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군지에서 학원을 안 보내도 될까?

by 아이린

밤 12시가 다 된 시간. 자다 일어나 화장실을 가려고 거실로 나왔는데 흠칫했다. 불 꺼진 깜깜한 거실 책상 앞에 왠 시커먼 놈이 고개를 푹 떨구고 앉아있었다. 올해 중2가 되는 큰 아이였다. 놀라서 불을 켜고 아이 앞에 마주 앉았다. 언제부터 이렇게 눈을 꼭 감은 채로 돌처럼 꼼짝 않고 앉아있었는지 모르겠다.


"무슨 일 있어? 왜 이러고 있어?" 조심스레 물어봤다.


"...." 아이는 한 동안 말이 없었다.


"왜 그래..?"


"머리가 안 돌아가... 3시간이나 숙제를 했는데 반 밖에 못했어..." 한 참 뒤 내뱉은 말이었다.


무슨 일인지 감이 왔다. 겨울방학을 시작하며 수학학원에 등록했다. 주 5일, 정규수업은 약 세 시간, 그 외 시험 보고 오답까지 해야 하는 날에는 4~5시간을 학원에서 보내고 왔다.


그렇게 학원에 다녀와서는 또 학원 숙제를 3시간 이상 걸려 해야 했다. 하루 종일 수학만 해야 한다고 투덜투덜 댔었는데 오늘은 그게 폭발한 것 같았다. 아이가 너무 짠 하고 안쓰러웠다.


"내일 하루 학원 가지 마. 숙제도 그냥 하지 말고 오늘은 그만 자자. 학원에는 엄마가 하루 빠진다고 말해 놓을게."


"그럼 빠진 거 보충한다고 그다음 날 또 남아야 해.."


"엄마가 잘 이야기할 게.. 오늘은 안 될 것 같으니까 그냥 일단 자."


이 날은 이렇게 대충 마무리를 해 놓고 재웠다.


내가 사는 곳은 소위 말하는 대치동 목동 분당등 1군 학군 지는 아니다. 2군 학군지쯤 되는 곳이고 이곳으로 이사 온 지는 2년 반 가량 되었다.


큰 아이 5학년 여름방학, 작은 아이 7살 여름이었다. 남편이 직장을 옮기게 되며 남편 직장과 가까운 곳으로 알아보던 중 교통, 학군, 집값도 적당한 곳을 찾다 보니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그래도 학군 좋다고 소문난 동네라 집 앞에 대형학원들이 몰려있고 차량운행이 안 되는 주말이면 라이딩해주는 학부모들 차로 인해 극심한 교통정체가 일어나는 곳이다.


전에 살았던 곳은 학군지와는 거리가 먼 동네에 변변한 학원 하나 없는 작은 동네였다. 산 좋고 물 좋은 한적한 그런 곳이어서 아이들 어릴 때 많이 뛰어놀았고 예체능을 빼고 공부 학원은 한 번도 보내본 적이 없다.


집에서 문제집으로 공부하며 학교 공부는 따라갈 수 있게끔 해주었다. 영어도 엄마표로 영어책 읽혀가며 나름 열심히 시켰다. 그러나 이사를 와서 보니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은 한참 앞서가고 있었다.


학군지로 이사를 오면서도 공부 학원은 아이 거부가 심해 중1이었던 작년까지도 보내지 않았었다. 학교공부는 무난하게 따라갔고 혼자 인강을 보며 꾸준히 공부했기에 나도 무리하게 학원을 보내려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매일 학원가를 오가며 학원 다니는 아이들을 보니 아이보다는 엄마인 내가 더 불안했다. 저 많은 아이들은 주말에도 학원 다니며 공부하는데 우리 아이는 이대로 괜찮은 걸까? 지금 아이 편하게 해 주겠다고 학원 안 보냈다가 나중에 아이한테 원망을 듣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한 번씩 불쑥불쑥 들었다.


사실 현재 학교 교과공부만을 생각한다면 무리하게 학원을 다닐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다른 아이들은 학교 내신을 위해 학원을 다니는 것이 아닌 고등, 입시까지 보고 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나도 불안한 나머지 선행과 심화를 할 수 있는 학원을 알아보았고 이곳에서 잘 가르친다고 소문이 난 대형학원 겨울특강에 다녀보는 게 어떻겠냐고 아이를 설득했다.


처음에는 싫다던 아이도 계속된 설득에 결국은 다녀보겠다고 했다. 아이도 친구들이 다들 학원을 다니고 있으니 학원을 한 번쯤은 다녀야 하겠다고 은연중에 생각했던 것 같고 엄마의 의지가 강한 것을 알았는지 더는 거부하지 않았다.


나는 나 스스로 아이에게 거부할 수 없는 선택지를 준 것도 모르고 아이의 선택이었다고 스스로 위안했었다. 그런데 아이가 아닌 내 의지였던 것 같다.


아이는 방학하기 전부터 방학에 하고 싶은 일들 목록을 써가며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 그 목록 안에는 학교 다니느라 못했던 운동, 혼자 보충하고 싶었던 공부, 시간이 없어서 하지 못했던 독서 등이 있었다. 그런데 학원을 다니며 다 못하게 되었다고 푸념했었다. 뭐가 맞는 것인지 다시 헷갈리기 시작했다.


방학이 끝나가고 있고 이번 달 학원 수업도 며칠 남지 않았다. 아이는 다음 달에 개학하고 나서는 학원에 다니고 싶지 않다고 단호히 말했다. 원래 하던 대로 인강으로 혼자 하고 싶다고 했다. 처음 학원에 등록할 당시에는 꾸준히 다니길 기대하며 보냈지만 그건 나 혼자만의 기대감이었다. 아이는 방학이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나 힘든 학원을 다니게 될 줄 모르고 방학을 잔뜩 기대했던 아이였는데..


이번엔 나의 선택지가 없었다. 아이의 선택을 따라 줄 수 밖에는. 어제는 아이가 학원을 다녀오며 서점에 들러 다음 달부터 공부할 문제집들을 사가지고 왔다. 혼자 해보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한번 더 내비쳤다.


학군지에 살며 학원을 안 보내는 것이 더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정신적으로..) 이번엔 어쨌든 아이의 선택을 믿고 지지해 주려고 한다.


학원을 정말 안 보내도 되나 한 번씩 고민하고 불안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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