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저녁, 전 직장에서 담당했던 거래처의 담당자님과 잠시 만나 담소를 나눴다. 몇 번이고 일정 조정을 해서 겨우 만나는 날이었다. 오랫동안 담당해서 사이가 좋았고, 나와 같은 시기에 퇴사하셔서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앞으로는 어떤 계획인지 공감할 이야기가 많을 듯했다.
저녁 7시 고탄다역 개찰구에서 나를 기다리는 담당자님은 전과는 달리 번듯한 양복차림이었다. 그리고 그의 양복에는 배지가 달려있었다. 오, 새로운 회사 배지인가 봐요! 하고 인사를 건네며 배지를 자세히 들여다본 순간 깨달았다. 보험회사의 배지였다.
우리는 카페에 들어갔고 한 3시간쯤 이야기를 나눴다. 담당자님은 무리하게 영업을 하시진 않았다. 내가 이동 발령이 난 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왜 회사를 그만두었는지, 현재 직장은 어떤지에 대해 즐겁게 이야기하셨다. 그렇게 이어진 우리의 이야기는 사담과 영업의 경계선을 왔다 갔다 하며 마무리되었다.
어린 시절에 만난 친절한 타인들은 모두 나의 친구가 되었고 애인이 되었고 스승이 되었다. 서로에 대한 생각은 비슷했고 관계에 대한 마음도 비슷했다. 20대에 만난 친절한 타인들 역시 친구가 되었고 애인이 되었고 스승이 되었다. 하지만 몇몇은 비즈니스 거래와 특별한 하룻밤을 노리며 씁쓸함과 불쾌함을 건네고 떠나갔다.
그럼에도 여전히 누군가의 친절과 나를 반기는 그 태도를 의심 없이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또 어제처럼 반쪽짜리 목적을 발견하고 조금은 씁쓸해하며 집으로 돌아간다. 의심 없이 신뢰하고 시작할 수 있는 관계가 점점 더 좁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