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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풍 Sep 13. 2022

엽편 소설 - 모기

 날지 못할 정도로 저의 피를 배에 잔뜩 채운 미련한 모기일 뿐이라고 생각했어요. 살충제를 뿌릴 필요도 느끼지 못했죠. 그저 휴지를 손에 쥐고 덮친 다음 쓰레기통에 버리면 그만이었거든요. 모기도 압사 당하려고 작정을 한 건지 작업을 시작하기 좋게 테이블 위에 다소곳이 앉아있더군요. 착륙해 있는 모기의 머리 위로 두루마리 휴지 두 칸을 집어 든 저의 손가락이 천천히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울 때였어요.


"자.. 잠깐만요!" 


 모기가 저에게 말을 했어요. 분명 살려달라는 피곤한 애원을 시작할 게 뻔했죠. 전 대꾸도 안 하고 저의 원대한 작업을 수행하기로 했어요. 그저 모기를 꽉! 집어 터뜨린 뒤 억울하게 강탈당한 저의 선혈을 확인하고 싶은 욕망뿐이었거든요. 휴지로 살포시 덮어 손가락으로 압착을 시도하려는 순간 모기의 마지막 외침에 전 멈칫했어요. 그건 비명이자 절규였어요.


"저! 임신했단 말이에욧~~~~~!"


 전 "임신"이란 단어가 저의 귓바퀴를 돌아 귓구멍을 파고든 순간 동작을 멈췄어요. 남자이기에 임신이란 걸 직접 경험을 할 수 없었고, 중늙은이가 될 때까지 결혼을 못해 아내가 없으니 현장감 넘치는 간접경험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죠. 임신이란 단어에서 멈췄던 이유는 '아무리 미물이라지만 왜 날지도 못할 정도로 배를 채운 뒤, 뻔히 보이는 곳에 있었을까?'란 의문이 들어서였어요. 뱃속의 아이들이 소중하다면 적당히 먹고 안전한 곳으로 날아가서 숨었어야 정상이었으니까요. 정말 미련한 모기였는지를 확인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생각과 다르게 입에서 먼저 나온 말은, 모기의 모자란 행실에 대한 다그침이 아니었어요.


"그럼... 남편은?"


 모기도 의외의 질문에 놀랐는지 잠시 흠칫했다 뾰족한 칼침으로 된 입을 오물거리며 말했어요.


"남편은 어딘가에서 꽃을 만나 이슬을 핥아먹거나 꿀을 빨고 있을 거예요... 우리는 원래 그래요. 남편은 임신만 시키고 아름다운 꽃을 찾아가 버리거든요." 


 왠지 미안함이 느껴졌어요. 내가 남자라서 그런지... 어미 모기에게 연민이 느껴졌어요. 방금 전까지 휴지로 눌러 꽉 죽이려던 참이었는데 막상 사연을 들으니 마음이 약해졌어요. 그리고 어미 모기를 위로해주고 싶었어요. 말이 더듬거리며 나오더군요. 


"거... 거 나쁜 놈이네... 거 참...."

"그렇죠! 어머 정말 고마워요. 저도 그렇게 생각은 했는데 알아주는 곤충들이 없었어요. 이렇게 알아주시니 고맙네요. 사람이라 역시 다르긴 다르네...."


 모기에게 닭똥 같은 눈물이란 표현은 너무 크겠죠? 저도 눈이 침침해져서 잘 보이진 않지만 모기의 두 눈가는 분명 촉촉이 젖어있는 것 같았어요. 사우나 속을 떠다니는 작은 습기 같은 물기요. 전 다그치듯한 어조로 물어보려 했던 말을 조금 부드럽게 바꿔 건넸어요. 


"그럼 그... 조심 좀 하지... 그렇게 배가 뚱뚱해질 정도로 먹고 여기 앉아있으면 어떡해... 뭐 이미 빨린 피는 어쩔 수 없고 소화 다 시키면 다른 데로 알아서 날아가도록 해요." 


 저의 말에 모기도 경계를 풀었는지 날카로운 주둥이를 뭉툭하게 오므리며 말했어요.


"아니에요. 폐를 끼쳐서 너무 죄송해요. 그냥 뱃속에 아이들 마지막으로 든든하게 먹이고 싶었어요."

"어... 응? 마지막이라는 그게 무슨 소리예요. 안 죽일 테니 걱정 말아요."

"아니요. 아까 이웃집에서 살충제를 한방 맞았거든요. 그래서 점점 독이 몸에 퍼지던 참이었어요. 그런데 오늘 하루 종일 영업이 안돼서 아이들이 쫄쫄 굶고 있던 차에 감사하게 선생님이 자고 계셔서... 배라도 부르게 먹인 다음 재우고 싶었어요. 제가 좀 많이 빨았죠? 죄송해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머리가 복잡해지더군요. 입술을 한참 깨물며 다음 할 말을 고민했지만 금방 떠오르지가 않았어요. 어미 모기가 진심으로 미안함과 동시에 고마움을 제 속에 그려내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전 팔을 내밀며 말했어요.


 "저, 뭐, 그럼 전 괜찮으니까 조금 더 빨아먹도록 해요."


 제 말을 듣자마자 모기가 고개를 들더군요. 그리고 예쁜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어요. 


"아니요. 이제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을 만큼 많이 먹었는걸요. 저 대신 부탁이 있어요." 

"부탁이요! 어떤 부탁을...?"

"내일 아침에 제가 죽어 있으면 라이터로 살짝만 태워주시겠어요? 담배 피우시니까 라이터는 있을 실 거잖아요. 피에서 담배 맛이 나던데요."

"예, 맞아요 담배 피워요. 근데 어째서...?"

"아마 살충제의 독이 아침이면 아이들에게까지 퍼져서 대부분 잠들어 있겠지만 혹시라도 한 아이라도 혼자 남겨질까 봐요. 이제 성충이 될 수도 없고 뱃속에서 혼자 외롭게 굶어 죽을 걸 생각하니...."


 머뭇거리게 되더군요. 거절할 수도 있었지만, 제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긴 한숨을 한번 쉰 다음 말했어요. 


"알겠어요. 그럼 그렇게 할게요."

"정말 고마워요. 이제 점점 졸음이 오는 것 같아요. 밤이 늦었는데 어서 주무세요. 저 때문에 밤잠을 설치셔서...."

"괜찮아요. 뭐 늦게 잘 자거든요."


 손에 쥐고 있던 휴지로 다시 모기의 머리 위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말했어요. 


"곧 추워질 테니 휴지라도 덮고 있으면 나을 거예요."

"어머! 친절도 하셔라. 그럼 선생님도 편안한 밤 보내세요."

"네, 알겠습니다. 저기...." 

"네? 더... 하실 말씀이라도....?"

"다음 생엔 무엇으로 태어나든 좋은 남편 만나서 아이들이랑 행복하게 사십시오. 그러면 좋겠습니다."


 모기는 이미 살충제가 몸에 다 퍼졌는지 다리까지 부르르 떨면서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그리곤 스스륵 잠들었어요.


 다음날 일어나 테이블 위에 휴지를 걷어보니 빨갛던 배가 하얗게 질린 채로 모기는 죽어있더군요. 결국 어미 모기가 아이들에게 마지막 음식을 먹이는 데 성공한 모양이었어요. 전 부모가 되어 본 적이 없어서 정확한 그 마음을 헤아릴 순 없었지만, 아이들이 그래도 배부르게 먹고 잠들었다니 기분은 조금 좋더군요. 라이터를 가져와 조심스레 켰어요. 라이터의 '찰칵'소리의 여운이 미쳐 끝나기도 전에, 어미 모기와 아이들이 '치지직'하는 작별인사를 남기고 한줄기 연기가 되어 날아가더군요. 두 손을 공손히 모아 그들의 다음 생을 축원했어요. 그러면서 어제 미쳐 하지 못한 말을 모기에게 전했어요. 


"혹시... 내년에 다시 모기로 태어나면 저한테 먼저 들르세요! 알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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