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이올로스 Oct 10. 2019

대한민국의 조커(Joker)들에게..

좌절하는 네 모습이 너에게는 비극이지만,  사회에는  슬랩스틱 코미디다

 피로 얼룩진 내면의 상처를...... 웃고 있는 광대의 탈을 통해 감추며 살아가는"대한민국의 조커들"에게 큰 위로의 말을 전하고도 싶다.


영화 <조커>에 대한 반응이 매우 뜨겁다. 히어로 물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내용이 묵직하다.

"조커"라는 악당은 이 영화에서 "관객 모두가 다 아는 악당"을 의미하는 하나의 "소품"에 불과하다. (호아킨의 연기는 대단하다)

 온전히 나만의 해석을 필요로 하는 걸작이라는 생각에 영화 홍보 영상은 하나도 보지 않고, 영화관으로 향했다. 결론을 보았지만  "절대 유쾌하지는 않은 영화", "정의란 무엇인가?", "악은 만들어지는 것인가?"라는 주제를 묵직하게 던지고 엔딩을 맞이하는 매우 철학적인 영화였다.

 과연 악은 타고나는 것일까? 아니면 만들어지는 것일까?

(약 스포 있음)



 

영화의 시작은 1980년대 거리에서 광고판을 들고, 광대 복장으로 호객행위를 하는 주인공 '아서'의 장면으로 시작한다. 열심히 웃으며 광고판을 들고 호객 행위를 하지만 동네 불량 청소년들의 못된 짓으로 신나게 두들겨 맞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광대 복장 때문에 잘 뛰지도 못하는 그의 모습, 다수의 힘 앞에 저항조차 못하고 두들겨 맞는 모습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그러면서도 "애들이 그런 거잖아" 하면서 이해심 넓게 넘어가는 '아서'의 모습은 우리가 아는 (후에 조커라 불리는) 악당이 맞나 싶을 정도로 순진하고 착하고 때 묻지 않았다. 

 

버스 앞좌석에 앉은 아이를 웃게 하려고, 온갖 코미디 기술을 사용하는 선한 인물이지만 돌아오는 것은 부모의 차가운 냉대뿐, 그 상황에서 아서의 정신병이 돋는다. 불안한 상황이 되면 자신도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웃음이 터지는 그 병 때문에 아서는 직장에서도 사회에서도 그는 외톨이다.

 아서는 하루하루 고단한 하루를 보낸다. 지친 퇴근길에 높은 계단은 그를 더욱 지치게 하고, 삶의 이유는 심약한 어머니와 자신의 이름을 건 TV 스탠딩 코미디 쇼에서 방송을 하는 꿈 두 가지밖에 없다.

 그 불량 청소년들에게 폭행을 당한 후 자신을 지키라고 직장 동료는 총을 건네고, 순진한 아서는 총을 받기를 처음에는 거절하지만, 다룰 줄도 모르는 총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받게 된다. 결국 그 총을 아동 병원에 들고 가 직장을 잃은 아서는 지독한 좌절감과 배신감을 맛보게 된다. 그 최악의 상황에서 또다시 발병한 정신병은 그를 곤경에 빠뜨리고, 자신을 보호하고자 살기 위해서 사용한 총은 그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 놓는다.

 그런 최악에 상황에서 그가 믿었던 홀어머니의 학대 때문에, 웃는 병이 발병하였음을 알게 되고, 자신의 롤모델이 자신의 코미디를 신랄하게 비난하며, 사회적으로 자신을 매장시키는 고독감 속에서 조커는 완성된다. 아니 완성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지금까지 배트맨이라는 선의 입장에서 조커를 대해 왔다. 악의 화신이고, 선을 시험에 빠뜨리는 악의 상징 조커(Joker)!

하지만 철저히 이 영화는 조커(악)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도록 한다. 하지만 조커의 연민이 느껴지고 어딘가 내 모습 같다.

 죽도록 열심히 살았다. 현실이 시궁창이었지만 이상 속에서 '나'는 능력 있고, 잘 나가고 언제인가 그 이상을 실현할 소중한 존재였다. 하지만 세상은 나를 손가락질하기 시작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택해서 살았고, 비록 내가 손해를 좀 보았지만, 사회에 악을 끼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 했다. 그런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사회의 낙오자라는 지독한 좌절감과 노력이 부족했다는 성공한 자들의 현실감 없는 가르침(비아냥) 뿐이었다.

 영화 <모던 타임즈>에서 기계 부품화 되는 찰리 채플린의 모습을 보며 희극 (Comedy)라 칭하며, 신나게 웃어 대는 부유층. 뭘 해도 다람쥐 쳇바퀴 돌듯 불행한 현실로만 돌아오는 "나에겐 비극, 남에게는 희극"인 현실을 보며 그는 말한다. "내 인생이 비극인 줄 알았는데, 코미디였어"

 어릴 적 누구나 배운다. "착한 어린이가 되라고"............. 착한 어린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한 적은 없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내 마음속에도 조커가 자라기 시작했다.

 상장을 얻기 위해 죽어라 공부했는데, 친구의 어머니가 학교를 다녀간 후 상장은 그놈 손에 있었다. 좋은 학교 가기 위해서 죽어라 공부했는데, 명문대는 있는 집 자식들이 족집게 과외 몇 번 받더니 입학했다. 죽어라 공부해서 회사에 입사했더니, 쉬운 일만 골라서 하던 놈이 먼저 진급하더라. 직장 동료가 선의를 베푼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지 살자고 날 함정에 빠뜨렸더라. 죽어라 집 사려고 돈 모았더니,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물려받는 거더라. 내 환상 속에서는 예쁜 여자 친구도 있고, 사람들이 날 우러러 봐주었는데 그것이 환상임을 깨닫는 순간!

 나는 조커가 되었다!


 1980년대 고담(Gotham : Goddam(빌어먹을 에서 유래했다는 설도있다.))시를 배경으로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의 "익숙한 장면(?)"이 숨겨져 있는 모습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횃불을 들고 거리로 나오는 장면을 보며 수많은 개개인의 좌절감이 거대한 힘을 만드는 장면이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라 느껴질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수많은 좌절감에 지친 사람들, 조커의 가면을 쓰고 피로 만든 웃음에 환호하는 모습을 보면서 폭력, 개인의 좌절감(상대적 박탈감), 고립감이 어떻게 조커들이 만들어지는지 보여주는 명장면이라 생각한다.

 실제로 우리 사회는 많은 조커를 만들고 있다. 과거 신창원이 자신이 범죄로 입문하게 된 일화를 보면  선생님으로부터 "새끼야, 돈 안 가져왔는데 뭐하러 학교 와. 빨리 꺼져."라는 막말을 듣고 자신의 마음속에서 악마가 태어났음을 느끼고 어둠을 품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 모두는 가슴에 조커 한 마리를 키우고 있다. 히스 레저의 조커,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 제이올로스의 조커, OOO의 조커...


그 조커가 실제의 조커로 탄생되지 않도록, 우리는 우리 마음속에 조커를 한번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지나친 좌절감에 힘들어하지는 않는지, 불공평함에 힘들어 하진 않는지, 또한 우리가 쉽게 내뱉는 말들이 옆 사람을 조커로 만들고 있지 않는지, "내가 소속된 우리"의 사회가 편견과 차별을 통해 누군가를 고독한 조커로 만들고 있지 않는지...

이 영화를 보며 피로 얼룩진 내면의 상처를 억지로 웃고 있는 광대의 탈을 통해 감추며 살아가는"대한민국의 조커들"에게 큰 위로의 말을 전하고도 싶다.

 마지막으로, 개인들이 서로 자학을 할 수 밖에 없는 비극 속에서, 사회는 그 자학을 슬랩스틱 코미디로 즐기고 있는건 아닌지 고민해 볼 때다.


 






작가의 이전글 서평 <이것이 공매도다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