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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속 라이프스타일을 팔아요, 스노우피크

혹시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을 보신 적 있으신가요? 무려 10년 이상 방영 중인 MBN의 간판 프로그램입니다. 개그맨 이승윤과 윤택이 번갈아 가면서 출연하는데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포맷은 늘 같아요. 산 속 홀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찾아가 2,3일을 함께 보냅니다. 반드시 식사하는 장면이 나오고, 그 후엔 출연자의 스토리가 이어집니다. 그닥 특별하지 않은, 어쩌면 인생의 루저로 보일 수도 있는 출연자들의 일상이 왜 이토록 사랑받는 걸까요? 어쩌면 '산'이라는 자연이 주는 위로와 힐링의 힘 때문은 아닐까요? 그래서 우리가 캠핑을 가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루 이틀 쯤은 자연인으로 살고 싶은 일종의 '본능' 때문이랄까요?


스노우피크라는 캠핑 브랜드가 있습니다. 캠핑계의 에르메스로 불리는 브랜드에요. 텐트 하나 가격이 무려 300만원에 달할 정도로 고가입니다. 이 브랜드는 일본의 작은 마을 니가타 현 산조 시에서 철물 도매상을 운영하던 야마이 유키오가 시작했습니다. 그가 만든 하켄과 해머, 아이젠이 입소문 나면서 상품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 스노오피크의 효시죠. 2021년 매출은 254억엔(약 2633억원)으로, 전년(167억엔)보다 51.5%나 늘었습니다. 2021년 8월엔 처음으로 시가총액이 1000억엔(약 1조400억원)을 돌파했고요. 이 브랜드가 한국 시장에 진출한지도 무려 10년이나 되었습니다.



이들이 만든 대표 제품들을 살펴볼까요? 화력이 강해 센 바람에도 잘 견디는 티타늄 버너, 나무를 해치지 않도록 밧줄에 우레탄 소재를 덧댄 해먹 ‘스카이 네스트’가 유명합니다. 설치가 쉽고 높이가 낮아 바람 저항이 적은 캠핑용 텐트 ‘어메니티 돔’은 출시한 지 50년이 넘은 스테디셀러입니다. 텐트 안에 침실(이너텐트)과 거실 공간을 분리한 ‘리빙쉘’ 텐트는 제품명이 고유명사화된 케이스에요. 스노우피크에는 다른 아웃도어 브랜드에 없는 독자적인 제품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편입니다. 이 브랜드는 특히 제품의 안정성을 강조해요. 친환경을 이유로 소재는 전부 대나무를 사용하죠. 제품에서 나오는 폐기량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고 하네요.


하지만 이 브랜드가 사랑받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경험'을 중요시 여기기 때문이에요. 스노우피크의 2대경영자인 야마이 토오루는  2009년 '산으로 돌아가자'는 원점 회귀 경영 방침을 내놓습니다. 그 시작은 본사 캠핑장 건설이었죠. 그 결과 산조시의 5만 평 부지에 새 본사 사무실과 캠핑장이 들어섰습니다. 2011년 완공된 캠핑장은 그 규모가 무려 4만5000평에 달합니다. 한꺼번에 100팀이 캠핑을 즐길 수 있을 정도라고 하네요. 토오루는 스노우피크의 미션과 비전을 ‘눈에 보이게’ 만들고 싶었다고 해요. 캠핑장에선 직원과 고객, 제품이 직접 만날 수 있으니까요. 그 결과 직원들은 고객이 캠핑을 하며 어떤 불편을 겪는지를 생생하게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스노우피크는 한해 수십 차례씩 캠핑 행사 ‘스노우피크 웨이Snow Peak Way’를 열고 있어요. 1997년 토오루 회장이 고객을 초청해 벌이던 행사가 점점 규모가 커진 거예요. 지금은 많게는 한해 5000명이 ‘스노우피크 웨이’에 참여한다고 해요. 이렇게 스노우피크 캠핑장을 다녀간 캠퍼들은 오프라인 커뮤니티를 만들며, 스노우피크의 충성도 높은 고객이 된다고 하네요. 한국에서는 지난 2009년 5월 춘천 중도유원지에서 60가족이 참여한 행사가 처음 열렸습니다. 팬데믹 이전까지 총 40여 차례 열린 스노우피크웨이에는 매회 60~100팀 정도가 참여했다고 하네요. 누적 캠핑 인원만 1만2000여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원래 스노우피크의 브랜드 컨셉은 '아웃도어 라이프스타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내추럴 라이프스타일 크리에이터'로 그 개념을 확장시켰죠. 스노우피크가 사람들에게 팔고 있는 것은 단순한 아웃도어 제품이 아닌겁니다. '나는 자연인이다'처럼 자연과 함께 하는 삶 그 자체를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는 것이죠. 얼마 전 저는 이태원에서 '모꼬지'라는 선술집을 하는 주인을 만났습니다. 이 분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얼마 전 감동적으로 보았던 '나의 아저씨'에 나오는 '정희네'가 생각났어요. 언제라도 찾아가 술 한 잔을 앞에 두고 아무 이야기라도 할 수 있는 곳, 도시의 삭막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누구라도 한 번쯤 동경할 수 있는 곳이 '정희네' 아닐까요? 이태원의 모꼬지도 바로 치유와 힐링의 '경험'을 주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작은 카페 하나를 해도 선명한 컨셉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컨셉을 '경험'하게 하려는 지혜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혹 여러분이 제공하는 제품과 서비스에도 이런 컨셉이 있나요? 그리고 그 컨셉을 '경험'할 수 있는 어떤 노력들을 하고 있나요? 스노우피크는 이런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회사 소유의 캠핑장을 만들었습니다. 이태원의 모꼬지는 언제라도 손님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주인이 항상 상주하고 있죠. 브랜딩이란 이렇게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고객들과 나누는 그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오늘 하루 쯤은 우리 제품이, 서비스가 주고 싶어하는 가치를 충분히 고민해보세요. 그러면 그걸 나눌만한 경험에 관한 아이디어들이 떠오를겁니다. 그렇게 '남다른'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것, 우리는 그걸 브랜드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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