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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어비앤비 Oct 02. 2019

제주에 살기로 결심하다

살아보니 더 살고 싶어 지는 이곳, 제주

우린 제주도민 4년 차다. 말 그대로 '제주가 좋아서' 내려오게 된 케이스다. 우리는 둘 다 제주도에 가족도, 친구도, 지인도 전혀 없었지만 결혼하면서 신혼집을 제주도에 구하기로 했다. 이 이야기를 했을 때 많은 지인들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제주에 '왜' '어떤 계기로' 살게 되었냐고. 그 결정이 대단하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대단한 결정을 한 게 아니라, 그냥 지내보니 더 살고 싶어 진 것뿐이었다.




2014년 가을, 우리의 첫 번째 제주여행


이 여행을 계기로 사실상 우리는 한마음으로 "제주도에 신혼집을 구하고 살자!"라고 결정했었다. 당시 남자친구였던 남편이 출장으로 제주에 열흘간 가게 되었다. 나는 좋게 말해 프리랜서(a.k.a. 반백수)였기 때문에 흔쾌히 동행할 수 있었고, 우리는 말 그대로 10박 11일의 제주 라이프를 경험하게 된 것이다.


제주에서 지낼 숙소를 찾던 중 우연히 에어비앤비를 알게 되었는데, 솔직히 그 당시에는 '호스트'라는 것도 ‘집을 빌린다’는 것도 너무나도 생소한 개념이었기 때문에 사실 반신반의했었다. 하지만 외국에서 여러 차례 살아본 남편은 이와 비슷한 개념의 시스템들이 해외에도 있다고, 걱정할 필요 없다며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게다가 현지인의 집이기 때문에 주방 및 조리시설도 있고, 저녁에는 바비큐도 구워 먹을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참견받거나 방해받는 것을 꺼리는 편인데, 집주인이 같이 지내지 않는 점 또한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 시골집 다움이 물씬 풍기던 제주 옛집 스타일의 에어비앤비

‘쿠키네 하우스’라고 이름 지어진 그 집의 호스트는 우리 또래로 보이는 여자분이었다. 방 두 개에 작은 거실과 부엌이 있는 작은 주택이었다. 자신이 해외여행을 떠나는 기간 동안 자신의 집을 빌려주게 되었다고 이야기해 주었고, 제주에서 소위 말하는 ‘바깥채’라는 개념이지만 마당이 별도로 되어있는 구조라 다른 사람과 크게 마주칠 일은 없을 것이라고도 말해주었다. (실제로 이곳에 거주하는 10일 동안 안채에 머무는 사람들과 전혀 마주치지 않았다.)


제주에 도착한 첫날밤, 숙소를 찾아가면서 우리는 진짜 제주의 밤을 보았다. 어디에나 가로등이 밝게 비추고 밤낮으로 사람과 차의 소음으로 가득한 도시에 익숙했던 우리에게, 그 적막함과 드문드문한 가로등 그리고 사람 하나 없던 골목길은 낯선 장면이었다. 저녁 8시는 그리 늦은 시간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저녁 8시의 어둠은 꽤나 문화충격이었다. 아직도 생생한 것을 보면. 한편으로는 무섭기도 했지만 또 동시에 자연의 평화로움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묘한 기분이었다.


“느리게 산다는 게 이런 걸까?” 나도 모르게 감탄이 흘러나왔다.


나는 여행을 할 때 시간낭비를 줄이기 위해 계획적인 여행을 선호하는데, 제주도에서는 그렇게 여행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마치 여기가 내 집인양 맘껏 게으르게 지내며, 즉흥적으로 가고 싶은 곳을 정해서 떠났다. 제주도가 생각보다 넓다는 것을 쭉쭉 닳는 휘발유를 보며 깨닫기도 하면서. 평생을 부산에 살면서 바다는 많이 봤다고 생각했는데, 제주의 바다는 부산과는 전혀 다른 매력이 있었다. ‘여기가 한국이 맞나?’ 싶은 착각이 드는 제주도 에메랄드빛 바다.

▲ 초록색의 덜 익은 귤이 매달려있던 에어비앤비 앞마당




흐린 날, 어두운 순간 또한 사랑스러운 섬


한차례 태풍이 지나간 후 안개가 끼고 보슬비가 내리던 날, 마방목지에 갔다. 제주도는 예부터 ‘바람, 여자, 말’이 많다고 알려져 있는데, 제주도에는 놀랍게도 청동기 시대부터 말이 서식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마방목지에서 볼 수 있는 토종 제주마는 몸이 통통하고 다리가 좀 짧은 편이라 우리가 알고 있는 크고 높고 늘씬한 경주마들과는 다르게 너무 귀엽다. 운이 좋으면 망아지들이 뛰노는 모습도 볼 수 있는데, 나는 언젠가 말을 키우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흠뻑 반해버렸다.

▲ 흐려도 괜찮아! 마방목지 말들의 한가로움

그날은 자욱한 안갯속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던 말을 보니 굉장히 운치가 있었다. '인생에 잘 풀리지 않는 날에도, 그냥 그렇게 흘러가도록 내버려 둬도 괜찮아.' 이렇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자연스럽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건지 알게 하는 장면이었다. 우리도 그렇게 자연스럽게 살아가야지.


나는 평소 ‘산은 오르기보다 바라볼 때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집순이라, 사실 등산은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제주에서 우연히 알게 된 사진작가 분이 우리에게 산에 같이 가지 않겠냐고 권했고, 우리는 저녁 8시가 넘은 시각의 오름을 달빛과 별빛, 그리고 작은 손전등에만 의지해서 오르기 시작했다. (전문가와 함께였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나는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제주에 그렇게 많은 오름이 있는지도 몰랐고, 또 그렇게나 아름다운 지도 전혀 알지 못했다.

▲ 앞팀이 먼저 오름을 오르고 있다. 손전등 행렬이 반짝이는 길을 만든다.

나는 그날 달빛이 이렇게나 밝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밤하늘에 별이 그렇게나 많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처음이었다. 나는 항상 도시의 가로등에만 익숙했고, 하늘을 거의 쳐다보며 살지 않았던 것 같다는 생각이 밀려오면서 그 순간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자연이 주는 감동과 경이로움은 내 삶을 돌아보게 했다. 너무 감명받아서 수십 장의 달 사진을 찍었지만, 죄다 흔들려버렸다. 카메라가 내 눈으로 본 광경을 담기에는 한참이나 역부족이었다. 밤의 오름을 오르는 일은 그 사진작가님이 아니었으면 하지 못했을 것이다. 제주에 열흘간 머무르며 다녀온 곳 중 가장 감명받았던 곳이기도 했다.

▲ 달빛이 이렇게 밝다는 것을 나는 왜 이때껏 몰랐을까.

제주는 동호회 커뮤니티가 활성화되어 있다. 육지에서 내려와 제주에 정착한 사람들이 서로서로 의지할 곳을 찾아 모이기 때문인가 보다. 막연히 겁먹었던 우리에게 오히려 여기에서 정착해도 되겠다는 희망이 보였다. 우리는 정말 여기에 오길 잘했다고 이야기하며 서로의 손을 꼭 잡았다. 자연이 주는 황홀함과 이미 육지에서 정착한 사람들. 제주에 살아야 할 이유를 찾은 기분이었다.

▲ 아부오름에서 소떼들이 풀을 뜯고 있다. 이렇게나 바로 앞에서!

그 이후로 열 군데 넘는 오름을 올랐다. 마음에 든 곳은 두 번이고 세 번이고 갔다. 대부분 20분 정도면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점 덕분에 등산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도 부담이 없다. 가려고 마음을 먹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한번 가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갈 수 있어 좋고, 정상에서 보이는 풍경은 정말이지 단 한 번도 우릴 실망시킨 적이 없다. 제주는 법적으로 시내를 제외하고는 높은 건물이 거의 없기 때문에 조금만 올라가도 시원한 풍경이 펼쳐진다.


아, 주의할 점! 오름은 정말 소똥과 말똥의 천국이다. 발 밑을 잘 보며 걷지 않으면 무조건 밟게 되어있으니 조심하자.




열흘 동안의 제주살이


동남아나 괌, 하와이처럼 이국적이고 아름다운 자연, 그리고 비행기로 한 시간 이내면 가족들과도 언제든 볼 수 있다는 것. 또 언어의 장벽이나 문화 차이의 어려움이 없다는 점도! 물가가 조금 더 비싸 외식을 하려면 비용이 더 든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식재료 등 생활 물가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도 괜찮았다. 무엇보다 나는 제주의 하늘이 너무 좋았다. 빌딩 숲에 가려진 내 손바닥만 한 하늘이 아니라, 도시의 매연을 머금은 뿌연 하늘이 아니라, 두 손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시원하고 넓게 펼쳐진 푸른 하늘을 볼 때마다 예쁘고 또 아름다워서 계속 보고 싶어 졌다.

▲ 제주집의 낮은 지붕 위로 해가 저물던 풍경

물론 제주에 산다는 건 여러 가지 단점도 있다. 일자리가 별로 없고 임금이 도시의 절반 정도 수준이라, 많은 이들이 내려왔다가 돌아가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열흘 동안 시골에서 지내보며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불편함’에 대해 인식하게 되었다. 그 경험이 지금의 신혼집을 구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제주살이를 결정하고 나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제주에 막상 살면 1년도 못 버티고 힘들어서 돌아온다더라." "제주도 여행은 좋지만 사는 건 불편하지 않을까?"였다. 하지만 나와 친한 친구들은 다르게 말했다. "너답다." 이곳에서의 삶이 참 나답고, 우리 다운 선택이라고. 누군가는 오늘도 제주살이를 꿈꾸며 기대와 걱정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분들에게 꼭 이야기해주고 싶다. 일단 한번 보름이든 한 달이든 살아보라고. 부딪혀보면 자신의 정답은 스스로 분명 알게 될 테니까.


모두에게 정답이 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우리는 이 곳의 삶이 여전히 좋다. 아등바등 교통체증에 몸을 맡기며 숨 막힐 필요도 없고, 누군가와 비교하면서 위축되거나 자만할 필요도 없고, 그냥 자기 자신의 페이스대로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삶. 물론 지금도 모든 게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4D 영화를 보고 싶어도 도내에는 3D밖에 볼 수 없다는 점? 또 온라인 쇼핑을 할 때 제주도는 배송이 안되거나 도서산간 택배비 3천 원이 추가되는 점 등등. 하지만 포기해야 하는 것들은 우리가 누리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모두가 행복하게 살고 싶은 마음은 비슷할 것이다. 하지만 용기를 내지 못하면 언제나 그렇듯 살아가던 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열려있는 삶의 기회 중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는 선택을 하기로 했다. 우리는 제주에 산다. 행복으로 향하는 용기는 어쩌면 별 것 아닐지도 모른다.




에어비앤비 작가 임현주

여행하듯 자연스럽게 제주를 살아가는 일상 여행가. 제주와 해외를 오가는 방랑을 즐기며 살고 있습니다.

- 블로그 blog.naver.com/in_fu

- 인스타 @lim_hyunju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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