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나씨 Sep 12. 2020

뭐가 '당연'한 거고 무엇이 '보통'의 삶인가요?


어제 고 설리의 다큐가 방영된 후로 하루 종일 그녀가 과거 사랑했던 사람이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내린다. 그 사람의 SNS와 각종 기사에서 또다시 마녀사냥이 시작되었다. 설리의 사진들을 하나같이 음란하고 음침하게 바라보던 시선들은 이제 그녀의 과거로 향한다. 

 

왜 나이 많은 그렇고 그런 사람과 사귀냐? 왜 노브라냐? 왜 악플을 받으면서까지 SNS를 하냐? 왜 기이한 행동을 하냐? 자기 기준에서 ‘보통’이고 ‘당연’ 한 것들과 거리가 있는 사람을 보면 우리는 다소 무례하게 ‘왜?’를 들이민다. 유행하는 MBTI로 새삼 너와 내가 다름을 느낄 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사람 수만큼의 ‘다양함’을 눈치챌 수 있을 텐데. 유별나고 다르다는 이유로 의문과 비난을 꼬리표처럼 달고 다니는 유명인들을 보면 우리는 참 지겹게도 ‘보통’과 ‘당연’에 갇혀 사는 듯하다. 



내 삶의 궤적은 ‘보통’의 길을 따라왔다. 문과생이 할법한 언어 전공을 졸업하고 평범한 회사원이 되었다. 하지만 작년에 비로소 헤어짐을 맞은 그는 달랐다. 처음 만났을 때 그는 3년째 세계여행 중인 여행자였다. 대학도 가지 않았고 7년간 일한 후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채로 마음 가는 대로 이 나라 저 나라를 여행하고 있었다. 


그는 어디서 돈이 나서 몇 년씩 여행을 하는 걸까? 30대 초중반인 그는 앞으로 어쩔 셈인 걸까?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나도 이런 의문이 들었지만 묻지 않았다. 나는 그저 타인일 뿐이고 애초에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얼굴에서 늘 미소가 흘러넘쳤고 함께 있으면 행복이 옮겨오는 기분이었다. 여태껏 이런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그가 들려주는 세상의 이야기가 재밌었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그렇게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나와 연인으로 지낸 2년 중 1년 반 동안 그는 계속해서 여행을 이어나갔다.


그와 교제하고 있던 당시, 회사 회식에서 남자 친구 이야기가 화제에 올랐다. 거짓말을 싫어하는 나는 솔직하게 그에 대해 말했다. 여행지에서 만났고, 그는 몇 년째 세계여행 중이며 지금도 여행 중이라고 했더니 사람들은 너도나도 헛웃음과 의심을 뱉어냈다. 

‘여행지에서 만났다고? 3년째 여행 중이라고?’

‘30대인데 회사도 안 다니고 주식투자로 돈을 번다고?’

‘노파심에 하는 말인데 그 사람이 너한테 돈 빌려달라고 하면 절대로 주지 마라’

‘결혼사기 칠 지도 모른다. 조심해라’


자신들과는 다르게 회사를 다니지 않는다는 이유로. 30대인데 정착은 커녕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며 여행을 한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만나본 적도, 이야기를 나눠본 적도 없는 그를 한 순간에 돈을 노리는 사기꾼으로 몰아갔다. 그의 연인인 나를 앞에 앉혀두고 말이다. 다소의 비웃음을 섞어가며 소중한 사람을 의심하고 조심하라는 조언까지 덧붙이며. 그들은 자신들이 아는 ‘보통’에서 벗어난 존재에 대한 경계심과 나에 대한 걱정을 담아 한 말이겠지만 나중에 기억해보았을 때 내게 강렬하게 남은 건 조롱의 감정이었다.


몇 년 후, 그 회사를 그만두고 그와도 헤어진 후에 우연히 회사 사람들을 만났다. 

‘그러고 보니 그 여행자 남자 친구는 잘 지내?’

‘아니요, 헤어졌어요.’

‘잘했네. OO선배처럼 잘 나가는 사람이랑 결혼하면 신주쿠에 집 짓고 셀럽같이 사는 거야. 그게 찐 성공이지’


그때 다시는 나의 소중한 사람에 대해 외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삶의 다양성을 존중할 줄 모르고 부와 겉모습이 행복의 전부라 일반화하는 사람들과 삶에 대해서 대화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를 위해서. 


나는 일반인이기에 내가 원하는 대로 바로 차단할 수 있었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중 앞에 서는 것이 숙명인 연예인들은 어떨까. 자신의 행동이 불특정 다수의 ‘당연함’의 범주에 들어가야 하고, 그들이 원하는 모습을 끊임없이 보여줘야 하는 것도 숨이 막히는데 일거수일투족이 기사화되고 이유 없이 악성 댓글에 시달리는 일상을 보내는 동안 그들의 자아는 얼마나 무너져 내렸을까. 


세계 인구 77억 9500만. 한국 인구 5200만. 

30대인 나는 삶에서 몇 명의 사람들을 지나쳐왔을까. 과장해서 초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매년 한 반의 학생 수만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고 해도 1,000명이 되지 않는다. 1,000명 중 깊은 대화와 교류를 한 사람으로 따지면 내가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몇 남지 않을 것이다. 1명의 인간은 77억의 인간들 중 고작 그 정도의 사람만을 겪으며 사는 것이다. 그 근소한 수치의 경험만으로 형성된 나의 가치관에서 것이 '보통이다. 당연하다. 너는 왜 그러지 않느냐' 라고 내뱉는 행동은 얼마나 무지하고 날카로운가. 너는 이랬으니 이런 사람일 거야. 저랬으니 저것도 했겠지.라는 그릇된 판단과 믿음은 누군가 열심히 지켜온 ‘한 존재’를 가볍게 뭉개버린다.  


제발. 나의 잣대로 타인을 판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제발. 걱정과 조언이랍시고 요구하지 않은 말을 내뱉지 않았으면 좋겠다.

제발. 당신이 보는 그 사람이 그 사람의 전부라 믿는 편협한 짓을 그만했으면 좋겠다.


제발.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야 할 것은 

한 존재가 고뇌하고 용기 내서 행한 행동에 누군가의 인정과 이해는 필수가 아니라는 것.

우리는 모두 형태와 방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선택하며 살 권리가 있다는 것.

우리에겐 타인을 가볍게 판단할 자격이 없다는 것.

이런 것들이길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버리기엔 아까운 단상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