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타임스 편집자가 말하는 글 잘 쓰는 법

토트넘의 카라바오컵 경기를 보기 위해 새벽 4시에 일어났다. 하지만 전반이 채 끝나기 전 상대팀 첼시가 2골을 앞서갔다. 실력차가 확연해보였다. 중계를 끄고 책을 읽었다. 무려 '뉴욕 타임스'의 편집장이 글 잘 쓰는 법을 가르쳐준다지 않는가.


하지만 지나치게 사적이고 과시적인 글이다 싶었다. 글 잘 쓰는 법이 궁금해 책을 들었는데 작가의 과거사가 장황하게 펼쳐진다. 한글 제목 탓인가 해서 원제를 보았더니 'Writing to Persuade'다. 지나친 의역은 아닌 셈이다. 하지만 그 '개인적인' 경험 때문에 책을 놓지 않았다. 세계 최고 신문사의 에디터가 경험하는 하루는 어떨까? 그제서야 좋은 글과 좋지 않은 글을 구분하는 작가만의 기준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 글을 쓰는 동안 경기는 끝나가고 있다. 첼시의 완승이다. 그리고 깨닫는다. 나는 토트넘의 찐팬이 아니라는 사실을. 얼마전 토트넘과 경기했던 왓포드는 5연패를 하고 있었다. 그날도 경기 종료를 몇 분 남기고 골을 먹었다. 6연패였다. 그러나 왓포드의 경기장은 팬들로 가득 차 있었다. 영국은, 왓포드의 팬들은 정말로 축구를, 자신의 팀을 사랑하는구나 싶었다. 그래서 나는 토트넘에 대해, 축구에 관해 좋은 글을 쓸 수 없는 것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좋은 글은 '자기다운' 글이다. 자신이 경험한, 자신이 사랑한 대상에 대해 쓴 글은 유니크하다. 나만 쓸 수 있는 글을 쓸 때 그 글은 비로소 남에게 '읽힐' 자격을 얻는다. 이 책의 저자도 같은 말을 한다. 아무리 유명한 셀럽이라도, 정치인이라도 뻔한 내용의 글은 게재를 거절당한다. 하지만 자신의 유방 절제의 경험을 쓴 안젤리나 졸리의 글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오직 그녀만이 쓸 수 있는 글이라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모두가 달 탐험에 나설 필요는 없다. 나만의 경험이 꼭 대단하고 특별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그냥 점심 때 먹은 햄버거 이야기를 써도 읽힐 수 있다. 단 전제가 있다. 햄버거를 주문한 사람이 한 달째 다이어트를 하는 중이라야 한다. 비건이나 채식주의자라면 더 좋다. 한 달 동안 매일 햄버거를 먹어온 사람이라면 더더욱 좋다. 읽는 사람에게 '궁금함'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이다.


소재의 유니크함에 매몰되지 말자. 그 대신 대상과 사건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이 유니크한지 되물어 보자. 적어도 내가 읽고 싶어하는 글들은 그런 글들이다. 똑같은 대상, 똑같은 사건을 보고도 남다른 생각과 시선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거기에 유니크한 경험이 더해진다면 금상첨화다. 좋은 글은 읽히는 글이다. 읽히는 글은 남다른 글이다. 남다른 글은 세상을 바라보는 남다른 시선에서 나온다. 모든 좋은 글은 대부분 그렇게 시작된다. 토트넘이 연패를 해도 여전히 응원할 수 있는 자만에 축구와 프리미어 리그, 손흥민에 대한 글을 쓸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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