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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나씨 Aug 09. 2019

백수가 불안에 정면 승부하는 법


어? 뭐야.


 기억도 가물가물한데 나는 한 3, 4년 전에 치아교정을 마쳤다. 그 탓에 늘 치아나 잇몸의 변화를 신경 쓰는 편이다. 백수가 된 지 2개월째, 여느 날과 같이 양치를 하고 치아를 보던 중에 두 앞니 사이가 눈에 띄게 벌어져 있는 걸 발견했다. 조금 벌어졌나 아닌가 싶더니 완전히 벌어진 것이다. 충격.



놔두면 더 벌어지는 거 아니야? 왜 갑자기?

무릎 수술 후에 계속 먹던 근육이완제를 포함한 각종 약들 때문인가. 아님 또 고정 장치가 느슨해진 건가.

이미 벌어진 이상 다시 교정을 해야 할 텐데. 하 이거 또 돈이 얼마야. 치과는 어디로 가지.



 생각은 꼬리를 물며 자꾸만 원인규명과 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나를 심난하게 했다. 하지만 이는 작은 신호탄에 불과했다. 백수로 지낸 기간에 비례하여 어찌할 수 없는 불안들은 꾸준히 늘어나 머리를 뒤덮었다.


비자 때문에 빨리 취직해야 한다는 압박이 온다. 비자 취소 경고가 오면 어쩌지?

직종을 바꾸고 싶은데 경력이 없는 직종에 붙을 수 있을까?

결국 재활을 하느라 원래 계획했던 건 하나도 못했다..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진짜 내가 원하는 게 뭐지? 난 뭘 할 수 있을까?

다시 회사에 다니면 뭔가를 병행할 수 있긴 할까? 지금까지 못해놓고서?

관심 있는 것만 많아서 기획하고 관련 정보만 모으다 제대로 실행한 게 하나도 없다.



 무계획 퇴사를 감행한 나에게 미래에 관련된 불안들이 늘어난 것은 꽤 치명타였다. 불안이라는 감정에 휩싸여 이 시간을 오롯이 즐길 수도, 건설적인 행동을 취할 수도 없이 무기력해져 버렸다. 더 이상 이것들을 방치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책과 공책을 꺼내 들었다. 내게 주어진 무기는 김경일 교수님의 지혜의 심리학과 후루카와 다케시의 쓴다 쓴다 쓰는 대로 된다 라는 책이었다.



<지혜의 심리학 중에서>
 불안을 극대화하는 것은 불확실성과 모호함이다.
 공포영화를 예로 들어보자. 불안은 괴물이나 귀신이 나타나거나 잔인한 장면이 눈앞에 펼쳐지는 순간보다 그런 장면을 암시하면서 무언가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진행되고 있을 때 강하게 나타난다. 즉,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진 순간보다 오히려 언제, 어떻게 일어날지 모르는 동안 공포감이 더 커지는 것이다. 불안은 공포나 고통이 예견되지만 정확히는 알 수 없는, 모호한 상황에서 극대화된다.



<쓴다 쓴다 쓰는 대로 된다 중에서 >
근심, 걱정, 불안이 쌓여 머리를 점령하면 마음의 에너지까지 전부 빠져나가고 만다. 이럴 땐 머릿속에 뒤엉켜 있는 생각을 모두 종이에 쏟아내 보자. 고민이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는 3단계가 있다.
1단계 :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는 뒤죽박죽 상태 (에너지 부족)
2단계 : 상황과 문제가 명쾌하게 정리된 상태 (에너지 보통)
3단계 : 해결책과 앞으로의 행동이 명확한 상태 (에너지 충만)






김경일 교수님의 책에서는 불안을 다스리려면 내가 가진 불안의 불확실성과 모호함을 구체화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후루카와 다케시의 책에서 추천한 네거티브 리스트를 적으며 적극적으로 해결할 불안과 당분간은 무시하고 그냥 놔둘 불안을 분류했다. 당분간 놔둘 불안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그냥 기억해두고 그냥 놔두는 것이다. 내가 뭔가 액션을 취할 수 있는 타이밍이 오면 그때 적극적으로 행동하기 위해서.



그렇게 형태도 없이 머릿속에 엉켜있던 불안이라는 놈을 노트 위의 글자로 정체를 만들어서 내 눈앞에 보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내가 걱정하던 것들이 어떤 식으로 종결되는지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적고 보니 새롭게 알게 된 것이 있었다.


첫 번째는, 앞니가 벌어진 것 같은 나에게 일어난 어떤 상황은 중립의 입장을 지키고 있는데 내가 스스로 부정적 해석을 하면서 불안을 만들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저 조금 벌어졌을 뿐인데 앞으로 더 벌어질지도 몰라. 분명 그럴 거야 하면서 불안을 증폭시켰던 것이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는 나의 해석을 만들기 전에 팩트 그 자체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습관을 들여야겠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는, 나의 노력보다 시간이 자연스럽게 해결해주는 문제도 있다는 것. 그즈음의 나는 수술한 지 2달이 넘었는데도 시큰거리는 무릎이 걱정이었다. 언제 날아올지 모르는 비자 취소의 경고도 걱정이었다. 그런데 이것들은 모두 시간이 흘러감과 동시에 아무 문제없이 해결되었다. 물론 그동안 운동도 열심히 했고 만약 비자경고가 오면 어떤 대응을 할 지는 생각해두었다. 할 수 있는 대응은 준비해두고 일단 방치해둔 문제들이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것을 바라보니 무리해서 모든 문제를 바로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 애쓸 필요는 없다는 걸 알았다.




백수 5개월 차가 되어 깨달은 불안에 정면 승부하는 법을 정리하자면 이 3단계인 듯하다.

1 일단 쓴다. 그들의 정체를 구체화한다

2 싸울 놈과 피할 놈을 분류한다

3 싸울 놈을 이길 전략을 짜고 실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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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부한 걸로 빨리 돈을 벌고 싶었다. 그래서 일본에 갔다. 회사원이 되어 돈은 벌었지만 하루하루 내가 어딜 향해 달려가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이대로 계속 가는 건 아닌 것 같다고 마음이 외쳤다. 서른 하나, 그제야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고 자발적 방황기를 갖기로 결심한다. 잘 쉬고 잘 자라기라는 나만의 슬로건을 내걸고 시작된 현재진행형 일본 백수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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