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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2025 청사록

소나무에게 무슨 죄가 있겠어

산불에 너도 고생 많았다.

by 투덜쌤

1.


하루가 갈수록 거리에 연두빛이 조금씩 올라오고 있다.

출근하면서 바라봤던 갈색 나무들 끝자락에 조그마한 새싹들이 올라온게 참 예쁘었는데

어느새 제법 하늘을 가릴만큼 연두빛이 올라왔다.


은행나무들이 조금씩 기지개를 펴고 있다.

그러고 보니 집 앞 벚꽃은 흐드러지게 피었다 지었고, 도로가에는 개나리를 넘어 철쭉들이 만발이다.

시계를 보면서 몇 시간 몇 분을 체크하며 살아가는 현대인은 오히려 계절의 큰 흐름에는 둔한 듯.

밤 늦게 아파트를 들어올 때 코 끝을 간지럽히던 라일락 내음을 다시 한 번 음미하고 싶다.


2.


며칠 전 근처 뒷 산을 오를 때에는 앙상함과 황량함만이 가득했는데

제법 푸르름이 가득해서 산을 오르는 재미가 쏠쏠하다.

한 때는 소나무만 보였었다. 앙상한 나무가지 사이로 푸르른 빛이 왜 그리 반가운지.


3.


소나무는 산불에 주범까지는 아니어도 공범 정도로 수난을 받고 있다.

가지고 있는 송진이 불을 더 오래 타게 만드는 주범이라고 한다.

다른 나무에 비해 척박한 땅에서 잘 자랐던 게 죄는 아닐텐데, 이제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특성으로 인해 비난 받는다. 솔잎혹파리에 온갖 전염병에 걸리는 게 그들 스스로 방역을 못해서 그런건 아닐진대 말이지.


불이 나면 나무는 탄다. 조금 더 잘 탄다고 해서, 불을 만들어 내진 않는다.

그렇게 비난을 해도 결국 다시 소나무를 심는 건 값이 싸고 대중적인 묘목이기에 그렇다고 한다.

참나무 계열을 심는다고 산불을 면할 수 있을까?

결국 불을 낸 사람을 탓하고, 산불을 조심해야 하는 건 우리인데, 누굴 탓하는 걸까?


4.


다행히 비가 와서 공기 중에 수분도 많아지고, 불이 번질 위험도 적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강풍에 건조함에 다시 산불을 걱정하고 있다.

비가 내린다는 건 나무 뿐만이 아니라 온갖 생물들에게 축복이겠지?

지난 주말에 잠깐이지만 휘몰아쳤던 비바람이 고맙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그래, 그 때도 이렇게 비가 시원하게 내렸더라면 다들 덜 고생했을텐데.


5.


어느새 4월이 간다.

계절이 변하고 온갖 꽃들과 싹들과 풀내음들이 강산을 푸르게 만들고 있다.

그 사이에 소나무들은 늘 그렇듯, 그렇게 서 있는다.


바쁜 세상 속에 변하지 않고 있는 것이 몇이나 되랴.

고맙다 버텨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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