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어 Jul 09. 2021

아직도 사랑해

 칠십이 넘은 노인은 다리를 절고 있었다. 지팡이에 의지해 지구대 문을 열 때 그가 보였던 행동은 마치 슬로우 비전 장면 같아서 안에 있던 모든 경찰관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데는 꽤 성공적이었다. 

“집사람이 연락되지 않아 신고하러 왔습니다.”

 부인이 연락되지 않아 실종신고를 하러 왔다는 노인의 행색은 깔끔한 편이었다. 하릴없는 노인 마냥 아무렇게나 차려입은 몰골이 아니라 남방셔츠에 잘 다려진 양복바지를 입고 있었으며 지팡이를 쓰는 행색이 제법 어울리는 편이었다. 다만 그 정도 나이에도 별로 후덕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살집이 없는 얼굴과 그의 행색은 그가 그리 편한 사람은 아니겠구나 싶을 정도의 외모였다. 

“보름 전에 부산 딸네 집에 간다고 했는데 전화 연락이 안 되네….”

 하지만 노인의 진술은 조금만 노련한 경찰관이라면 금방 허점을 짚어낼 만한 것이었다. 보름 동안 연락이 되지 않는 부인을 이제야 신고를 하러 왔다는 것이 이상했다. 다행히 노인을 응대하던 경찰은 얼마 전까지 형사팀에 근무하다가 처의 출산이 임박해 바쁜 부서에 근무하기 어렵다며 자진해서 지구대로 발령을 신청했던 중참,‘고형사’였다.

“어르신! 그런데 따님이 친딸이 아닌가요? 왜 어르신과 성이 다른가요?”

 노인이 내민 쪽지에 적힌  ‘부산 딸’의 연락처와 이름을 보고 고형사가 물었다. 그런 경우, 노인이 부인과 재혼했을 가능성이 큰데 그건 그 딸과 노인과의 유대가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하고 따라서 노인의 민원을 해결함에 있어서 딸의 자발적 협조는 쉽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사모님과 재혼하신 건가요?

 대답을 망설이는 노인에게 고형사는 다소 직접적으로 물었다. 만약 노인과 집 나간 부인의 관계가 재혼 관계라고 한다면, 그래서 그 딸이 재혼 전 혼인 관계에서 낳았던 딸인데 이 노인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면 현재 벌어지고 있는 노인과 부인의‘불통’은 노인이 경찰관에게 호소하려는 ‘사고 발생 가능성’과는 거리가 멀 가능성이 높으므로 반드시 확인해야만 했다.

“아냐, 재혼 아니야…. 처가 밖에서 낳아 온 아이라 그래”

 노인의 대답 중 첫 문장은 다소 항변하듯 톤이 높았고 뒤에 문장은 뱀 꼬리 기어가듯 줄어들고 있었다.

“예…? 밖에서 나온 자식이라고요?”

 노인과 고형사 간의 대화는 다른 업무를 보고 있던 나머지 경찰관들의 귀를 쫑긋 세우게 했다. 하지만 고형사 역시 입 밖으로 발화하기가 쉽지 않았을 그 질문에 노인은 천연덕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맞은편에 앉아 듣고만 있던 고참 경찰관 한 명이 갑자기 고형사와 의미심장한 눈빛을 주고받으며 말없이 턱으로 출입문 밖을 가리켰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노인에게 다가가 말을 걸며 주의를 끌었고 그사이 고형사는 조용히 전화기를 들고 지구대 밖으로 나갔다.

 “지금 사시는 곳에서 사모님과 계속 같이 살아오신 건가요?”

 고참 경찰은 뭔가 자신감을 얻었다는 듯 좀 더 세게 노인을 몰아붙이는 것 같았다. 질문의 톤이 노인의 슬로우 비전 같은 행동보다는 꽤 빠른 것 같았다.

“그것들이 이제껏 내 돈 갖고 먹고살았잖아”

 노인의 대답은 엉뚱했다. 그건 “그동안 같이 살아왔냐?”는 질문에 ‘아니다’라는 대답을 건너뛴, 그러니까 같이 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자신의 돈이 부인과 그 딸의 생활비에 보태졌으므로 자신이 배우자의 자격은 충분하지 않냐 정도의 항변 같은 것이었다. 잠시 후 밖으로 나갔던 고형사가 아주 싱거운 문제를 금방 푼 뒤에 문제를 낸 사람에게‘지금 나 무시하냐?’라고 항변하는 사람의 표정으로 들어왔다.

“어르신! 제가 사모님과 통화를 했는데요. 사모님 아무 일 없이 부산에 잘 계시 답니다. 일부러 전화를 받지 않았던 거래요.”

 고형사의 말에 노인은 별로 놀라는 투도 아니었다. 마치 한두 번 겪는 일도 아니라는 것 같았다. 굳이 비유를 찾자면 “기르던 개가 그동안 예뻐해 줬더니 내 다리를 물었지 뭐야”하는 정도의 섭섭함 정도였다. 

“그래도 나와 통화는 시켜 줘야 내가 안심하지”

 그 대목에서 노인의 음성이 다소 높아졌다. 다른 남자의 자식을 낳아 자기와 성이 다른 딸과 모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배우자를 위해 생활비를 지불했던 사람으로서 당연한 권리가 아니겠냐며 ‘통화’를 주장했지만 그건 고형사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어쩌면 노인이 지구대를 방문했던 최종 목표가 그것인 것 같았다.

 “그냥 돌아가세요, 사모님도 그렇고 따님도 그렇고 어르신과 통화하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떼라도 써서 목적을 관철하겠다는 의지를 설핏 비치던 노인에게 고형사가 쐐기를 박았다. 노인도 그런 상황이 처음은 아닌 듯 “오늘은 안 통하겠다.” 싶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신세 한탄하듯 혼자 중얼거리다가 마른 입맛을 다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그때 노인의 행동은 들어올 때보다는 훨씬 빠른 속도로, 그러니까 ‘빨리 감기’는 아니어도 처음에 보였던 ‘슬로 비전’이라 할 수 없는 속도로 지구대를 빠져나갔다. 

“어지간히 힘들게 하나 봐요. 30년째 이혼도 해주지 않고 있데요”

 노인이 돌아간 뒤 고형사가 노인의 처와 통화했던 내용을 짧게, 아주 짧게 말했다.

 “혼외 자식을 낳아도 여전히 그런 걸 보면 아직도 사랑하나 봐….”

 고형사의 말에 고참은 중얼거리듯 대답했고 노인이 나간 출입문은 그날따라 공허해 보였다.

작가의 이전글 당신이  전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