은 룰루랄라 상큼한 샤워를 하고 나서, 마시다 만 사케를 좀 더 마시면서 좋아하지만 시간이 없어 보지 못해 밀린 드라마를 볼 생각이었다. 


썸남 아닌 거 같은 썸남과 일 핑계 차 놀러 간 곳에서 만취한 여자 주인공이 읊조린다. 

'나 좀 좋아해 주라' (취해도 이쁜 비주얼)

'이미 하고 있는데' (역시 잘생긴 비주얼. 드라마다)


꺼내지도 않은 술잔을 내던지고 싶은 달콤함이지만 드라마에 무슨 죄가 있나. 서너 시간 신나게 대화를 한 나와 그는 약속이나 한 듯, 이차는 없다는 듯, 칼 같은 더치페이를 하고 지하철 역에서 헤어졌다. 

'그럼 다음에 또 봐!'


그럴 생각도 없었지만, 그렇다면 서로의 휴대폰 달력에 생년월일 따위는 왜 입력하고, 서로의 관심사는 왜 물어보고, 그날 할 거 없으면 우리 점심 같이 먹자는 말은 왜 하는 거지? 


그런데 나는 그런 느낌이 들더라. 더 이상 설레지 않는다. 샤워를 하고 나오면서 생각나는 글귀를 적었다.

 

'뭐가 그리 외롭나요, 사람은 어차피 다 혼자예요'


내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내 안의 가장 자연스러운 내가 나온다. 사람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내 생각들이 때로는 정리가 돼서 말이 되어 나온다는 이야기이다. 청자가 자연스럽게 자기 이야기를 해 주면 나의 이야기 또한 자연스럽다. 예전과 내가 달라진 것은, 더 이상 청자가 내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이유 만으로 착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 머릿속으로 청자와의 다가오지도, 생기지도 않을 먼 미래를 그리고 있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저 '지금 여기'에 충실하게 '지금의 내가 좋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는 것.


우리는 서로에게서 서로의 인생의 어느 부분에 받았던 '비슷한 상처'로부터 비롯된 자아를 보고 있었다. 그게 그와 나의 가장 큰 공통점이자, 서로에게 말하지 않아도 위로가 되는 부분이다. 열 살이라는 나이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 남사친이 좋다. 그는 나이에 비해 너무 삭았고, 나는 나이에 비해 너무 철이 덜 들었다. 그건 우리 자신들이 제일 잘 안다. 나는 나의 상처 때문에, 아프다고 생각했던 과거 때문에, 나의 나라를 벗어나 여기에 왔다. 그는 자신의 겪은 비슷한 것들 때문에, 어렵게 직업을 구하고 언어를 배워서 이 나라를 벗어나고 싶어 한다. 그가 배우고 싶어 하는 언어는 내가 동경해 마지않았던 나라의 언어와도 같은 것이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은 꼭 사랑하는 사이에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이역만리 땅에서 만나서 짧은 인연이라고 생각했던 사람과 생각보다 긴 만남을 이어가는 건, 서로에게서 서로의 인생의 어느 부분을 보며 자기 마음에 공명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 건지, 그와 나는 제이슨 므라즈의 음악에 얽힌 서로의 추억을 풀며 그의 음악을 이렇게 정의해보았다. 


'wholesome' ( 네이버 사전에 '건강에 좋은'이라고 나와있는데, 피지컬 웰빙에 관해 제안하는, 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듯싶다)


이 나라에 와서 두 번 정도 그의 콘서트에 다녀온 적이 있고,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모습이 아주 즐거워 보이는 저 팝 가수의 음악은, 가사가 무척 아름답다. 그가 덧붙였다. 진짜 아픔을 겪어본 사람 만이 진짜 행복을 노래할 수 있다고. 자기는 그렇게 생각한다고. 나에게 제이슨 므라즈를 권했던 그가 생각났다. 썸 타다가 자기 학벌이 나보다 못함을 알고 마음을 바꿔먹은 그 사람은, 지금 생각해도 비겁하다. 그런 (이제는 중요하지 않을,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굴레가 되었던) 학벌이라는 게, 사람의 마음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게, 아마도 그 사람은 다른 내세울 게 없었거나, 자기 자신이 많이 불안했거나, 그랬지 않았을까. 술잔을 기울이며 그런 이야기를 했다.


지난 한 주 동안, 나에게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내 안에서 일어난 소용돌이가 이제는 말이 되어, 행동이 되어 흘러나왔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 감사하고 놀라워했다. 더 이상 유약하지 않은 나로 살리라, 생각했다. 마음은 많이 단단해져서, 대책 없이 누가 조금만 잘해줘도 흔들리던 마음이, 이제는 친구와 썸남은 구분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으니 금사빠인 나에게는 얼마나 다행인지. 


반대로 내가 조금만 잘해줘도 철벽 치는 사람이 있다면, 주저 없이 건너뛰고 가야 하는데, 자존감이 낮고 사랑에 목말랐던 나는 늘 거기에 마음 다쳐 아파하고 그랬던 거 같다. 나이가 들어 좋은 건, 

'너 나 싫어? 그럼 나도 손절이야'라며 포기가 빠른 것인 듯하다. 


친구와 나는, 그렇게 지하철에서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마음이 상쾌하다. 


그래도 사랑은 하고 싶고, 또 다른 썸은 타고 싶다.

우선 나는, 저 드라마 주인공처럼 예뻐야 하나보다. 

나름 나쁘지 않은 외모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또 한 살 먹어 버렸다. 


- Fin-


작가의 이전글 요가가 나를 살게 하는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