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ng Sep 25. 2021

좁쌀의 추억

꽉 껴안아 주지 못한 존재들이 차가워지는 순간

 추석선물을 정리하다 잡곡세트를 발견했다. 좁쌀이 든 비닐을 뜯어 백미 위에 노르스름한 알갱이들을 쪼르륵 따라낼 때마다 초등학교 때 학교 앞에서 산 병아리 세 마리가 생각난다. 수컷은 한 마리에 200원, 암컷은 300원이었다. 암컷 세 마리와 모이까지 해서 1,000원을 냈다. 아저씨는 검은 봉지에 담아주셨다.



 다들 학교 앞에서 파는 병아리는 병든 병아리라고 했다.  어차피 죽을 병아리니까 집에 데려가면 부모님이 버리라고 한다고 했다. 그날만큼은 절대 부모님 말씀을 듣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하며 약국에 들어갔다.

 "박카스 박스 하나만 주시면 안돼요?"

엄마 또래의 여자 약사님은 '너도 샀니? 한심한 것'같은 표정으로 주눅 들게 했다. 약사님이 주신 상자에 병아리 세 마리를 넣고 현관 앞에 쭈그리고 앉아 집에 들어가기를 망설였다.



 외출했다 돌아오시던 엄마는 잠시 놀라시더니, 큰 박스를 주워 와 병아리를 옮겨 주셨다. 병아리들이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정말 병든 병아리일까? 죽으면 어쩌지?

비싼 좁쌀에 마이신을 섞어주자 먹기 시작했다.


 드디어 그림책에 나오는 병아리처럼 물 먹고 하늘도 보기 시작했다. 만화에 나오는 아이들처럼 삐약삐약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사랑스러웠지만 병아리들을 안아주진 못했다. 그 가느다랗고 붉은빛의 발과 물컹거리는 몸통의 촉감이 무서웠다.


 아빠가 퇴근하시더니 "우리 딸이 아빠 몸보신해주려고 병아리를 사 왔네?"라고 하셨다. 내가 웃지 않자 반복해서 말씀하셨다. 병아리들이 아빠 말을 들을까 봐, 그리고 아빠가 나의 울음소리를 들을까 봐 방문을 닫았다.

한 번 안아주지도 못하고 눈을 떼지 않고 바라보았다. 죽지 말라고 밤새 속으로 말했다.


 병아리들은 박스를 넘어 아파트 안을 펄펄 날아다니는 멋진 닭이 되어가고 있었다. 닭날개를 정말 사용 가능한 것인지 처음 알았다. 닭발과 닭털은 더욱 안아줄 수 없었지만, 그 무서운 부리마저 사랑스러워 눈으로 백만 번 품었다.


 그 외에 꼭 안아주지 못해 미안한 장수풍뎅이 애벌레, 소라게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하지만 꺼내기 힘든 우리 강아지 이야기. 십 년을 훌쩍 넘게 살았으니 다들 오래 살았다고 말해 버리는 우리 강아지와의 추억은 말할 수 없다. 남들 앞에서 울면 창피할 이 나이에 개망신을 당할 수 있다.


 남동생이 조르면 뭐든 해 주시고 싶어 하던 엄마는 강아지도 사주셨다. 동생은 집에 거의 안 들어왔기 때문에 강아지는 거의 나와 시간을 함께 했다. 물컹거리는 느낌과 발바닥의 촉감이 무서웠던 나는 한 달 두 달 후 강아지의 진심을 느끼고 나서야 만질 수 있었다.


 타지에서 학교를 다니던 그때 그 아이를 보기 위해 주말마다 시외버스를 타고 집에 왔다.  하루 종일 물컹거리는 강아지를 안고, 발바닥 냄새를 맡았다. 누구를 만나든 눈치 없이 그 아이 이야기만 했다. 혼자였던 시간이 길지 않게 있었는데 그때 만나게 된 모든 남자들에게도 강아지 얘기를 했다. 매일 '개' 이야기를 하는 이 여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겠지만, 다들 좋아하는 척 들어주었다. 강아지를 본인의 차에 태워주었고, 산책도 함께 했다.


 어느 날 우연히 같이 걷게 된 지금의 남편에게 강아지를 키운다고 하자 남편이 활짝 웃으며 물었다.

 "강아지 이름이 뭐예요?"

그렇게 물어본 사람은 남녀노소 불구하고 처음이라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시츄요?"

 "아니요~ 강아지 진짜 이름이 뭐냐고요~"

강아지 종도 알려주지 않은 나에게 강아지의 진짜 이름을 물어본  그날, 이미 남편에게 마음을 냅다 주어버린 것 같다.


 여행을 다녀오면 인천공항까지 새벽 2시에 데리러 오던 남편이었다. 새벽 4시에 집에 도착하자마자 눈치 없이 나를 얌전히 집에 들여보내던 남편은 나에게 뜨겁지는 않지만 알맞은 온도의 사람이었다.


 결혼을 했고, 아이가 생겼고, 휴직을 거쳐 회사에 복직했다.  아이는 매일 아팠고, 입원을 했고, 강아지 털 알레르기 수치가 높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는 건강이 나빠져 대학병원에 다녀야 했고 일 년 간의 내 연차를 모두 그곳에 썼다. 그렇게 친정에 갈 짬조차 안 나고, 막상 가도 강아지를 안아주지 못했다. 아이만 늘 등에 엎고 있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아이의 알레르기 수치를 마주하고, 매달 대학병원에서 피검사를 한다면 난 또 강아지를 안아주지 못할 수 있다. 아이가 크면 다시 더 안아줘야지 했지만, 이미 평균 수명을 넘어 힘겹게 살아내고 있을 즈음이었다.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렇게 6년 전쯤 떠났다.



 다른 친구들이 수컷 병아리를 한두 마리씩 살 때 암컷 세 마리를 샀다. 내가 안아주지 못하니 서로서로 안아주길 바랬다.(난 여행도 술자리도 세명이 좋다.) 나중에 새끼까지 낳아서 더 많이 안아주고 살라고 용돈을 다 썼다.(근데 암컷끼리 새끼를 낳을 수 없다는 걸 그때 설마 몰랐나?)



 뜨거운 마음으로 안아주면 백배의 사랑으로 돌려주던 우리 강아지, 가족들, 그리고 많은 친구들과 직원들, 동물, 물건, 식물들이 있었다. 그중 더 이상 나에게 따듯하지도 않고 나를 조명해 주지 않는 것이 있다면, 내가 언제부턴가 덜 안아주었음을 깨닫는다.


 초2에 중2병이 찾아온 아들도, 하필 명절 연휴에 망가져버린 청소기도, 술 먹자는 나의 연락을 시큰둥하게 대답하던 그 언니도, 늦게 익는 척하더니 썩어버린 아보카도도 내가 받은 사랑의 반에 반도 나눠주지 못했다.


 눈과 마음으로만 포옹하지 않고 모두 다 팔로 꽉 품을 수 있도록 가슴이 백 평 정도 됐으면 한다. 가슴속은 닭다리살처럼 쫄깃 대지 말고 닭가슴살처럼 퍽퍽했으면 좋겠다.




 가끔 조용히  혼자 있을 때면 윗집에서인지 아랫집에서인지 '탁탁 탁탁'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가 꼭 우리 강아지가 귀를 긁을 때 팔꿈치가 방바닥에 부딪히는 소리와 흡사해서 반가워진다.


우리 토토가 누나 보러 왔구나. 누나가 마지막에 많이 안아주지 못해서 미안해. 영원히 마음으로 보듬어줄게.

매거진의 이전글 나에게 필요한 문장, 메시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