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외줄타기
매일 반복되는 마비로 인해, 일상이 무너지는 날이 많았다.
가장 끔찍했던 날은, 가스렌지에 불을 켜놓고 아무것도 올려놓지 않은 상태에서 마비가 온 날이다.
뜨거운 기운이 점점 올라오는데, 몸은 흔들릴 뿐 움직이지 않았다.
그 순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나로 인해 불이 나면 어쩌지?’
혹여나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줄까, 그 두려움뿐이었다.
다행히도 남편이 집에 있었고, 주방에서 이상한 기척이 없자 곧장 달려와 내 몸을 붙잡아 큰 화를 면할 수 있었다.
칼질을 하다가, 뜨거운 국을 뜨다가, 설거지를 하다가 쓰러진 적도 수없이 많았다.
빨래를 널다가 베란다 바닥에 한 시간 넘게 쓰러져 있었고,
통돌이 세탁기에 빨래를 꺼내다 거꾸로 빠질 뻔한 적도 있어
결국 드럼 세탁기로 바꾸었다.
화장실에서, 세탁실에서, 머리를 벽에 세게 부딪히고
그 뒤로 보호용 헬멧을 쓰고 생활했다.
친구와 통화하다 마비가 오면, 친구를 걱정하게 만든 적도 수없이 많았다.
조금 나아졌다고 외출했다가, 버스 안에서 쓰러져
모든 승객이 하차하고 119에 실려 집에 온 적도 있다.
은행에서 쓰러져 코앞에 둔 집도 못 오고, 119를 마치 택시처럼 타야했던 익숙한 시간들이었다.
반려견과 산책하다 허허벌판에 몇 시간이고 누워 있기도 했고,
재활용을 버리러 나갔다가 쓰러져 있는 사람을 보고도 그냥 지나치는 사람이 참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주차장에 쓰러져 한여름 땡볕 아래, 겨울 추위 속에 그대로 누워 있던 날들도 잊을 수 없다.
혼자 있는 집도, 밖도 모두 위험했고
그런 날들이 차곡차곡 쌓여 13년이 흘렀다.
가시밭길을 걸어 여기까지 왔지만
올해 4월에도 또다시 119를 불렀다.
구급대원들도 잘 모르는 병이라, 기본적으로 심폐소생술부터 하려 든다.
그러나 나에겐 치명적인 치료.
의식은 또렷하고, 귀도 열려 있어 모든 상황을 다 듣고 있지만
말도, 몸도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에서
꼬집고 때려도, 나는 신음조차 낼 수 없는 고통을 참아야 한다.
모르는 사람들은 무심히 지나치기도 하고
놀라서 허둥대는 사람들을 보면
도리어 그들을 놀라게 한 내가 미안해진다.
말을 할 수 없어 더 속이 탔다.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이 함부로 내뱉는 말들에 상처도 받았다.
처음엔 서운했지만, 그들은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니
마음속에서 서운함을 키울수록 내 마음만 초라해졌다.
그래서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긍정으로 버티자고.
요즘은 밥을 먹다 쓰러지는 일도 많아졌다.
외식 자리에서도 마비가 찾아오곤 하지만
그 자리에서 내색할 수는 없다.
모든 걸 내려놓았다고 생각했지만,
몸은 무의식 속 스트레스를 여전히 기억한다.
예전엔 스트레스를 받으면 바로 마비가 왔는데
요즘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교수님도 이제는 “그냥”이라고만 말한다.
답이 없는 병, 원인도 분명하지 않은 병.
살기 위해, 나와 결이 맞지 않는 사람과는
설령 가족일지라도 단절하며 지낸다.
그러나 내 몸은, 작은 스트레스 하나에도 말을 듣지 않는다.
정신과에서 할 수 있는 치료는 모두 다 해보았다.
그러나 완치는 내게 허락되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오늘도 체력을 다지고
마음의 근육을 키우며, 내 안의 또 다른 나와 살아간다.
지금 나는 그래도 행복하다.
나는 내가 봐도 멋진 사람이다.
누구보다 최선을 다하고 살아가는 나를
스스로 다독이며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