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설거지가 싫은지 알았다
1.
정말 기나긴 명절.
첫 날, 이튿 날 양가를 모두 방문한 이후로 삼일째부터는 온종일 쉬었던 것 같다.
가을날씨가 화창했기에 나갈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쉬었다.
빈둥대고 싶기도 했고, 사람에 끼어서 치이는 것도 귀찮고.
그렇다고 아예 나가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렇게 빈둥대다 보니 연휴가 마지막으로 왔다.
너무 빨리 6일이 지나가 버렸다.
2.
그래도 아시안게임을 보면서 하루하루를 나름 흡족히 보냈다.
배드민턴이나 탁구는 모처럼 보니 재미있더라.
무릎이 아프기 전까지는 꽤나 즐겼던 운동인데 이제 저런 스텝은 어림도 없다.
보는 것만으로도 모든 걸 할 수 있다고 믿는 건 함정.
저것도 못하냐고 답답해 하지만 누구보다도 답답한 건 그 사람이 아닐까 싶다.
상대편의 노력도 우리만큼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을터.
그런 걸 보면 참 스포츠라는 건 노력과는 별개로 재능이 우선인 듯...
그래도 난 노력을 믿는다.
그걸 믿지 않는다면 너무 정해진 미래가 되어 버리니깐?
3.
아내가 칼로 손가락을 베어서 기간내내 설거지는 내 몫이 되었다.
뭐 이 정도야 하고 호기롭게 했던 내 설거지는 날이 갈수록 점점 버겨워졌다.
게다가 왜 아이들은 밖으로 안나가고 삼시세끼를 집에서 차려먹는 것인가!
아내는 잘 하지도 않던 만두를 하겠다고 판을 벌려 버렸다.
양가에서 가져온 반찬들도 담고, 전도 데워 먹고, 고기도 냉장고에 가득 있고.
아이들은 꽃게찜에 간장게장에 손이 잔뜩 가는 것들을 좋아한다.
발라주는 건 내 몫. 손가락에 남는 비린내가 귀찮긴 하지만 아이들이 먹는 걸 보면 즐겁다.
그런 재미로 내내 한마리씩 꺼내어 주다보니...
어제까지 꽃게, 전, 불고기, 소고기 무국으로 계속 집밥 퍼레이드.
그리고 매번 나오는 설거지 거리들.
고무장갑을 끼고 아침, 점심, 저녁 그렇게 계속 설거지를 하다보니 무척 괴롭더라.
짜증이 났다.
아, 이래서 아내가 명절에 짜증을 냈던 걸까?
이런 이걸 20여년이 지난 이후에나 느끼고 말았네.
4.
우울함을 떨쳐내려 서울 한 가운데 산을 갔다.
남산을 가려다 안산이 좋다는 소문(?)을 듣고 발길을 옮겼다.
사람들이 꽤 많더라.
아마도 황토길도 좋고, 자락길도 좋아서가 아닐까?
날도 좋고 바람도 좋고.
멀리 있는 경치들이 한 눈에 보이면서 (물론 아파트가 너무 많긴 했지만) 나름 힐링하고 왔다.
적당히 땀을 흘리고 아무 생각없이 올라가는 등산은 기분이 좋다.
가기 전은 물론 귀찮지만 말이지.
아, 안산 올라가는 걸 등산이라고 하면 안되겠지? 산책.
5.
내일이면 다시 학교에 간다.
거의 가을방학 같은 일주일이었다.
교사일때에는 이런 날 경험했던 모든 것들이 아이들과 만나서 할 이야기거리가 되었는데,
교무실에만 있어야 하는 나는 떠들어도 들어줄 사람이 없는 고요 속의 외침이 될 뿐이다.
말할 사람이 별로 없다는 건..
참 슬픈 일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