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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g Sep 12. 2021

강한 결심 세계에서 탈출하기

복직 부적응기

결심한다고 잘할 수 있는 건 아닌데, 잘하고야 말겠다고 결심하고 결심한다. 그 결심이 너무 강해서, 결심하는 데에 모든 에너지를 다 쏟곤 한다. (많은 자기 계발서에서 말하고 있지 않은가. 결심하지 말고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의지를 믿지 말라고. 그런데 난 아직도 매일 의지만 다지고 있다.)​

무언가를 결심하는 것에도 이성이 아닌 감정을 쓰고 있다. 온갖 슬픔, 기쁨, 분노를 참아내느라 진이 빠지듯이 마음을 다지고 다지느라 자아가 고갈되어 버리는 것이다.​

출근해서 오전, 오후에 할 일을 계획하고 다 해내기 위해 초집중하겠다는 결심을 밤새 하다가 출근하지만 아침부터 멍해져 시작조차 제때 못하곤 한다. (100미터 달리기의 준비, 땅! 소리에 놀라 스타트부터 늦어지는 어릴 때의 나처럼.)

필사를 더욱 열심히 해보겠다고 펜을 종류별로 다 사온 날 갑자기 체해서 두통과 울렁거림으로 며칠을 필사 못하고 누워있기도 한다.

이번 여행은 꼭 관광이 아닌, 맛집 투어 여행을 해야지 하고는 위장병이 도져 위가 쪼그라들기도 하고.

야심 차게 강의를 신청하거나 새로운 모임에 들어가지만 보통 둘째 날 몸살이 나서 또다시 쓰러지게 되는 것이다.


이번에도 그랬다. 책임감을 위한 사무실 일과, 가족을 위한 집안 일과, 나를 위한 시간 사이에 균형을 잡고 싶어 얼마나 오랜 시간 고민하고 마음을 먹었던가.(나름 몸과 마음의 완벽한 준비가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일을 본격적으로 해 보지도 않았는데, 앓아눕기 시작했다. 고작 이틀 만에 일 년 넘게 쉰 몸이 바로 만성피로의 몸으로 리셋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꾀병이 아닌가 싶어 당황스러웠다.

하루 종일 눈 빠지게 PC를 노려보아도 백만 원단위부터 카운트가 어렵다. 1일 1 실수를 하며 여기저기 죄송합니다 말하고 다닌다. 법령 하나 찾는데 시간이 훅훅 지나가버리는 바보가 되었는데, 찾았다 하더라도 눈으로 읽는 것이 머리로 들어가지 않는다.

건조기 안 빨래는 꺼내지 못해 다시 축축해진다. 식기세척기로 미처 들어가지 못한 설거지가 가득 차기 시작했다. 출근 첫날부터 아이 학원은 모두 코로나로 인해 휴원을 하였고, 다음날은 누가 주차해 놓은 나의 차를 받았다. 남편은 또 피곤하면 밥 안 먹는 나쁜 습관 시작됐냐며 쫓아다니며 밥을 먹으라고 잔소리를 했고, 나는 가족에게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오픈 채팅방의 어떤 아이 아빠분께서 복직 후 한 달 동안 책도 내고, 저자 강연회도 하고, 이것도 하고 저것도 했다는 소식은 나를 절망하게 만들기도 했다.(축하하는 마음은 진심입니다.)

빨리 기력을 찾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서 빵과 감기약과 영양제를 털어 넣었다. 몸은 말을 듣지 않았지만 머릿속은 쉬지 않고 움직였다.

야근해야 하는데, 청소해야 하는데, 책 읽어야 하는데, 필사해야 하는데, 포스팅해야 하는데...

왜 내 몸이 말을 안 듣지. 일어나야 하는데, 일어나야 하는데.

사실 쉴 때도 그랬다. 아무리 새벽 기상을 해서 알차게 보내려고 노력해도 한 번씩 체력의 한계에 부딪혀 몇 날 며칠을 누워있게 된다. 결국 그동안의 노력도 물거품이 된 것 같았다.

덩치에 맞지 않는 이 체력의 벽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처럼, 몸이 먼저이기도 하고 마음이 먼저이기도 했다. 그런데 몸이든, 마음이든 보통은 사나흘 이상 가지 않는다.​

나흘쯤 되자 눈이 조금 맑아지는 기분이 들어 일어났다. 너무 오래 불안해하며 누워있었는데, 보통은 일어나 보면 길어봤자 사나흘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 놀랍다. 난 왜 편히 못 누워 있었을까.

아기들 돌 발진에는 그 어떤 해열제도 소용없이 사나흘을 기다려야 하듯, 나 자신도 사나흘만 기다려 주면 되는데 꼭 영원히 누워 있게 될 것 마냥 두렵다.




몸이 좀 가뿐해지자 사무실에서 분양받아 와 던져둔 백합 화분이 생각났. 우리 집에 오면 죽을 게 뻔하다 생각하면서도, 꽃이란 단어에 순간 이성을 잃고 들고 왔다. 퇴근과 동시에 현관에 방치되었다.


누워있을 때 아이가 뛰어와 물어본 기억이 난다

"엄마! 이 화분 뭐야?"

"백합이라는 꽃이래. 엄마가 좋아하는 노란 꽃이 필 거래."

며칠 방치한 화분에게 미안했다. 햇빛 두는 곳으로 옮기려 보니 화분 주변에 흙이 잔뜩이다. 아이가 이름표를 만들어 몇 번 끼웠다 뺐다 하며 흙을 흘려놓았나 보다.

이름표의 한쪽 면엔 초록이, 반대쪽 면엔 노랑이라 써 놓았다. 지금은 초록색이지만 나중에 노란 꽃이 필 거라고.

그리고 화분에도 커다랗게 써 놓은 것이 보였다.​


"배캎❤"



아이는 아직 백합이란 단어를 어떻게 쓰는지 몰랐나 보다. 이 행복감! 어떻게 '카' 밑에 '피읖'이라 생각했을까. 아이가 아직도 맞춤법을 모르는 코로나 초등학생이라고 다들 걱정하지만 괜찮다. '카' 밑에 비읍이 아니라 피읖이니까. ​

어찌 보면 백합이라는 엄마의 대답을 힘주어 생각해 백! 합!이라 적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힘을 빼어 생각해 배캎이라 적은 아이처럼,

나도 많은 것들을 덜어 내고 생각하고 싶다.

늘 힘주어 꽉꽉 채워 생각하는 바람에 정작 내 몸은 바닥나 버리고 무너진다. 이틀 만에 뭉그러진 나는 나흘 만에 될 대로 되라고 내려놓고 나서야 드디어 일어났다.(나흘쯤 되니 감기약 약발이 든 것일 수도 있지만)​


진도는 많이 밀렸지만 독서 모임 , 필사 모임, 포스팅 모임 숙제 인증을 했다. 그토록 다시 시작하기 두려웠던 야근을 시작해 밀린 업무를 조금씩 클리어하고 있다. 아직도 일하는 뇌는 삐거덕거리고 있지만.

난 또 힘을 주게 될 것이고, 내 인생은 또 이틀 만에 리셋되고, 금세 힘겨워할 것이다. 그것도 괜찮다. 난 사흘쯤 지나면 또 내려놓을 수 있을 것이고, 나흘쯤 되면 벌떡 일어날 테니까. 쉽지 않을 것이다. 힘을 줬다 뺐다 누웠다 일어났다 그렇게 계속 고전할 것이다.​




비 오는 저녁, 야근을 하다 홀로 비를 맞으며 공업사에 차를 찾으러 갔다.(우산이 차 안에 있었다.) 날씨마저 외로워서 그렇게 슬프다가 갑자기 또 행복감이 밀려왔다. 새로운 근무지에 출근하자마자 누가 내 차를 받아 버리다니, 벌써 액땜을 해 버린 것이잖아. 앞으로 더욱 맘 편히 출근할 수 있게 되었다.



백합 화분이라고 하는데, 꽃이 필까요


이 배캎이에게 노랑이가 피어날 즈음엔 내 몸도 마음도 새로운 일상에 다시 적응하겠지. 내 눈과 뇌도 빨리 또릿또릿 하게 돌아왔으면. 업무 하는 뇌가 삐걱거린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시작하면서, 글 쓰는 뇌도 같이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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