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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imer Jul 19. 2024

기초 다지기

10년 동안 어떻게 기초를 다졌는가


나는 아직도 전문성이 없다고 생각한다. 요즘 밈으로 떠도는 판교어들은 해석할 줄 모르고, 다양한 방법론에 대해서도 많이 부족하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잘 몰라도 회사에서는 항상 좋은 평가를 받아왔다. 어쩌면 저런 방법론 자체가 업무를 할 때 기초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런 주제를 잡아봤다. 아니 오히려 저런 것들을 잘 모르기 때문에 더 업무에 있어 효율을 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것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내 경험을 더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나는 경력의 3년 정도는 방황기를 거쳤다. 첫 번째 회사의 임금체불로 인해 핸드폰도 정지됐었고 사회인이 되자마자 만든 신용카드가 나를 불행하게 했다. 2014년 6월에 임금체불로 인해 일하던 회사를 뛰쳐나왔고 약 한 달간 궁핍하게 생활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본가에서 살았다는 점이었다. 집이 기초생활수급자였어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형편은 아니었다.


그렇게 쉬고 있을 때 이전 직장에서 같이 일하던 분(나보다 먼저 퇴사한 분)이 상사 중에 한 분이 자기가 다니고 있는 회사에 올 생각이 있냐고 연락이 왔다. 급한 나머지 바로 7월부터 출근하기로 했고 3개월의 수습기간을 거쳤다. 대형 잡지사였기 때문에 편집디자인 업무가 주였고 웹디자인과 카카오스토리 콘텐츠 디자인도 진행했다. 이때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기에 정말 재미없게 일하던 시절이었다. 3개월 수습이 끝나자마자 그만둔다고 했다. 돈도 없으면서 왜 또 그만뒀는지 아직도 의문이다. 2014년 10월 말까지 일했고 또 백수 생활이 시작되었다.


2015년 1월,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전에 있던 대형잡지사의 편집장님이 다른 대형잡지사로 이직을 하면서 연락이 왔다. 이번엔 앱디자인을 하는 자리가 있다고 같이 일하지 않겠냐고 하신다. 나는 앱디자인이라는 말에 바로 입사를 하였고, 입사 후에는 거의 콘텐츠 디자인만 했다. 편집장님이 생각하기에는 앱에 들어가는 콘텐츠니깐 앱디자인이라고 생각하셨나 보다. 그렇게 9월이 돼서 또 퇴사를 했다.


2016년 3월, 동대문구에 있는 작은 에이전시에 입사했다. 대부분에 업무는 쇼핑몰 상세페이지 디자인이었고, 가끔 카페24 툴을 활용하여 디자인 및 코딩을 하는 작업이었다. 회사에서는 대표의 욕설과 폭력이 난무했다. 대표가 취미로 성악동호회를 하고 있었는데 동호회 사람들을 사무실로 초대해 업무시간에 성악 연습을 하곤 했다. 이 때는 퇴사를 하지 않고 이직 준비를 하게 됐고 2016년 9월 초에 퇴사 후 바로 다른 곳으로 이직했다.


여기까지가 나의 방황기간이다. 기초 다지기인데 주제가 다른 이야기만 해서 읽는 중에 의아해하실 분들도 많았을 것 같다. 나는 이 시절에는 내 인생이 꼬였고, 미래가 막막하게만 느껴졌다. 전혀 배운 점도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이런 경험이 있어서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확신한다. 물론 경험을 안 하는 게 가장 좋겠지만...


이런 경험들로 배운 것을 정리해 보면 다섯 가지 정도 되는 것 같다. 나도 모르는 채 배운 것도 많을 것이다.


내가 첫 번째로 배운 것은 다양한 방면에서의 지식이다. 아마 대부분의 회사는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콘텐츠 디자인을 해야 할 상황이 종종 올 것이다. 마케터와 협업할 때도 콘텐츠 디자인을 했던 경험에서 꽤 많은 도움이 됐다. 콘텐츠에 들어가는 문구에 관련된 커뮤니케이션부터 내가 경험한 콘텐츠 중 효율이 좋았던 것도 함께 이야기해 볼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나중에 다닌 중견 회사가 커머스 b2b회사인데 카페24 툴을 이용해서 디자인과 코딩을 한 경험도 이직할 때 굉장히 도움이 됐다.


두 번째는 사람이 많지 않은 회사에 다녔기 때문인지 습관적으로 다양한 트렌드를 공유하는 습관이 생겼다. 이런 습관이 좋은 게 상대방은 커뮤니케이션을 잘하고 팀워크를 좋게 만들어준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이것은 항상 연말 평가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세 번째는 목적을 가지게 됐다. 회사를 보는 눈이 생겼고 더 좋은 회사를 가기 위해 발버둥 쳤다. 트렌드를 계속해서 뒤쫓게 되었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데 거부감이 없어졌다. 이런 이유로 관련된 소식을 발 빠르게 팀원에게 공유할 수 있었다. 물론 지금 회사에서도 여전히 하고 있다.


네 번째는 생각의 폭이 넓어졌다. 분명 작은 회사, 이상한 회사에도 잘하는 사람이 많다. 회사가 이상한 거지 직원이 이상한 건 아니다. 똑똑한 주니어들도 있고 멍청한 시니어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기에 나는 내 시안에 대한 피드백을 주니어부터 시니어까지 모두에게 받으려고 노력한다. 요즘 들어 많이 생각하는 것이 주니어 시니어는 경험의 차이지 보는 눈에 차이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주니어도 사용자가 될 수 있고, 시니어도 사용자가 될 수 있고 아예 다른 분야의 사용자도 많다.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디자인을 하기는 어렵겠지만 최대한 가까워지게 만드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하는 디자인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는 쉽게 말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게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전문적이지 않은 회사를 오래 다녀왔기에 요즘 스타트업에서 사용하는 언어들을 잘 모른다. 심지어 영어도 잘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 서비스를 소개할 때 쉽게 설명한다. 나의 롤모델이 했던 말 중에 ”어떤 것이던 리뷰를 할 때는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게 해야 한다.“라고 했던 게 기억이 난다. 나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고, 그게 리뷰할 때와 커뮤니케이션할 때 큰 도움이 되었다. 꼭 어렵고 전문성이 보이는 말을 써야 일을 잘해 보인다는 생각을 가진 분이 있다면 다시 생각해 보길 바란다.


이렇게 내 경험은 좋은 방향으로 흘러간 것 같다. 물론 가만히 안주하고 있었다면 결과가 달랐겠지만 그만큼 노력도 했다. 잘 모르면 배우면 되는 것이고 몰라서 도움이 되는 것도 있다. 지금 어려운 상황이어도 분명 이겨낸다면 좋은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최근 지인 동생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나도 바쁘게 살지만 나보다 바쁘게 사는 사람을 처음본다.“라고 이야기해 줬다.

내가 봐도 나는 하는 게 많지만 이것들을 통해 기초를 다지는 중이다. 9월부터는 대학원에 입학을 하게 되었고, 사이드 프로젝트로 사업과 비슷할 정도의 규모로 진행하고 있다. 또 사이드잡과 강의도 하고 있고, 사이드프로젝트 동아리 운영도 겸하고 있다.이런 것들이 알게 모르게 내 기초를 탄탄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회사 외로도 다양한 곳에서 기초다지기를 할 수 있는 요즘 세상이 나는 너무 좋다.


기초 다지기라고 해놓고 어떤 방법론과 같은 기초 다진 얘기가 많이 없는 것 같아서 이상해 보일 수도 있지만 내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해보고 싶어 글을 작성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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