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인 Jan 05. 2021

66. 연초부터

연초부터 몸이 버티지 못할 정도로 바빴다.

다들 엄청난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 일거리가 아주 몰려든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화장실 한 번 들를 시간도 나지 않게 바빴다.


다들 얼마나 잘살고 싶은지 매일매일 전쟁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부딪히며 앞으로 치닫는다.

봄만 되어도 지 동력의 절반도 남지 않고 다들 가쁜 숨을 내쉴 텐데, 언제나 1월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모두가 바쁘다.

마치 막 처음 돌린 팽이 같다. 아주 조금만 있으면 제풀에 지쳐 비척댈 거면서 어찌나 그렇게 주변과 부딪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괜찮아, 연초니까 그래도 돼.라는 분위기라 뭐라 말하기도 힘들다.


귀가 아프다. 마치 나무 꼬치로 뇌까지 찌르겠다는 느낌으로 푹푹 찌르는 듯한 느낌이다.

한 번 고통이 느껴질 때마다 머리를 떨구고 한숨을 쉴 수밖에 없다.

1년이면 한 두 번은 늘 있는 귀부터 편도까지 붓는 시기인가 보다. 그게 왜 연초인지는 모르겠다.

안 그래도 모두의 바람이 불타듯 타올라 아픈 것도 맘대로 아플 수가 없다.

‘아프면 당당하게 말하고 빠져야지’ 싶다가도, 다들 무슨 잔뜩 부푼 풍성처럼 요란한 소리를 내며 앞으로 날아가고 있어, 제자리라도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침을 삼키니 목 안쪽까지 뭉근히 아프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감염 증상과는 달라 아프면서도 내심 안심이 된다.

나와 평생을 같이해온 친구 같은 병이 확실하다. 작년에는 좀 조용하다 싶었더니 연초부터 찾아와서 난리다.

왜 하필 그게 연초인 거야. 진짜 힘들어 죽겠다.라는 말이 턱밑까지 차오른다. 뭐 그래 봤자 귀와 편도가 아파서 입으론 내뱉지 못하겠지만.

전화기 속 고객들은 뭐 그렇게 멋진 꿈을 꾸길래 이렇게 연달아 전화를 하는지, 업무 메신저는 또 무슨 큰 기대가 있어 이렇게까지 복작거리는지.

연초라고 회의는 또 왜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다 연초라서 그래. 뭔가 망가진 듯이 잔뜩 공회전을 하며 치여 살아도 괜찮은 요즘이라 그래.

그런 분위기를 싫어하는 건 아니다. 난 언제나 꿈을 크게 가지니까. 꿈이 모두가 부풀어 있는 것도 좋고, 에너지가 넘치는 것도 좋다.

단지 이런 연초에 쉬고 싶을 뿐이다. 모두가 바쁜 시기에 어쩌다 보니 또 아파서 말이다.

싫어하지도 않는 기대에 부푼 왁자지껄함이 못내 거슬리고 짜증 나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이런 때 나도 같이 부풀어서 새해 계획을 세우며 힘차게 살지 못한다는 것은 좀 서럽다.

아프고 싶어서 아픈 것도 아닌데, 연초에 아픈 것은 왠지 더욱 눈치 보이고 서럽다. 차라리 몇 주 전에 아프지 그랬어. 싶기도 하다.


내일은 일어났을 때 오른쪽 귀의 통증이 씻은 듯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여느 사람들의 연초처럼 조금 부풀어서 복작대며 행동해도 불편하지 않고, 조금은 기대감 있게 살 수 있으면 좋겠다.

모두의 연초처럼.

매거진의 이전글 65. 세 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