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질 너머

유락에서 진행하는 모각글 시즌 5에 참여하며 쓴 글입니다

by 수빈

쳇바퀴 돌 듯 나의 삶은 출근과 퇴근, 그 언저리에 있었다. 사회의 기준에 맞춰 좋은 대학에 갔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아등바등 살았고, 좋은 학점을 따기 위해 쉬지도 못하고 공부만 했고, 그 흔한 스펙을 채우려 안간힘을 썼고, 그렇게 결국 그저 그런 회사에 취직했다.


문득 아침 지하철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누구의 삶을 살고 있지? 왜 이렇게까지 해서 얻은 것이 고작 이 무채색의 하루뿐일까?


지하철 칸은 인공 태양 빛 아래서 숨죽인 채 미세하게 흔들렸다. 사람들은 고개를 떨군 채 전자 기기에 집중했고, 나는 조심스럽게 손잡이를 잡았다. 무심코 손잡이의 틈을 바라보다가… 그때였다.


그 작은 금속 고리와 고무 사이에, 보였다. 육안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틈. 아주 얇게 갈라진 빛의 층. 공간의 틈새가 아니라, 현실이 껍질처럼 벗겨진 듯한 간극.


나는 숨을 멈추고, 손잡이를 잡은 손에 힘을 줬다. 그리고 천천히 발끝으로 올라섰다. 마치 목을 매는 사람처럼, 고개를 그 틈에 걸쳤다. 그 순간, 지하철의 소음이 사라졌다. 빛이 뒤집혔다. 나는 낯선 무중력의 공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검은 구(球)들이 유리처럼 매달려 있었고, 그 안에는 나의 지난 기억들이 떠다녔다. 초등학교 졸업식, 첫 입사 통지서, 부모님의 기대에 눌려 울던 밤…
그 구들은 나를 스쳐 지나가며 미세한 전류를 흘렸다. 마치 삶을 기록한 데이터 저장소처럼.


그 중심에는, 아직 열리지 않은 구가 하나 있었다. 내 이름도, 내 얼굴도 없는, 완전히 비어 있는 구.


나는 그 앞에서 멈췄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알 수 있었다. 저 구에 들어가면, 나는 내가 아닌 무언가가 된다. 지금의 경로에서 완전히 이탈한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망설이지 않았다. 나는 조용히 그 구 안으로 몸을 던졌다.


다음 역에서 지하철 문이 열렸다. 사람들이 내리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손잡이는 천장에 매달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그곳에 없었다.
아니, 더는 ‘나’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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