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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g Feb 05. 2022

많은 걸 버렸지만, 유난히 미련이 남아

무엇을 버렸는가 보다, 어떻게 버렸는가

아이가 유치원 다닐 때는 승진을 앞두고 있고 해서 몇 년 동안 내내 바빴다. 그 시기를 떠올려 보면 아이는 늘 아프고 나는 늘 일했다. (그 와중에 술도 먹고, 운동도 다녔다. 아휴.) 아이가 아파 회식 빠지는 것도 눈치를 봐야 했던 거지 같은 시절이었다.


남편은 같은 직장에 근무하기 때문에 그나마 내 상황을 이해해 주는 편이었다. 그런데도 한 번씩 그에게 납득이 되지 않았던 것들이 있다. 사무실 일 말고는 아무것도 해낼 수 없었던 체력과 아이 아픈 거 신경 쓸 때 빼곤 사라져 버리는 정신력이었다.(결혼 전에 너무 강한 척을 했던 게 잘못이라면 잘못이다. 그렇다, 난 사기결혼을 했다.)


육아휴직을 일 년 정도 남기고부터는 모든 일을 그때로 미뤘다. '휴직하고 하자, 휴직하고 할 거야, 휴직하고 할게.'


그 '휴직하고 할게' 중 한 가지는 나의 책 정리였다.



결혼하면서 소장하고 있던 책들을 몽땅 가져왔다. 남편은 언젠가 자기도 다 읽어 보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그 책들을 보며 독서광 소리를 듣던 어린 시절을 추억했다. 결론만 말하자면, 남편과 나는 책을 읽지 않았다.


책도 안 읽는 주제에 책 육아를 하겠다며, 아이 책과 책장만 사들였다. 나중엔 아이 책 꽂을 자리가 모자랐다. 늘 뭐든지 "더 사!"라고 말하는 남편은 책장을 더 사라고 했다. 더 이상 집에 책장을 둘 곳이 없는데? 그래서 내 책장의 책들을 다 꺼냈다. 줄 하나 긋지 않고 본 새 책 같은 것들이었다. 다독가인 직장 언니에게 물어보니 알라딘 중고로 팔라고 했다. 그것 역시 '휴직 후'로 미뤘다.



2020년 5월 어린이날이었다. 남편은 농업 관련 부서에 있었다. 농번기라 농기계 대여 근무조로 출근했다. 자동으로 아이를 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사무실에 쌓인 업무가 떠올라 육아에 집중할 수 없었다.


계약부서에 근무하고 있었다. 5, 6월은 신속 집행 때문에 공사 신규 발주가 한창이었다. 공사 입찰 공고문을 하루라도 빨리 올려야, 하루라도 빨리 착공할 수 있고 신속 집행 기한 안에 선금이 지출될 수 있다. 게다가 매월 첫째 주에는 도로개설공사 및 건축공사에 참여하고 있는 일용직 근로자들에게 지급되어야 할 노무비 지출서류가 몰려온다. 하루라도 빨리 검토하고 결제받아서 지출되어야 근로자분들이 급여를 받게 되는 것이다. 마음이 무거워 잠도 오지 않았다.  


결국 어린이날, 어린이를 데리고 출근했다. 옆에서 조잘대는 아이의 질문에 대답해 주느라 고작 2건만 처리하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지만.


일을 못한 것에 대한 짜증과, 어린이날 아이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가슴에서 부글부글 거리며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그날따라 남편은 퇴근하자마자 청소를 했다. 책상 밑에 숨겨 놓은 내 책들을 가리켰다. 정리할 테니 버릴 책 안 버릴 책으로 분류만 해달라고 말한다. 늘 뭐든지 "버리지 마!"라고 말하는 사람이 왜 내 책을 버리라고 할까. 책이란 게 버릴 책, 안 버릴 책이 따로 있는 게 아닌데. 그걸 분류할 시간이 있으면, 내가 사무실 가서 일을 하지, 아니면 청소를 직접 하지. 화가 났다. 아이가 옆에서 보고 있어 큰 소리를 낼 수 없어, 내일 처리하겠다고 대답했다.


다음 날 아침 남편이 없는 틈을 타서, 책을 쓰레기 장에 버렸다. 나도 안다. 누군가는 일도 잘하고, 육아도 잘하고 집 정리도 잘하겠지. 그런데 난 다 못 한단 말이다. 그렇게 아무것도 잘하는 거 없는 나에게 벌을 주었다. 책을 소장하고 있는 것 자체가 사치였다. 책 읽을 날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었다.


껌딱지인 아이는 책을 나눠서 들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락내리락하는 나를 몇십 번이나 쫓아서 오르락내리락했다. 그 모습이 귀여워 아이와 함께 웃으며 책을 들고 오르락내리락 반복했다. 5월이라 따듯했고, 웬일로 미세먼지도 없는 맑은 날이었다. 아이를 데리고 왔다 갔다 해도 아이 감기 걱정을 안 해도 되는 유난히 좋은 날씨였다. 그래서 눈물도 안 났다.


한쪽 손엔 책 묶음을 들고 한 손엔 아이 손을 잡고 원래도 아프던 팔에 고통을 주었다. 다신 책이란 걸 읽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나를 괴롭혔다. 이렇게밖에 살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분노를 엄한 책 더미마다 꾹꾹 담아 재활용장에 차곡차곡 쌓았다.



9개월 후 계획대로 육아휴직을 했고, 매일 청소를 했다. 아이가 아프면 제때 병원에 데리고 갔다. 부모님이 아프시면 병원에 모시고 갔다. 이런 게 사는 거구나 싶었다. 아이와 매주 도서관에 갔다.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면서 다시 책을 읽어야겠다고 큰 결심 했다. 예전처럼 즐겁게 읽지는 못하고 겨우 읽어내는 수준이었다. 가난한 휴직자였는데 돈만 생기면 책을 샀다.


이젠 복직을 했고, 월급이 들어오자 책을 더욱 사대기 시작했다. 밑줄이 그어지고 귀가 접혀가며 너덜너덜해진 책이 책상 위에 쌓이고 있다. 배송되자마자 방구석에 열지 않은 책들이 모이고 있다. 남편이 책장 하나 사라고 잔소리를 할 때가 되었는데...



남편의 책도 늘어나고 있다. 보통 내가 읽지 않는 투자책이긴 한데, 그때 내 책을 다 버린 게 억울하다는 못된 마음으로 남편 책들을 노려 본다. 남편은 사무실을 혼자 쓰기 때문에 사무실에 책장이 있다. 며칠에 걸쳐서 본인의 책을 사무실로 옮겼다. 아직은 남편의 책 뭉텅이를 바라볼 자신이 없는 뒤끝 있는 내가 또 싫지만, 조용히 종이가방을 매일매일 꺼내 준다. 어서 다 가져가. 한 권도 남기지 말고. (도서관을 가지 않는 남편은 책을 정말 많이 산다. 투자책이라 꼭 신간을 봐야 하는 건가? 그래, 주식으로 돈 못 벌어도 책 사는 건 괜찮아.)


책을 버리지 않았다면, 뭐가 달라졌을까? 독서 속도와 이해력을 본다면 그 책들을 다시 뽑아서 읽는 일은 거의 없었을 것 같다. 그저 벽면 가득 책을 배경으로 북튜버에 도전해 볼까 하는 꿈이나 꿀 수 있었을까? 그 정도 차이?


그래도 나의 책들을 그때 그렇게 버린 것은, 내 인생의 큰 실수다.  다시 펴 보지 않을 책들이지만 절망감과 함께 버려진 그날의 기분이 떠오르는 날은 아프다. 그래서 후회한다. 그렇게 한 번씩 내 성질을 못 이겨 고요한 비명을 아무 데나 넣어 패대기것이 늘 그렇게 스스로에게 상처가 되어 각인된다.


가끔 독서모임 선정 도서가 예전에 가지고 있던 책일 때가 있다. 다시 사는 게 왜 그렇게 아까운지, 중고로 다시 구입하곤 한다. 그때 버린 내 책이 다시 돌아온 거 아닐까 하는 상상으로 꼭 안아본다. 반갑다. 다시 돌아와 줘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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