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의 행동이 있었지만 아무 판단도 내려지지 않은 상태는 오래 유지되기 어렵다. 조직은 멈춰 있는 상태를 불안해한다. 아무 결정도 남지 않은 채 시간이 지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했다는 사실 자체가 부담이 된다. 이 부담은 곧 다른 형태의 움직임으로 전환된다.
이때 조직이 선택하는 방향은 ‘멈춤’이 아니다.
대신 일이 늘어난다.
추가적인 활동, 보완 작업, 재정리 요청이 이어진다. 처음의 마케팅 활동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를 둘러싼 작업이 계속 생성된다. 활동의 수는 줄지 않고 오히려 늘어난다.
이 증가한 일의 대부분은 새로운 시도가 아니다.
수치를 더 잘게 나누고, 관점을 바꿔 다시 보고, 맥락을 보완한다. 이전에는 묶여 있던 결과가 분리되고, 분리된 결과는 다시 설명의 대상이 된다. 이 과정에서 마케팅은 끝난 일이 아니라, 계속 진행 중인 일이 된다.
흥미로운 점은 이 과정이 비효율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추가 작업은 대부분 합리적인 이유를 갖는다.
“조금 더 명확히 보기 위해서”
“오해를 줄이기 위해서”
“판단에 도움이 되도록”
이 말들은 틀리지 않다. 다만 이 말들이 반복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판단이 내려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결과를 둘러싼 작업이 끝날 수 없다.
무엇을 선택할지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어디까지 보면 충분한지도 정해지지 않는다.
그래서 일은 자연스럽게 늘어난다. 줄일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이때 발생하는 일의 증가는 방향성을 갖지 않는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일이라기보다,
현재 위치를 유지하기 위한 작업에 가깝다.
마케팅은 새로운 국면으로 넘어가지 못한 채,
같은 결과를 여러 각도에서 반복적으로 다루게 된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일의 성격도 변한다.
초기에는 결과를 이해하기 위한 작업이었던 것이,
점차 결과를 방어하기 위한 작업으로 바뀐다.
설명은 길어지고, 정리는 정교해지지만,
회의는 많아지고, 산출물은 쌓인다.
그러나 바쁨과 전진은 같은 것이 아니다.
판단이 없는 상태에서 늘어난 일은,
조직을 움직이기보다 시간을 채우는 역할을 한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일이 무능이나 태만 때문에 발생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대부분은 성실함의 결과다.
아무 판단도 내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조직은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하고 있을 뿐이다.
결국 판단이 멈춘 조직에서는
결정을 대신할 수 없는 일들만 계속 쌓인다.
판단이 내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일은 계속 늘어났다.
바쁨은 커졌지만, 방향은 생기지 않았다.
그렇다면 늘어난 이 일들은 무엇을 대신하고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